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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호/기자칼럼] 더 넓고 다정한 세계

양인영 기자l승인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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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에서 긴급재난지원금 배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에, SNS를 하다가 사람이 잔뜩 모여 있는 사진을 보았다. 같이 적힌 글에는 ‘얼마 뒤 동사무소 상황’이라며 “분명 노인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잔뜩 와서 거리도 안 지키고 앞사람을 밀어댈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댓글에는 “신청서를 대신 써달라고 하는 노인이나 왜 자기는 옆 가족보다 돈이 적냐고 우기는 노인도 있을 거다”라는 말도 보였다. 그 글은 많은 공감을 받으며 널리 퍼져나갔다. 하지만 실제로 동사무소에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오는 노령의 방문객 중에, 위의 글에서 예측한 ‘진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당황스러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 현금으로 주지 않느냐고 따지거나, 이미 지급받고서 못 받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노인들이 문제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연령대에도 “우리 애가 해외에 있다고 왜 돈을 못 받냐”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나, 아르바이트생이 어린 여자라고 “저 계집애가 날 가르치려 든다”며 화를 내는 사람이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연령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예의 문제다. 그럼에도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글이 많은 공감을 받은 것은, 특정 연령대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편견이 수많은 개인을 지워버린 채 노인 전체를 질서를 안 지키고, 고집이 세고, 정책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로 규정 지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은 노인들과의 교류를 막는다. “그들은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니까”라며 단정 짓고 더 알아보려 하지도 않게 만든다. 실제로 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 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잘 알지도 못하는 노인네들이 와서 이래라저래라 우겨댈 텐데, 힘들겠다”였다. 그 말을 한 사람 중에 노인들과 자주 교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노인들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특별히 더 시민의식이 있거나,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똑같았다.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가는 분도 있었고,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한 번 더 말해달라는 분도 있었고, 왜 내가 대상자가 아니냐며 화를 내는 분도 있었다. 다른 모든 연령대의 신청자가 그랬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그렇듯, 노인들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편견을 갖고 편협한 시각으로만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들과의 교류를 스스로 막는 일이다. 교류하지 않으면 편견은 점점 굳건해지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리고는 끝내 그 집단과 단절된 채, 자신이 가진 편협한 시각이 그 집단의 모든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렇게 세계는 좁아진다. 
좁아진 세계에서 사는 것은 참 쉽다. 특정 집단의 각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내 말이 혹시 편견일까 봐,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모두 이해력이 부족하니 “노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큰소리다”라고, 전업주부들은 모두 편하게 놀고먹으니 “맘충팔자가 상팔자다”라고, 요즘 젊은 애들은 노력도 안 하고 투덜거리니 “요즘은 애들이 노력을 안 해. 노력하면 다 되는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다양한 노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들이 휴식 시간도 별로 갖지 못한 채 가사노동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경쟁해도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 지쳐버린 젊은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려운 길을 가고 싶다. 같이 사는 세계에서, 내 몰이해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조심하더라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하지만 더 넓고 다정한 세계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양인영 기자  071255@bl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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