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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컬처노트] 닥터 후, 철학을 곁들인 SF의 매력

이희진 기자l승인2020.09.28l수정2020.09.28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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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science fiction)의 가장 큰 매력은 작품 자체에 있다기보다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다고 믿는 편이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인 ‘닥터 후(Doctor Who)’가 특히 그렇다. ‘닥터 후’는 1963년 영국에서의 첫 방송 이후로 가장 오랫동안 방영되고 있는 SF 드라마 시리즈다. 올드 시즌이라고 불리는 시리즈가 휴방기에 접어들었다가 2005년 뉴 시즌으로 부활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말 많고 신비로운 외계인, 타임로드 종족의 ‘닥터’다. 옛날 영국의 파란 경찰 박스 모양을 한 타임머신에 사는 그는 인간 동료들과 함께 우주 곳곳의 과거, 미래, 때로는 현재를 여행한다. 사실 가는 데마다 온갖 위험이 뒤따라오는 것을 보면 여행이라기에는 애매한 감도 있다. 닥터가 그 위험에 대처해나가는 모습이 가장 흥미진진하지만, 보다 보면 언뜻 터무니없어 보이는 전개와 독특한 캐릭터들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절대 가볍지 않다. 시즌 6의 한 에피소드를 들여다보자.

수도원처럼 보이는 22세기의 한 공장, 특수 슈트를 착용한 직원들이 산(acid)이 가득 담긴 통 옆에 서 있다. 산 수치를 재고 기계를 설비하는 도중, 실수로 한 직원이 산이 담긴 통에 빠졌다. 직원의 몸이 녹아들어 가지만 다른 직원들은 비싼 슈트 걱정뿐이다. 산에 빠진 직원도 태연하다. 산에 빠진 몸이 ‘플레쉬’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조종형 복제인간이라서다. 본래의 몸은 영화 ‘아바타’처럼 다른 곳에 누워있다. 하얀 페인트처럼 보이는 그 물질은 세포 단위까지 복제할 수 있다. 측정값만 있으면 분자구조를 조작해 뭐든, 심지어는 살아있는 유기체까지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플레쉬가 ‘살아있는’ 유기체가 될 수 있냐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닥터와 그의 동료들이 공장에 착륙했을 때, 마침 태양폭풍의 영향으로 플레쉬에 문제가 생긴다. 잠들어 있던 본래의 몸이 일어나면 플레쉬의 의식은 꺼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이게 됐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이제 둘로 나뉜 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말 그대로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여기에 숨겨진 질문을 찾아보자. 플레쉬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필요가 있을까? 생명체라고 인정한다면 그 플레쉬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먼저 여러분 스스로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장 직원 ‘지미’의 이야기를 듣고 한 번 더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길 바란다. 지미는 아들 아담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빠다. 지미의 플레쉬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모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날 차를 4L는 마셨을걸. 그러다 아들이라는 소리에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지. 왜 그랬나 몰라. 나도 집이 너무 그리워.”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기엔 어렵지만,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지미의 플레쉬가 한 말이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둘 다 똑같은 ‘지미’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지미의 플레쉬는 차마 받지 못하고 원래의 지미를 찾으러 달려나간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진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플레쉬는 원래의 지미에게 나는 가짜라며, 아들에게는 진짜 아빠가 필요하다고 말해보지만 원래의 지미는 심장에 산이 튀어 죽어가고 있었다. 미안하다며, 하라는 대로 뭐든 하겠다는 플레쉬에게 원래의 지미는 이렇게 말한다. “있는 대로. 이제 너한테 달렸어. 아빠가 되어줘. 어떻게 하는지 알잖아.”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여러분은 이 둘이 모두 지미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플레쉬는 플레쉬, 인간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여기서 내가 지미라면 어떨까? 혹은 나의 플레쉬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러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조금 철학적인 질문도 곁들인다면, 이 에피소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본다면 뉴 시즌 5부터 보기를 추천한다.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외계인 중 하나인 우는 천사가 등장하고 19세기 네덜란드에서 반 고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등 입문하기 좋은 에피소드들이 많기 때문이다. 닥터와 함께 모험을 떠날 여러분을 기다린다.

 

이희진 기자  huijin@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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