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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세상의창] ‘자유’를 착취하는 신자유주의

페이스북 감정 조작 실험으로 본 데이터마이닝 남용의 위험성 최수아 기자l승인2015.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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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심리정치-신자유주의의 통치술(한병철 저)’를 참고인용해 작성됐습니다.

 

  지난해 6월 17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대량 감정 전염의 실험적 증빙’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등재돼 큰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이 논문의 내용은 2012년 1월 11일부터 일주일간 페이스북 사용자 68만여 명을 상대로 진행된 실험을 기반으로 합니다. 논문 작성자들은 각 사용자의 뉴스피드(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이 새로 작성한 게시물을 모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항목)를 조작해 부정적 또는 긍정적인 게시물만 남겨뒀으며, 사용자들의 반응은 뉴스피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와 맞물려 이와 동일한 분위기로 변화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논문이 게재된 이후 페이스북이 수많은 사용자들을 상대로 감정 조작 실험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의 주 저자인 아담 크래머는 뻔뻔하게도 “각자의 타임라인에 들어가면 (뉴스피드에 보이지 않았던 게시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게시물을 감추지 않았다고 해명합니다.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알고리즘 등에서 사용되는 데이터마이닝(방대한 양의 데이터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은 아마존이나 구글에서도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서 제시한 사례로 데이터마이닝의 부정적인 사용을 추측할 수 있듯이 소셜미디어 내에서 허용되는 무제한의 자유와 커뮤니케이션은 별안간 전면적인 통제와 감시로 돌변할 수 있는 여지를 품고 있습니다. 만일 개인의 사생활에 관여할 권리를 지니지 않은 제3자가 소셜미디어의 정보를 독점해 이를 조작할 수 있고, 더불어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용자들을 교묘히 유도할 수 있다면 사용자들은 본인도 모르는 새 독재자의 의사에 발맞춰 걷고 있는 셈이 됩니다.

  사실 권력은 크면 클수록 더 조용히 작동합니다. 제압해야 할 반대 의지가 형성돼 권력자와 충돌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의 취약성을 증명하는 것이죠. 이를테면 과거 프랑스 절대 왕정의 왕들은 고등법원이 저항할 때마다 법정을 열어 본인이 원하는 법안을 그대로 밀어붙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때 왕이 저항하는 구성원을 체포해 귀양 조치를 내리거나 그 직위를 박탈하는 등 폭력에 의존하는 권력을 자행한다면 이는 오히려 권력에 반하는 세력들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며 국가 구성원들로 하여금 왕의 권력에 집중하게 합니다. 결국 루이 16세 때 이에 의문을 품은 국가 구성원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왕권의 취약성이 드러남에 따라 절대 왕정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 자체가 아예 화제조차 되지 않는 때에 어떤 의심도 받지 않은 채로 유유히 작동하는 권력의 경우, 이에 반하는 어떠한 저항의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기에 더욱 수월하게 지배 체제를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련의 저항이 존재하는 권력보다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권력이 더 강력하게 주장을 밀고나갈 수 있는 것이죠.

  지배자 입장에서 봤을 때,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자유’ 자체를 착취하는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항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이 특정 지배 관계에 예속된 주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도록, 오히려 본인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위해 권력자는 예속자에게 금지와 박탈이 아닌 호감과 충족을 허용합니다. 이 때 예속자에게 폭력을 가해 권력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속자가 스스로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상황을 조종합니다. 예속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상황을 빌미로 해 유혹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소셜미디어가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친절한 ‘스마트’ 권력이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노출한 소셜미디어의 빅데이터를 통해 이들의 사고를 분석한 뒤 각자의 행동 방향을 원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지배는 큰 힘을 소모할 필요도 없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새 지배는 저절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면 일부 권력자의 의지보다도 사회의 전반적인 기조가 이와 들어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민은 ‘소비자’와 비슷합니다.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정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드러내는 유권자는 많지 않습니다. 마트에 나열된 물건들을 구경한 뒤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처럼, 유권자들은 정치가 또는 정당이 제시한 기조나 정책 중에서 그 수준이 비록 단순할지라도 본인이 만족스러운 방향을 택합니다. 그러고선 정치가와 정당이 본인이 원하는 수준으로 ‘납품’을 하지 않으면 불만을 늘어놓죠.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이 본인의 욕구와 부응되는 상황이라면 별다른 의심 없이 지배에 예속되길 원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어느 누구의 강요나 명령을 받지 않은 채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노출하는 ‘다타이즘’(Dataismus, 데이터주의)의 시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총체적 커뮤니케이션이 부과하는 순응의 압박에 시달립니다. 또한 다타이즘으로 인한 자유의 확산은 오히려 제3자로부터의 통제와 감시를 당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유의 위기를 예고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간 우리 모두가 침묵과 고요, 고독이 있는 ‘진정’ 자유로운 공간을 잃어버린 채 바글거리는 예속자의 틈바구니에 몸을 맡겨야 할지 모릅니다. 「심리 정치」의 저자 한병철은 조심스레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은 내재적인 것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로운 바보’가 되어 예속화에서 이탈하자. 바보짓은 자유의 실천이다.

 


최수아 기자  sooah451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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