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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기자칼럼] ‘무한도전’을 다시 보며 든 단상들

현정우 기자l승인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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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우울하거나 아무 것도 재미있지 않을 때 무한도전을 본다. 다른 예능은 보지 않고 무한도전만 본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른다.

맨 처음 무한도전이 무모한도전으로 시작했던 때가 2005년 즈음이었다. 당시에는 각종 무모한 도전에 어딘가 ‘모자라는’ 멤버들이 도전한다는 형식으로 십여 회 차인가를 진행했었다. 하지만 낮은 시청률로 인해 개편에 들어가고 퀴즈쇼를 거쳐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뒤부터는 캐릭터 쇼로도, 역할놀이로도, 어떤 말 한마디로도 함축하기 어려운 예능이 되었다. 무얼 해도 화제가 되는 것은 물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아이템들은 시청자들이 직접 가보고 겪어보고 해볼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던.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그 모습들이 생생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이 나만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아닐 거라 생각도 든다. 좋든 싫든, 결국 (주로 무한도전과 10대, 20대를 같이 보냈던) 우리는 무한도전 세대다. 우리가 노는 방식에 무한도전에서의 그것이 스며든 것 같다는 인상이 얼핏 들곤 한다.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이런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은 자막으로 사용되던 ‘해골’의 유무였다. 멤버 중 누군가가 다른 멤버에게 골탕을 먹이거나 도발, 독설을 하는 등 공격을 시도하면 공격을 당한 멤버에게 해골이 붙는다. 공격의 강도에 따라 해골의 수도 많아진다.

우리가 주변의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을 칠 때 하는 행동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한도전이 이런 행동을 규격화했다는 것에 사실은 가까울 것이다.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로 자리 잡은 해골은 멤버 모두에게 균등히 나눠지지만 주로 투척하거나 더 많이 받는 멤버는 정해져 있는 듯 보인다. 머리가 좋은 홍철은 해골을 잘 먹이고 자기 생각만 하며 눈치 없는 준하는 해골을 많이 먹는다.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을 게다. 캐릭터가 일단 부여되면 상황이 바뀌어도 인물을 보는 틀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섬세한 의미에서 이는 ‘역할’과는 다르다. 역할이란 무엇인가?

 

◇ 고정되어 있지만 고정되어 있지 않은

무한도전 캐릭터 쇼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던(2017년 2월 18일 방영분), 그 유명한 ‘명수는 12살’ 특집은 전체적으로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놀아본 적이 없다던 명수를 위한 특집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명수는 놀이가 재미있어도 혼자 있다는 게 좋다는 이유를 들며 무리에서 이탈한다. 하지만 때론 놀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게임 고수의 칭호를 얻기도 한다. 준하는 한발뛰기의 유일한 벌칙의 대상자다. 다른 멤버들은 하지 않아도 준하가 할 때는 벌칙이 생각난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큰 덩치를 가진 ‘우리 또래가 아닌 것 같은 아이’다. 기본적으로 이는 한 캐릭터가 가진 다양한 속성을 장면마다 다르게 표출시키는 과정의 일부다. 그런데 공평하게 배치되어야 할 벌칙이 멤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특정한 불균형 속에서도 역할의 균질함만큼은 유지된다. 무한도전이 처음 나왔을 때 대다수의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은 프로그램이 “정신없다”는 것이었다. 과거에 비해 촘촘해지고 빈번해진 역할 변경의 시차는 보는 이의 웃음 포인트에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준다. 준하네 집에 놀러갔을 때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던 명수네와 준하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 모든 것은 이야기일 뿐

두 번째로 눈에 띄었던 것은 양식화된 내러티브였다. 장기 프로젝트는 실패했음에도 도전을 했다는 사실과 감동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였고, 단기 프로젝트는 암시적 주제와 짧은 여운에 몰입된 이야기였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프로젝트 또는 에피소드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예능의 요소를 동원해 이를 완성했던 것은 예전에도 논의되곤 했던 주제다. 카메라 바깥을 보고 ―제작진에게든 시청자에게든― 이야기를 하던 메타적 장치는 이러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무한도전’식 서스펜스, 무한도전만이 가진 영화적 정체성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싶다. 2013년 2월 16일 방영된 맞짱 특집은 두 편의 패로 나뉘어 가위, 바위, 보가 각각 그려진 무기로 승부를 결정하는 특집이다. 콩밥천국 팀에게 가위 무기가 절실한 상황에서 홍철은 자신의 무기를 감추고 들어온다. 형돈과 하하가 홍철의 무기를 짐작하는 질문을 하는데 홍철의 대답은 그들이 바라던 대답에 부합한다. 이어지는 회상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홍철이 가위를 받았음을 먼저 알게 되고, 가위를 얻은 멤버들의 기쁨과 멤버들보다 먼저 상황을 접수한 시청자들의 쾌감이 기묘한 형태로 맞물린다.

무한도전의 영화적 장치에 대해 언급하자면 글이 더 길어질 것이다. 한 가지 첨언하고 싶은 점은 무한도전이 식역 하에 설치한 레퍼런스들이 ‘무한도전’에 더 애착을 갖게 만드는 계기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하와이에서 팬케이크를 먹던 정준하를 응원하는 연출은 소년 만화의 그것과 비슷하다. 설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민머리 길은 소림 무공의 권위자 설정을 앞세운다. (실제로 이 때 나오는 대사를 보면 그가 어느 정도 무협지에 일가견이 있음이 드러난다) 우리들이 접해 왔던 것들을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의식하는 과정이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았던 것은 아닐까.

 

2007년 9월 1일 방영되었던 네멋대로해라 특집. 무한도전 멤버들이 제작진들에게 휴가를 주고자 각자가 생각한 아이템대로 연출을 해보는 특집이었다. 형돈은 멤버들이 모두 각자 다른 멤버를 연기해서 예전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를 재현하는 특집을 제안하고 재석은 명수, 형돈은 재석으로 분장한다. 자기 할 말만 죽 하느라 진행할 틈을 갖지 못하는 형돈(재석)이 재석(명수)에게 “와 형 진짜 힘들게 한다.”며 호소한다. 그 사람이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진정성, 역할의 부재, 지금 무한도전을 다시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능을 비롯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 놀이가 비단 무한도전만이 했던 일은 아니다. 별명이나 포지션, 혹은 외부의 선입견 같은 수단을 통해 역할이 만들어진 한 일단 그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는 유지되어야 한다. 일을 하던 놀이를 하던 누군가가 갖고 있는 역할 안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할지를 정하고 파악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역할의 생성은 사회적 지위의 기본이자 권력과 쌍방을 필요로 하는 순환 형 부속품이다. 다만 ‘무한도전’에서의 역할은 그것이 좀 더 임의적인 동시에 광의적일 뿐이다. 아마 무한도전의 순기능이 있다면 우리들 사이에 흘러야만 하는 이야기의 형태를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했음이 아닐까. 급변하는 사회? 청년 계층의 보수화? 정체성 정치? 어떠한 말로도 대변할 수는 없는 우리는 결국 이야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무한도전 세대이다.

 

현정우 jungwoohyun@blue.knue.ac.kr


현정우 기자  jungwoohyun@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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