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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사무사]반짝이는 너의 눈 앞에

편집장l승인2020.09.28l수정2020.09.2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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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안 자고 아빠랑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는 너에게 잔소리를 하려다 말았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를 안 간지 오래되다 보니, 9시에 잠들던 넌 지금도 말똥말똥한 모양이다. 이제 수도권도 등교 수업이 가능해져 학교를 간다고 뛸 듯이 좋아하는 너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형아들 동생들을 너무 좋아하는 너인데, 운동장에 매일 나가 땀에 흠뻑 젖도록 공을 차는 너인데,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지루했을까 하는 안타까움. 그럼에도 씩씩하게 누나랑 밥 챙겨먹고 시간표따라 숙제를 하던 너의 기특한 모습이 떠올라서, 살며시 미소도 난다. 대학교 친구들 하고만 지내다가 최근 1년 가까이 너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따뜻하고 순수한 너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핸드폰이 없어 여가 시간엔 소설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에 빠지고, 과학, 정치, 스포츠 등 사회 여러 분야에 반짝이는 물음표를 던지는 너를 물끄러미 본다. 

요즘 신문 기사를 읽다보면, 순수한 너가 이 기사를 보고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미래의 너는 어떤 가치를 지닌 어른이 되어 살아갈지 상상해보게 된다. 그리고 너가 곧 직면할 세상 앞에서 나는 너에게 어떤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조금 무거운 고민도 스친다. 
며칠 전 두 개의 기사를 읽으며 너 생각이 났다. 첫 번째는 너의 또래 아이들이 집에서 라면을 끓이려다 불이 났다는 기사다. 아이들은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었고, 엄마가 외출한 상황에서 끼니를 해결하려다 사고가 났다. ‘오래 전부터 방치되었던 아이들’,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장애가 있는 큰 아들을 자주 때린 어머니’, ‘사고 전날 아이들만 두고 외출한 어머니’. 아동학대를 향한 날선 단어들이 각종 언론사에서 보도됐다. 오래 전부터 어른들에게 소리 없이 억눌리던 아이들의 울부짖음은 어른들의 뉴스 속에서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너에게 이 비극을 말해준다면, 너는 잠시 충격에 빠지고는 화가 난 얼굴로 물을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어떻게 때릴 수 있냐고. 어떻게 아이들을 혼자 잠들게 할 수 있냐고. 너의 물음에 사회는 이미 부끄러운 민낯을 보였다. 어머니라는 어른도 용서할 수 없지만, 아이들을 방치하고 방관한 사회도 가해자였다. 어머니는 20살에 두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과 어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였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두고 일을 나가야 했고, 아이들을 방치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사회는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서지 않았다. 아이들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에서야, 눈시울을 붉히며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기사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온라인으로 열렸다는 기사다. 퀴어 퍼레이드는 ‘그날 하루만은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은 공간, 괜찮은 시간’을 마련하는 성소수자 축제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온라인 축제를 개최하며 ‘혐오 없는 안전한 공간’ 구현을 가장 고심했다고 한다. 오프라인에서는 경찰이나 스태프가 혐오세력으로부터 참여자들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온라인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혐오표현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가 축제의 참여자라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혐오 댓글을 보고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질 너의 모습, 무지개 깃발을 들고 홀로 행진할 때 내색은 안 하지만 미세한 떨림을 숨기고 있을 너의 모습이 그려진다. 축제가 어땠냐고 물으면 너는 조용히 말할 것이다.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음악과 함성도 즐거웠는데, 사실 조금 떨렸다고. 무서웠다고. 괜찮은 공간, 괜찮은 시간이라고 하는데 왜 나는 마음이 콩닥콩닥 했는지 모르겠다고. 너는 물을 것이다. 여린 너가 더 여려지는 모습 앞에서, 누나는 너에게 선뜻 씩씩해지라고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왜 너가 씩씩해져야 하는지, 왜 너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움츠러들어야 하는지, 북받쳐 사회에 물을 것 같다.
너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더 쓰라리고 더 어둡다. 너의 순수한 질문에 사회는 당연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고, 당연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움직임들은 아주 작은 곳에서, 아주 더디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너에게 이 사회가 부끄럽다는 말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 더딘 세상 속에서, 반짝이는 너의 두 눈을 감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시선과 순수한 질문들을 회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게 직면하고, 비판하고, 가장 작은 움직임에 연대하며, 커다란 두 눈을 반짝이면 좋겠다. 그런 너가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누나는 오늘도 뜨겁게 고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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