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0.19 월 23:58

[445호/기자의 일기] ‘라떼’와 ‘탑골공원’

정예인 기자l승인2020.09.28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라떼 맛 과자

혹시 ‘라떼는 말이야’라는 이름의 과자를 아시나요? 우연히 과자 판매대를 둘러보던 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상사와 부하 직원이 그려진 포장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 아닌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요, “나 때는 어땠는 줄 아나?”라는 상사의 말에 부하 직원은 “네, 매일 들어서 잘 압니다.” 라고 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자의 이름이 ‘라떼는 말이야’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는 계속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만 꺼내는 ‘꼰대’의 단골 표현인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유행어입니다. 이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함을 풍자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겠지요.

하지만 이 표현은 더 이상 젊은 세대의 은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점점 활용되는 분야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유튜브 영상 혹은 TV 예능의 자막을 통해 접하던 ‘라떼는 말이야’가 과자 이름, 이모티콘, 노래 제목, 가게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며 그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어쩌면 이 인기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언어유희에서 드러나는, 기성세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불만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온라인 탑골공원에서 모입시다

조금 다른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최근 들어 독특한 양상을 띠고 있는 ‘레트로 열풍’이 있는데요, ‘온라인 탑골공원’이라고 다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유튜브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추억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음악 프로그램입니다. 이때 추억의 볼거리란, 1980~1990년에 출생한 세대들이 즐겨 들었던 음악, 즐겨 보았던 방송을 이야기합니다. 온라인 탑골공원은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는 연령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에까지 열렬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사례로, ‘탑골 GD’라고 불리는 가수 양준일의 파격적인 무대는 유튜브에서 한창 유행하고, TV 예능에까지 진출하게 되었었죠.

현재 ‘젊은 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왜 젊은 사람들이 ‘라떼’의 이야기는 듣기 싫어하면서, ‘그때’의 문화를 기꺼이 즐기고자 하는지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젊은 층들이 선택한 ‘그때’의 문화와, 기성세대가 ‘나 때는~’이라는 말로 전하고자 하는 문화 간의 차이점을요. 젊은 세대가 즐기고자 하는 예전의 문화는 지금 봐도 세련된 동시에 독특한 매력이 있죠. ‘라떼는 말이야’로 전하고자 하는 문화는 상대적으로 고리타분한 느낌이고요.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느낌의 차이를 만들까요?

 

◇ 귀에 딱지가 앉고, 입에는 거미줄이 쳐진다

온라인 탑골공원에 접속할 때, 누군가 여러분에게 압박을 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접속하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발적인 관심, 어쩌면 호기심으로 인해 스스로 그 문화를 접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반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전달되죠. 선택권은 나에게 없습니다. 쉽게 거부하기 힘든 상대에게서, 일방적인 방향으로 전달됩니다. 그 결과로 ‘귀에는 딱지가 앉고, 입에는 거미줄이 쳐지게’ 되죠. 어쩌면 ‘나 때’의 이야기에 젊은 층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 같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은 내용 자체가 아닌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기성세대의 말, “나 때는 말이야”로 대표되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닐까요?

앞서 언급했던 ‘온라인 탑골공원’의 놀라운 파급력은, 젊은 세대가 참신한 옛날을 충분히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 의지와 열정은 왜 ‘나 때’의 이야기만 나오면 식어버리는 걸까요? 자신의 선택권은 배제되었고, 기성세대의 의사만 존재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젊은 세대에게 자발적인 발견의 기회를 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해 보였던 ‘나 때’의 이야기도, 삐뚤어진 시선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니까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그만 끝낼까 합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표현이 자아내는 웃음은 현실 풍자적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먼 미래라도, 우리가 ‘라떼는 말이야’라는 표현을 떠올렸을 때, 과거의 일이라며 웃고 넘길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정예인 기자  112yenj@blue.knue.ac.kr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예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김종우   |  주간: 김석영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현정/권수지/유대원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20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