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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다가오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아직 이뤄지지 않은 원인 진상규명과 선체 인양 김예슬 기자l승인2015.04.13l수정2017.11.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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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4월 16일 우리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다. “가만히 있으라”던 선장의 선내 방송과 아이들의 “죽고 싶지 않다”던 영상 속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1주기, 얼마나 기억하고 있고 얼마나 해결됐는가. 세월호 탑승자 476명 중 295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도 9명의 목숨이 바다에 수장돼 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의 부모들은 오늘도 광화문 앞, 청와대 앞에서 진상규명을 바라며 그 자리에 서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과연 어떤 것들이 달라졌을까.

◇ 그날 이후, 1년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었다. 5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진행하겠다”라는 말을 전한다. 보름 후 열린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지난 한 달여 동안 국민 여러분이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신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고,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고, 불법 과적 등으로 이미 안전에 많은 문제가 예견되었는데도 바로 잡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며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그리고 6월 2일 세월호 관련 국회 국정조사(이하 국정조사)가 처음으로 개최된다.
  국정조사가 진행되던 7월 15일, 단원고 학생들은 교사·학부모·시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바라며 단원고에서 국회까지 1박 2일의 도보행진에 나섰다. 당시 광화문에서는 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단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다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38일 간의 국토순례에 나섰다. 8월 30일 역대 최장기간으로 90일 동안 진행한 국회 국정조사는 제대로된 청문회 한 번없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한 달 뒤 진행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합의 과정에서 여·야는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의 의견은 배제한 채 합의했다. 이에 반발하던 유가족들은 11월 2일 빠른 진상규명을 바라며 여·야 합의로 수사권·기소권없이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법을 수용한다.
  해가 바뀐 3월 27일 세월호 특별조사 위원회 출범에 필요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입법이 예고됐다. 해양수산부에서 입법예고한 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은 현재 세월호 특별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무력화 시키는 시행령이라는 논란에 휩싸여있다.

◇ 광화문 앞 세월호 촛불 문화제
  지난 4일과 5일, 세월호 인양과 성역없는 진상규명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바라는 행진의 물결이 1박 2일에 걸쳐 안산 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졌다. 궂은 날씨에 상복을 입고 행진하던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이 물에 젖지 않도록 품에 감싸 안은 채 광화문을 향해 걸었다. 시민들은 행진에 합류하거나 길에서 행렬을 응원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행렬을 지켜보던 한 익명의 시민은 “세월호 참사는 매우 슬픈 일이다. 뉴스에서 이에 대한 내용이 잘 나오지 않아 세월호가 이미 인양된 줄로만 알았다. 아이들이 생각나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광화문에 도착한 유가족 행렬은 광화문에서 그들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과 합류해 1차 집중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 세종시 기자회견
  다음날 6일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입법예고 기간이 만료되는 날이었다. 이날 세종시 해양수산부 앞에서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 오후 2시 세월호 유가족들이 예정된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세종시 정부청사에 진입하려 했으나 이를 막는 경찰 병력으로 인해 유가족과 경찰의 대치가 시작됐다. 약 3시간에 가까운 격렬한 대치와 경찰의 강경한 진압 중 유가족들은 구급차에 실려가거나 경찰버스로 연행됐다.
  유가족들은 경찰 버스로 연행된 유가족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 버스 문 앞으로 모였다. 이때 경찰 버스가 출발했고 유가족들은 이를 막기 위해 버스 앞·뒤로 대열을 이뤄 경찰과 대립했다. 당시 경찰의 무전기에서는 “다 쓸어버리라”는 말이 수신됐고 유가족은 경찰에 의해 대열에서 한명 한명씩 들려 나왔다.
  이러한 대치와 연행 중 세종경찰서장과 세월호 유가족 법률 대리인 박주민 변호사(이하 박 변호사)가 “버스에서는 신원확인만 하고 석방해주겠다”라는 합의를 거쳐 모두 석방된 이후에야 기자회견이 시작될 수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해양수산부는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을 즉시 폐기하고, 최소한 특별조사 위원회의 시행령(안)을 상정할 것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이전에 온전한 선체 인양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구체적인 추진일정 등을 발표할 것 ▲죽음 앞에 돈 흔드는 모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이어 진행된 해양수산부 장관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따라서 오후 8시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해양수산부 기자실에서 면담 결과에 대한 브리핑이 진행됐다. 브리핑을 진행한 박 변호사는 “오늘 면담은 의견서 제출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철회와 선체 인양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나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데 그쳤고 의견수렴은 없었다. 향후 후속조치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해 나갈 계획이다”라며 면담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아침 박근혜 대통령은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여론을 수렴해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유가족들은 “인양과 관련해 전향적인 보도가 나와 기대했으나 면담과정에서 기술검토도 마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실망했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지난 11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2차 집중 촛불 문화제가 진행됐고 이날 경찰이 유가족을 대상으로 사용한 최루액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달 17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실종자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우리는 여전히 그날에 갇혀 참사의 한 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은 이제 그만 잊고 1주기를 조용히 추모하라고 한다. 내 자식이, 내 가족이 차디찬 바다 속 세월호에 갇혀 있어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너무나 가혹한 말의 흉기이다”라며 세월호 인양을 촉구했다.

 

 

 

 


김예슬 기자  yeaseul718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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