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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컬쳐노트] 저주와 기적의 땅, 가버나움

영화‘가버나움’을 보고- 양세정 기자l승인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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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모님을 고소했거든요.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12살 소년이 법정에서 이 말을 하기까지, 이 말을 터트릴 때까지, 어떤 감정이었을까. 기쁨도, 슬픔도, 모든 것이 사라진 곳의 이야기, 영화 <가버나움>이다.

 

"엄마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처음부터, 단 한 번도, 따뜻한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주인공 자인의 나이와 생일은 자인은 물론 부모조차 모른다. 대충 12살쯤이라 말할 뿐이다. 학교를 못 다니고 가게 배달 일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약국에서 어머니가 아프다고 거짓말해서 산 약을 갈아서 만든 마약성 음료를 팔며 동생들을 보살피고 있다. 부모는 아이들을 폭행하는 것이 일상이고 아이들도 부모의 방임과 무관심이 일상이다. 심지어 부모는 사하르가 초경을 하자마자 동네 어른과 결혼시킨다. 12살 자인보다 어린 사하르를 누가 보아도 나이 많은 성인과 강제로 결혼시킨 것은 사실상 아이를 팔아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니체는 ‘최고의 가르침은, 아이에게 웃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니체의 말과 반대로, 자인의 부모는 자녀의 웃음을 빼앗았다. 자인이 여동생 사하르와 옥상에 앉아 동네를 내려다보며 철통을 연주하듯이 두드리는 웃음기 없는 장면은 그 무표정이 이 사회까지 이어짐을 보여준다.

 

“우리는 기생충이야.”

 

작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극과 극을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가버나움> 자인의 아버지도 자신들을 기생충이라 지칭한다. 기생충이란 무엇일까? 기생충은 다른 누군가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결국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 지켜낼 수 없는 존재이다. 자인의 부모도 그러한 비극의 끝에 있던 기생충이었다. 자인의 부모가 자인이 자신들을 고소한 재판에 참석했을 때 자인의 어머니는 임신한 상태였다. 자인의 부모는 피임법을 몰랐을 것이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피임법은 자신을 지킬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조차 보호할 수 없었기에 자식들도 비극의 끝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한낱 기생충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을 두둔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이들도 자인처럼 부모와 사회, 국가의 보호 없이 자라온 것임은 분명하다.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 사랑받고 싶었어요.”

 

영화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이루트는 특별한 빈민가가 아니다. 오히려 중동의 파리라 불리던 곳이다. 하지만 현재는 모든 것이 결핍된 상태다. 긴 내전 끝에 얻은 것은 국내총생산(GDP)의 150%의 국가부채와 30%가 넘는 청년실업률의 경제위기였고, 바로 옆 국가 시리아에서 대거 유입된 난민들과 인신매매, 종교의 종파갈등뿐이었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 작은 아이들이 국가의 사회적 안전망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가버나움은 실제 이스라엘의 지명으로 성경에서 예수가 많은 기적을 행했던 곳이다. 하지만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끝내 회개하지 못했고, 예수는 이곳의 멸망을 예언했다. 현재까지도 사람이 살지 않는 가버나움은 희망이 사라진 베이루트 이곳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사랑의 손길을 받아본 적 없는 작은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이 말은 더욱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기적에 가깝다. 자인은 동생의 결혼을 막아보고자, 동생을 보호하고자 끝까지 애를 쓴다. 자신을 재워주던 불법체류자 라힐이 사라지지만 끝까지 라힐의 아들 요나스를 책임지려고도 한다.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느끼는 죄책감과 책임감은 우리의 심장을 찌르고 있다.

 

“스웨덴으로 가고 싶어. 그곳에선 병에 걸려야만 죽을 수 있대.”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거리에서 캐스팅된 실제 난민이자 불법체류자이다. 극 중에서 자인 역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는 글을 전혀 몰랐고, 상황설명을 통해 촬영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영화는 자신들의 삶 그 자체였다. ‘자인 알 라피아’는 출생신고를 하지 못 했기에 칸 영화제 참석 전까지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영화 이후 제작자들은 가버나움 재단을 만들었고, 극 중 스웨덴에 가고 싶다고 하던 메이소운 역의 ‘파라 하스노’와 ‘자인 알 라피아’ 등 배우들이 노르웨이에 정착하여, 학교에 다니고, UN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작은 보호의 시작들이 촬영 중 영화관은 어떤 곳이냐고 묻던 소년에게, 끝없이 가정, 사회, 국가로 이어질 것 같던 저주의 도시라 불리던 가버나움에 기적을 불러왔다. 우리가 귀를 한번 기울여보는 것만으로도 이 기적의 한걸음에 보탬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양세정 기자  bay0325@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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