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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찔리는 게 있습니까?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치적 국면 최수아 기자l승인2014.09.29l수정2015.04.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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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 2014. 9. 29

마치 유령과 싸우는 것처럼 책임의 진원지가 없다.
유령과 싸우면 싸우는 사람이 제정신을 잃게 된다.
-공지영, 「의자놀이」


  1993년에 일어난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전북 부안군의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승객 292명이 숨진 사건으로 지금껏 국내 여객선 사고의 대표격으로 꼽혀 온 사건입니다. 당시 정부는 사고 이후 노후선박의 운항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죠.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4년, 서해 페리호의 악몽은 ‘세월호’로 너무나 유사하게 재현됩니다.
  서해 페리호 침몰과 ‘세월호’ 침몰의 발생 배경과 정부의 차후 대책 수립 방식은 너무나 유사합니다. 정부는 20년 전 끔찍한 인재를 겪고서도 사건이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진 이후 오히려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여객선의 선령제한을 늘리기까지 하는 기만을 보였고, 결국 참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비춰볼 때, 세월호 사건을 어영부영 넘기면 후에 또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것임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지 다섯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왜 아직도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을까요? 다섯 달 동안 왜 정부는 ‘선박 운행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아무 말이 없을까요?
보통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양심이 찔린 상태에 있는 자들은, 가만히 침묵하거나 혹은 더 적극적으로 애꿎은 범인을 지목하려 듦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진상을 규명하려 들지 않는 이유는 하나겠죠. “찔리는 게 있으니까!”
  세월호 사건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적 속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들어 선박계는 고유가와 국내 관광 감소, 저가 항공 등으로 인해 위기 상황을 맞습니다. 심지어 몇몇 노선은 운항 중단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크루즈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는 매사 선박 기업에 우호적이었습니다. MB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탈바꿈한 대운하 사업을 진행했고 이에 따라 당연히 크루즈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이 때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하고 엔진‧화물‧선원 규정을 완화하며 일본에서 한국으로 중고 선박이 재도입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동시에 노무현정부 시절에 있던 것들을 ‘일단 없애고 보자’는 심보로 청와대 국가안보실(NSC) 총괄의 강력한 위기관리센터 사무실을 폐지합니다. 이에 뒤따른 새로운 주자 박근혜 대통령도 기존 정부의 기조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양상을 보였고, 역시 ‘크루즈산업 육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상황은 전연 개선될 여지가 없었던 것이죠. 우리는 4대강 사업이 불합리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와 긴밀히 연결된 ‘크루즈 산업’ 육성을 위해 암암리에 벌어졌던 완화 정책을 마치 까막눈인 마냥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크루즈 산업 육성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었지만, 실상 카페리 사업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정책은 추진 중인데, 배를 타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러다 크루즈산업 육성은 물건너갈 것 같으니 결국 교육 당국까지 나서기 시작합니다. 2011년 9월 서울시교육청을 시작으로 각 교육청은 카페리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담은 공문을 발송합니다. 사실 교육청의 공문은 그 자체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죠. 한국 사회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고등학생들을 특정한 정치‧경제적 목표에 맞춰 투입한 것입니다.
  정부는 세월호 사건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물론 청해진해운이라는 민간 기업의 무자비한 이익 추구와 일부 선박 노동자들의 비윤리성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영 기업이 마음껏 사익을 꾸려갈 수 있는 배경을 단단히 못박아준 것은 기업이 원하는 대로 규제를 완화해주는 기조를 유지하는 전 정부와 현 정부입니다. 중고 선박이 들어올 수 있도록 제도화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낡아빠진 배가 한국에 다시 수입될 수 있었을까요? 앞 못 보는 장님처럼 도면과 배의 문제점을 눈감아준 해운 관련 기관들과, 부정부패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감사원의 책임 방관이 기업이 활개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한 게 아닐까요? 또한, 물론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먼저 도망간 선장‧선원을 매섭게 꾸짖고 징계를 추진한다고 해서 앞으로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예방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현 상황이 그리 난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온 국민들이 세월호 침몰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로 마음을 적시고 있으니 다른 일을 벌이더라도 그다지 격한 반응이 오지 않으니까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내세우기보단 온 국민들이 사고에 눈을 돌린 틈을 기회로 삼아 평소에 진행하고 싶었던 사안을 추진하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재난 자본주의’라고 하는데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격이죠.
  자, 청와대를 봅시다. 해경은 마땅히 해체되는 게 옳으나, 청와대 자기 자신의 잘못은 전혀 문책하지 않습니다. 되레 총리실 산하로 국가안전처를 신설함으로써 재난 관리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태를 보이죠.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신들의 책임 면제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또한 지난 5월 정부는 차관회의에서 5급 공채 즉 행정고시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방침을 발표합니다. 이는 선발규모를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해 2017년까지 50%로 줄이고, 50%는 민간경력자를 채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공무원들의 잦은 순환 보직과 안전 전문성 부족이 국가 재난 업무 수행에 문제가 된다는 게 방침의 이유인데요. 언뜻 보면 그럴싸한 이유처럼 보이나, 50%의 ‘민간경력자’에 함정이 있습니다. 지난 2010년, 5급 공무원 특채에 서류와 면접으로만 통과해 논란이 돼 결국 취소가 됐던 유명환 장관 딸 사건이 있었습니다. 행정고시 축소는 한국의 경제 엘리트들이 1990년대 이후 요구한 민원 사항으로, 암암리에 고위직‧특권층 자녀들이 특채로 채용되기에 용이하게끔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가 입장에선 필요한 단행일지 몰라도, 국가공무원 공채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사안이 현 세월호 국면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까요?
  또한 교육부는 수학여행에 대한 전반적 관리 실패로 책임을 문책받아야 할 상황이나 교육‧사회‧문화 등 비경제분야를 총괄하는 사회부총리를 교육부장관이 겸하게 됨으로써 조직의 위상이 커지는 상을 받았습니다. 과연 이 시점에서 교육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게 합당한 조치가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말입니다. 사건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로 조사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재차 감시자의 위치에 선 것이죠.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재난이 아닙니다. 앞으로 발생할 재난들의 전조이자 경고입니다. 여기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내릴 수 없는 배’에 타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듣고서도 주체적인 판단으로 하여금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건진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언제 재앙이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사회 속에서 예리한 정신과 현명한 의식, 잘 정제된 지식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정부(혹은 집권 세력)는 우리를 절대 완전하게 지켜줄 수 없습니다.


최수아 기자  sooah451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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