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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기자칼럼] 누구를 위한 차례상인가

백주열 기자l승인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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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차례상을 매우 화려하고 크게 준비한다. 사과, 배, 육고기, 조기, 약과와 유과 등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리는데, 죽은 사람을 위한 차례상을 차리느라 산 사람 여럿이 매우 고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음식의 양이 매우 많아서 차례상의 음식은 남는 경우가 허다하고, 남은 음식은 처치곤란이 되어 누가 가져갈 것인지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매년 이러한 명절 풍경을 보며 ‘도대체 차례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차례란 조상에게 달, 계절이 변하였음을 알리기 위해 지내는 의례이다. 보통 차례상 차리는 방법으로 알고 있는 것은 홍동백서(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어동육서(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좌포우혜(포는 왼쪽, 식혜는 서쪽), 조율이시(과일을 놓는 순서는 대추, 밤, 배, 감(곶감))이다. 그러나 어떠한 기록에도 차례상 차리는 방법이 이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된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형식의 기원은 무엇일까?

송시열의 <송자대전>에는 제자가 송시열에게 ‘어동육서’인 까닭을 묻자 ‘중국을 기준으로 동쪽은 바다이고 서쪽은 육지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는 송씨 가문에서만 중시된 것이고, 당시에는 가정마다 다른 차례상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차례상 차리는 방법’이 대중에 널리 퍼진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과거에는 친족들이 같은 마을에 살았고, 종손의 집에 모여서 차례를 지냈다. 그러나 60년대에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핵가족화가 진행되었다. 차례를 개별 가정에서 지내야 하는데, 차례를 차릴 줄 아는 종손이 없으니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를 놓치지 않고 언론들이 앞다투어 ‘차례상 차리는 법’을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가문의 차례 지내는 방법이 표준인 양 전국화된 것이다.

주자가 편찬한 <주자가례>는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주자가례>를 보면 차례상의 첫 줄에는 과일이 놓인다. 그런데 오늘날의 ‘홍동백서’나 ‘조율이시’와 같이 특정 과일이 지정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果(과일 과)’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예법 참고서인 <사례편람>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즉, 어떤 과일을 올리느냐는 후손의 몫이며, 오늘날의 경우 바나나나 망고를 올려도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곡 이이가 편찬한 <격몽요결>의 7장은 제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당시 사람들이 예법을 모르고 있으며, 첨부한 그림을 참고하여 예법에 맞게 차례를 지낼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격몽요결>에 실린 그림에서도 음식이 ‘果’, ‘肉, 炙(고기 구울 자)’ 등으로 제시되며, 그 종류는 지정하지 않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격몽요결>에서 이이가 제시한 ‘제사 예법’은 오늘날 사람들이 알고 있는 형식의 측면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추석은 산 사람들의 잔치이다. 차례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을 다하면 충분하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준비하고 그 과정에서 산 사람이 고통을 호소한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이것은 추석의 본 의미에 반하는 것이며, 차례의 의미가 왜곡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차례상을 차리는 형식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즐거움과,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번 추석은 이를 유념하여 산 사람들이 즐거운, 본래 의미에 충실한 추석이 되기를 기원한다.

 


백주열 기자  wnduf0326@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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