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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학술] 서가의 책들 속에 담긴 나의 흔적

이도빈 기자l승인2020.05.17l수정2020.05.1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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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수의 서재에서는 윤리교육과 김국현 교수와 ‘합리론’, ‘철학적 인간학’ 그리고 서가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글은 ‘교수의 서재’보다 ‘교수의 서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대학생인 우리는 어떻게 책을 읽고, 어떻게 책을 받아들여야할까? 30여 년 전의 교원대 학생의 책들부터, 이 책이 모여서 만들어진 지금의 교원대 교수의 서가까지, 서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김국현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학교 1학년 처음 대학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 지금은 경기도 연천 교육청에서 과장으로 계신 장학사이신데, 그분이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나는 고향은 경기도 포천 태생인데, 4살부터 고3까지는 부산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우리가 대학을 들어왔을 때가 86년도였다. 당시에는 1980년도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고, 사회에는 많은 지역감정과 편견이 확산해 있는 상태였다. 대학에 오고 얼마 되지 않은 대학교 1학년 신입생 환영회에서 “나는 어디에서 온 누구다”라고 자기소개를 하고 들어가고 있었다. 환영회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그 친구는 내 손을 뒤에서 잡더니 “너 부산에서 왔다며. 나 광주에서 왔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며 영호남의 화합 같은 의미로 인사를 했다.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지역 간의 편견이기 때문에, 그 친구가 의미 있게 잘 지내자고 해서 친하게 지냈다.. 친구와 의미 있게 잘 지내보자고 했는데 ‘의미 있는게 뭘까’하고 고민하던 중 서로에게 책을 선물해주기로 하였다. 예전에 조치원역 앞에 양지서원이라는 서점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나가,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 두 권씩을 골라서 선물했다. 내가 골랐던 책은 홉스의 군주론과 버트런드 러셀의 합리론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그 책을 잃어버렸지만, 그렇게 두 권을 골라서 서로 선물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버트런드 러셀의 합리론은 ‘합리적이라는 게 무엇인가? 자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이런 것을 합리적이라 한다.’ 이런 말로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자신이 왜 어떤 일을 다른 일 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지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도 삶에 영향을 미쳤다 생각하고, 짧은 문구였지만 기억에 남는다.

그때 듣던 수업과 관련해서는, 윤리과에서는 윤리학, 옳고 그른 거와 관련된 원리라든지 이론, 개념을 학습을 해야 하는데, 당시에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미카엘란트만의 책을 교재로 사용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또 시간의 흐름 속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학문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어떤 인간을 우리는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할 것인가.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란 무엇일까, 그리고 각자가 인간다움의 여러 가지 요소를 각각 다르게 가진 존재들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교사로서 학습을 도와주는 것처럼 어떻게 그런 것들을 도와줄 수 있느냐,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하느냐, 이런 것들을 교사가 되는 과정에서 공부를 해야 된다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 이해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로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인간의 부분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종합하는 것, 인간에 대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필요하기도 했었고, 또 전공에서 필요하기도 했다. 또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한다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가 있었다. 이 과목은 내가 A+를 받은 과목이었다(웃음).

이번에 코로나19때 ‘1학년들은 수업을 안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대학을 들어갈 때에, 1년간 자기의 진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런 시기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코로나 19 온라인수업 기간 동안 수업없이, 각 과목마다 자신이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선정해 읽으면서, 자신의 진로와 관련한 생각 또는 아이덴티티를 좀 더 명료하게 적립할 수 있는 진로탐색의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가 정말 재밌게 스스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게 뭘까’라고 진지하게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던가, 그게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면, 우리는 다양한 책들을 그냥 마구잡이로 읽으면서 진짜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는 그런 경험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먼저 어떤 책이 있는지부터 시작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학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지금도 책을 많이 산다. 책을 주요하게 사는 곳은 알라딘 중고서점이다. 그곳에는 남에게 의미가 없어서 남이 충분히 읽지 않은 책이 있다. 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던 책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다. ‘대학생 때는 책상에 앉아서 딱딱하게 책을 읽어야 한다’라기 보다는 알라딘 서점 같은데 널려있는 책들 가운데서 내 흥미를 발견하기 위한 책들을 두루 탐색해보는 것이다. 그 중에서 한 권을 찾아내면 또 그와 관련되는 보충설명이 이루어져있거나, 다른 관점에서 다루는 책들을 또 찾아서 읽고. 고구마 줄기는 땅에서 캐면 엮인 줄기들이 마구 나온다. 고구마줄기처럼 스스로 책의 연결고리를 만들다보면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내가 읽었던 책이 서가에 꽂혀 있을 때 그게 나인 것이다. 읽은 책이 나를 형성해주었고, 그게 과거에 나였고, 또 그 과거의 나들이 조금 조금씩 축적된 것이 현재의 나다. 스스로 성찰적으로 읽은 것들을 내 삶에 적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영향 때문에 변화되기도 하면서 내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의미 있고, 나를 만들었다고 주관적으로 파악했던 것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면 그게 나일 것이다. 그래서 내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내 관심이기도 하고, 또 나를 만들어 주었던 그런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게 나의 일부다’라고 하는 것으로 책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서, 나의 일부로서 더 소중하게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대학 때 가지고 있던 책에 써둔 어떤 내용이 있다면, 그 대학 시기에만 생각할 수 있었던 내용들이 과거의 나로서 온전히 그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렇기에 그 책을 읽는 것은 나를 회상하기도 하면서, 기분 좋게 또는 때로는 기분 나쁘게 만들어준다. 책에 적힌 어떤 메모는 내 글씨가 아닐 것이다. 어떤 것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써주었던 것 같다. 때로는 이런 아련한 기억 같은 것들도 재밌게 만날 수 있는 그런 게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스스로 연결 고리를 만들어 가고, 또 내가 왜 책을 읽을까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의미를 부여해 지식을 형성해 나가며 전공과 삶이 어느 정도는 연결된다. 지금은 임용시험을 위한 책읽기라는 것이 중심이 되는데 그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책이라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이 책은 나와 어떤 상관이 있고, 어떤 의미가 있지.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얘가 어떤 도움이 돼.”라는 생각들과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고 발견해내는 것들이, 우리가 대학생으로서, 또 아직도 많은 시간을 살아가야하는 시점에서, 그리고 이제는 입시공부를 벗어나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고, 재밌게 사는 데에 그러한 활동들이 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도빈 기자  1domingo@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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