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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교수의서재] 간결한 글 속에 담은 일상의 아름다움

이도빈l승인20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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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초등교육과 김현욱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현욱 교수는 읽는 이에게 따뜻함을 주는 글, 피천득의 수필들을 소개하였다. 왜 김현욱 교수는 교육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피천득의 수필들을 소개했을까? 지금부터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책을 추천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책은 목적성을 가지기 때문인데, 추천자가 생각하는 목적이 책을 소개받는 자와 소통되어야 하고, 책의 내용에 있어서도 공감이 전제될 때 올바른 추천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이 꽤나 곤란하게 느껴진다.

교사로서 성장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학술적인 서적을 소개하자니 수많은 전문서적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기 어려웠고, 시사적이거나 문화적인 서적을 소개하자니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에 부합할지 의심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고민하다가 내가 중학교 학창시절부터 줄곧, 반복적으로 읽고 있는 책이 있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처음 책에 대한 소개를 의뢰받았을 때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르는 책도 이것이었지만, 교과서에서도 소개되었고 비교적 널리 읽힌 책이기 때문에 굳이 다시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주저하였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 주고, 읽는 시점의 나의 삶을 바탕으로 늘 새롭게 해석되는 묘미가 있어 학생들과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집을 처음 접한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이다. 제목이 「수필」이었고 100여 쪽 되는 소책자였는데, 수록된 짧은 글들을 반복해서 보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글의 재미’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후 1996년에 보다 많은 작품을 실은 「인연」이 발표되었고, 널리 읽히게 되었다.

작가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피천득 선생님은 1910년에 태어나 2007년에 작고하셨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셨고,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셨다. 친일 문학인이라는 논란이 있기도 했는데, 일제 강점기를 살면서 지식인으로서 조국의 문제에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과거에 저항운동을 해야 될 필요가 많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앞장서서 하지 못한 것이 늘 부끄러웠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소소한 유머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아울러 독자의 삶도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이 기사를 통해서도 작품을 느껴볼 수 있도록 일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내게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이요, 희망이 있다면 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볕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다. 이제는 얼었던 혈관이 풀리고 흐린 피가 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젊음' 이 초록빛 '슈트케이스' 를 마차에 싣고 넓어 보이는 길로 다시 올 것만 같다.

어제 나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거리에 나갔다가 감기가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걸음걸이에 탄력이 오는 것을 느꼈다. 충분한 보상이다. 어려서 부르던 노래를 웅얼거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중략)...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리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두었던 화폭을 펴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시키려는 이때.

- 조춘(早春) 중에서 -

 

지금도 이부자리를 깔지 않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쓰러져 자는 잠이 참 달다. 이런 때 자리를 깔고 흔들어 깨우는 것같이 미운 것은 없다. ......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소리도, 하늘도, 신선한 햇빛조차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잠을 희생하는 댓가는 너무나 크다. 끼니를 한두 끼 굶고 웃는 낯을 할 수 있으나 잠을 하루 못 잤다면 찌푸릴 수밖에는 없다. 친구가 산책을 거부하거든 그가 전날 밤 잠을 잘 못 잤다고 인정하라. 적은 일에 신경질을 부리는 때에도 그리 알라. ...(중략)...

그러나 잠을 방해하는 큰 원인은 욕심이다. 물욕, 권세욕, 애욕, 거기에 따르는 질투, 모략 이런 것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가 많다. 거지는 한국은행 돌층계에서도 잠을 잘 수가 있다. ...(중략)...

잠자는 것을 바라다보면 연민의 정이 일어난다. 쌔근거리며 자는 애기, 억지 쓰다가 잠이 든 더러운 얼굴, 내가 종아리를 맞고 자는 것을 들여다보고 엄마는 늘 울었다고 한다. ...(중략)... 만약 천국에 잠이란 것이 없다면 그것이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도 나는 정말 가지 않겠다. ...(중략)...

학교가 늦었다고 일으키면 쓰러지고 또 일으키면 또 쓰러지던 그런 잠을 다시 자볼 수는 없을까?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온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 잠 중에서 -

 

수필은 일기와 같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어 진실성이 돋보인다. 삶의 조각, 조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충실한 성찰로 인생의 매순간을 소중히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알려준다.

피천득 선생님은 바닷가의 조약돌과 조가비를 모으듯 자신의 산재된 글들을 모아 수필집을 발간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내가 찾아서 내가 주워모은 것들이기에, 때로는 가엾은 생각이 나고 때로는 고은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산호와 진주가 나의 소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 예쁘지 않은 아기에게 엄마가 예쁜 이름을 지어 주듯이 나는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 부르련다.”

 

여러분의 삶에서 산호와 진주를 찾고, 그리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다. 소박하고 천진한 피천득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이러한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연 수업에 있을 것이고, 수업의 전문성은 지속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교육자로서 매순간을 수필을 써내려가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그래서 한 순간 한 순간의 의미를 진실되게 되짚어볼 수 있다면 어느새 훌륭한 교사로 성장해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도빈  1domingo@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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