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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컬쳐노트] '악'은 있다, '악마'는 없다.

한주안 기자l승인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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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이스라엘의 정보부는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남자를 체포했다. 그 남자는 즉시 비밀 가옥으로 잡혀가 심문당했다. 그의 이름을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나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영화 ‘아이히만 쇼’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에서 15개의 죄목으로 재판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히만이 재판받는 과정은 전 세계에 중계됐다. 재판이 진행되고, 아이히만의 만행을 직접 경험한 목격자들이 증언하기 시작한다. 증언과 함께 사람들은 충격에 빠진다. 모든 사람의 고개는 바닥을 향했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오직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침묵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은 재판장으로 집중됐다. 그 순간에 유일하게 한 사람만 차분했다. 그 사람은 재판 시작 때, 딱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기소 절차상 저는 무죄입니다.” 
영화에는 재판 당시 상황보다, 재판을 중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두 주인공은 모두 아이히만 재판을 중계하고 싶었지만, 서로 목적이 달랐다. 아이히만 재판을 ‘쇼’로 널리 알려야 했던 제작자 ‘밀턴’,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영상 감독 ‘레오’, 두 사람의 갈등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레오는 아이히만이 이 모든 재판과정에 반응하길 바랐다. 밀턴은 아이히만이 아닌 이 재판 과정을 ‘쇼’로 널리 알리길 바랐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은 영화 속에서 레오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How가 아니라 Why에 집중해야 한다.” 레오는 재판으로 사람들이 아이히만이 왜 그렇게 됐는지 배우길 바랐다. 그러나 밀턴은 단지 이 사실이 어떻게 됐는지 보여주길 바랐다. 이 모습은 직면해야 할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두 가지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끝까지 아이히만은 모든 사람이 학살의 장면을 보기 힘들어해도 덤덤히 영상을 보았다. 레오는 아이히만이 어떠한 죄책감을 보여주지 않아 분노한다. 그는 진정 악마인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아이히만 재판 과정을 따라 써졌다. 이 책에서 아이히만은 가장 강력한 악마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우리와 비슷한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한 예시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한 사람의 따귀를 때린 일조차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학살에 관해 아이히만은 국가를 위한 일에 충성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누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이히만의 정신 감정 결과는 너무나 정상적이었다고 한다. 악마라고 칭해졌던 사람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책의 저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무사유’, 즉 생각과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악의 평범성’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말하는 개념이다. 고로 아이히만은 악마라고 할 수 없다. 아이히만은 국가에 헌신했다. ‘사유’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중령 아돌프 아이히만이었을 뿐이다. 
아렌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영화 속에서 레오가 하고 싶은 말과 동일하다. 레오는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렌트는 그 상황이 사유 없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무사유, 톱니바퀴 같은 인생이 여러 ‘악’보다 무섭다. 비단 아이히만에 대한 분석이 아니다. 우리 모두 똑같다. 
아이히만에 관한 영화와 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첫째는 우리는 여러 사건에 대해 어떻게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악마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무사유’로 인해 만들어진다. 두 가지 이야기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아렌트는 책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오늘도 우리는 사유해야 한다. ‘어떻게’가 아닌 ‘왜’에 집중해서 사유해야 한다.


한주안 기자  juan@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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