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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컬쳐노트] 알이 깨지는 순간은 꿈에서 깨는 순간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보고 정예인l승인2020.05.04l수정2020.05.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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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my mad fat diary)는 간략히 말하자면 10대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하나의 무리에 있는 개성 넘치는 친구들은 저마다 다양한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다. 주인공이자 ‘매드 팻 다이어리’의 주인인 레이는 폭식과 자해 등의 이상 행동을 보인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부재하고, 어머니와는 잦은 갈등을 빚는다. 자존감이 낮은 레이는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을 부러워하지만, 친구들의 삶에도 각종 시련들이 닥친다. 그 시련들은 극복되기도, 오히려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간다.

‘성장’이란 무엇일까. 성장을 다룬 유명한 책 중 하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일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다음 구절은 들어봤을 것이다.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상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상을 깨트려야한다.“

성장이란 자신을 가로막는 세상을 벗어나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때 ‘세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한 번 생각해보라. 내가 하고 싶은 일, 되고자 하는 나를 가로막는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의 트라우마일 수도, 좋지 못한 습관일 수도 있고, 어쩌면 가족처럼 나의 보호막이라고 생각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세상’들은 나를 둘러싸고 있고 견고하다. 그래서인지 성장은 굉장한 고통을 수반한다는 인식이 있다. 마치 거대한 혁명을 일으켜야만 성장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점진적인 개선과 변화로서의 성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기초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성장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레이 또한 어느 한 순간 상처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노력을 쌓아 자존감을 회복했다. 이런 노력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단연코 레이의 ‘매드 팻 다이어리’이다. 레이는 매일 일기를 작성함으로써 감정을 해소하고 안정을 되찾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다이어리가 레이에게 자신을 직시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은 본인의 객관적인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변화를 위해선 과거를 성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레이의 상담치료사 케스터 선생님의 상담 방식에도 주목해야 한다. 케스터 선생님은 단순히 좋은 말을 건네기보단 레이가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하게끔 유도한다. 이 방법은 처음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자존감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레이는 자신을 세뇌한다. 너는 멋진 사람이라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지만, 드라마 후반에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멋진 사람이라고 믿고 칭찬하는 레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레이가 정신적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이상 행동을 중단할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에게 자기 변화의 핵심을 알려 준다. 우리의 행동 중 단 10%만이 의식적이며, 나머지 90%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니 매일의 행동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을 손보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무의식은 앞서 언급한 ‘세계’와 비슷하다. 무의식적인 행위를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피곤한 일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는 해냈고, 그 비법은 생각 외로 간단하다. 레이는 무의식에 깔린 자기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긍정적인 말을 자신에게 세뇌했다. 이처럼 생각 외로 뇌는 단순해서 반복과 세뇌에 약하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특정한 문장을 외우는 것은 결코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의식적 노력으로 무의식을 바꾸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성장은 진행되기 시작한다.

물론, 성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만족하고 그 자리에 머물고 싶다고 할 수도 있다. 당연히 힘들고 지칠 땐 쉬는 법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고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 채 산다면, 즉 무의식에 침잠해 산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간다. 옆 사람이 달린다고 내가 달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 자기 인생의 적극적인 주인만이 ‘생각대로’, ‘맘먹은 대로’ 흘러가는 인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정예인  112yenj@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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