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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청람문학상] 가작 소설 '황태'

유아교육과 19학번 이희문 학우 한국교원대신문l승인2020.02.17l수정2020.02.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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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태 (창녀)

 

눈물이 나오려 한다. 아래가 미친 듯이 아리다. 하지만 눈물을 참는다. 난 ‘생태’다. 저 ‘황태’들과 나는 다르다. 난 아직 마르지 않았다. 몸을 팔지언정 영혼까지 팔진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밤 절정(미군 놈들이 킬킬대며 하는 말로는 오르가슴이라고 하는 것 같다.)을 느끼며 난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르가슴이란 영혼의 판매인가.’, ‘나는 점점 황태로 말라가고 있는 것 아닌가.’

 

매일 밤 대략 8명의 악마들이 내게로 온다. 분칠을 잔뜩한 것 마냥 허연 악마들이 대부분이다. 난 매일 생각한다. ‘저 분칠만 벗겨내면 잔뜩 탄 숯마냥 꺼먼 악마가 있을 것이야’ 가끔은 굴러다니는 놋쇠마냥 누런 악마들도 내게 온다. 나와 같은 색이지만도 난 이들을 같은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허연 것이든 누런 것이든 내게 ‘악마’는 ‘악마’일 뿐이다.

 

새벽 6시 악마들과의 대결이 끝난 뒤 난 미군부대 앞 교회에 간다. 아래가 아려 엉기적거리며 발걸음을 옭기고 있는데 저쪽 판잣집 앞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이가 힘겹게 말을 건넨다. “묵을 것 좀 주이소...” 마음이 퍽 상해 아까 악마들에게 받은 통조림 햄, 담배, 쪼꼬렛을 아이에게 던져주었다. “마이 무라” 말을 던지고 난 교회로 발걸음을 이었다. 저들은 생태이다. 메마른 듯 보여도 팔팔한 생태들이다.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이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 배운 사람들의 말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싸움이라니 이승만과 김일성의 싸움이라니 온갖 어려운 소리를 해대었다. 그딴 거 뭐가 중요한가. 나 같은 생태들에겐 그저 딱딱하게 메마른 황태들의 싸움인 것이다.

 

시퍼런 황태와 시뻘건 황태들의 싸움으로 난 부모를 잃었다.

 

아비 생태는 시퍼런 황태들에게 이끌려 전쟁터로 나갔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팔팔하던 아비 생태는 딱딱한 황태가 되어 돌아왔다. 아비 황태는 매일 중얼거렸다.

 

“김일성 개새끼, 김일성 죽일 새끼, 김일성 씹어죽일 새끼”

 

황태에게도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황태에게 동정의 감정이란 들지 않았다. 단지 팔팔하던 생태가 어찌 저렇게 바뀔 수 있나 신기한 감정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신기’라는 감정은 나는 황태가 되지 않겠다는 ‘경각심’으로 이어졌다. 아비 (황태)는 빨간 것이면 무엇이든 싫어했다. 잡어를 회 떠 넣은 김치를 그렇게 좋아했었지만 돌아온 첫날 상다리를 엎고 발작을 일으킨 뒤 김치는 상다리에서 사라졌다. 악마들을 만나러 얼굴에 분칠을 할 때도 입술만은 집 밖에서 칠하였다.

 

아비 황태는 2년 전 시퍼런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항구에 찾아가 퉁퉁 불은 아비를 봤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던 퍼런색과 함께 죽음을 맞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칼에 찔렸다면 시뻘건 피를 보고 죽을 때도 발작을 일으켰을 것이다. 돌같이 딱딱한 황태가 물에 불어 부드러워진 것을 바라보니 웃음이 나왔다.

 

다시 한 번 신기했다.

 

“황태는 뒤져야 한다, 암 맞다” 난 이 말을 남기고 퉁퉁 불은 황태로부터 등을 돌렸다.

 

어미 생태는 폭격을 맞고 죽었다. 아비 생태(이 시기는 생태일지 황태일지 모르겠다.)가 전쟁터에 끌려간 뒤 몇 달 뒤 나, 어미, 동생 세 가족은 낙동강을 건너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미는 짐을 뭘 그리 바리바리 싸왔는지 수레에 다 담지도 못해 머리에 까지 짐을 이고 있었다. “곧 다 뒤질 거 같은데, 뭘 그리 바리바리 챙겨 왔노?” 동생이 언짢게 소리쳤다. 어미는 말이 없었다.

 

낙동강에 거의 다다를 때 폭격소리가 들렸다. 귀가 찢어질 듯 했다. 폭탄이 주위로 떨어졌다. 머리에 짐을 이기 위해 저 멀리 오던 어미는 홀로 폭탄을 정통으로 맞았다. 어미 생태는 펄떡펄떡 뛰며 고통스러워했다. 눈물이 났다. “뭐하노! 다 뒤진다. 퍼뜩 도망치라!” 동생이 소리쳤다. 황태로 말라가는 코다리(생태를 반 쯤 말린 것: 생태와 황태 중간) 한 마리가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어미를 등지고, 코다리 한 마리와 나는 부산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미는 생태로 죽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부대 앞 교회에 도착했다. 악마들의 소굴 앞 교회가 있다니.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난 예수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그저 ‘악마’와 대비되는 존재를 찾다보니 저절로 떠오른 것이다. 악마의 반대가 부처라고 한다면 모두 비웃을 것 아닌가. 내게 예수란 숭배의 존재가 아니다.

 

안은 퀘퀘한 냄새가 나고, 조용히 나오는 찬송가가 나오며, 앞에는 곧 부서질 듯 한 십자가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안에는 사람 한 명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까 내게 온 허연 악마였다. 눈물을 흘리며 말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구역질이 나오려했다. 아까는 나를 폭행하며 범하던 악마가 저러고 있다니.

 

‘저건 반성이 아니다 악마의 합리화이다.’

 

라고 생각하며 문 밖으로 뛰쳐나와 구토를 하였다. 늦은 밤, 저녁으로 먹었던 비빔밥의 시금치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튀어나왔다. 고추장 섞인 위액이 목을 쿡쿡 찔러 눈물이 나왔다.

 

그 뒤로 다시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

 

2. 코다리 (창녀의 동생)

 

‘지루하다. 지루하다. 지루하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아비 황태처럼’

 

난 말라가고 있다. 나 자신조차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차디찬 ‘겨울’이 아닌가. 말라간다는 것 그것은 나 ‘코다리’의 운명인 것이다.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코다리에게도 감정이란 것은 있다. ‘감정’을 만든 작자는 누구인가.

 

부처? 예수? 알라? 이승만? 김일성?

 

만약 내가 신이라면 감정 따위는 인간에게서 빼버릴 것이다. 감정이란 모두를 망쳐놓는 주범이다. 감정으로 싸움이 일어나며, 감정으로 전쟁이 일어난다. 모두가 감정이 없는 모두가 식물인간인 세계. 너무나도 이상적이지 않은가.

 

난 매일 폭격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낙동강을 지나기 전, 그러니 어미가 죽기 전 우리 집은 매일 폭격 소리와 군인들의 비명소리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마 그 때까지도 난 ‘생태’였을지 모른다. 소리 따위야 얼마든 참을 수 있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기 닷새 전 난 나무를 하러 뒷산에 올랐다. 곧 가을이 오는지 제법 마른 나무들이 제법 많았었다. 3일 정도 쓸 나무들을 챙겨 내려가려는 찰나 서쪽에서 북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난 그 서쪽을 궁금해 하지 않았어야했다.

 

“내래 한 번만 살려주시라우” “북쪽에 홀어미가 있다우. 한 번만 봐주시라우”

 

인민군 3명이 국군 한 부대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겉보기에도 나이가 어려 보여 학도병들로 보였다. 내 또래 같았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탕 .......... .... ........ 탕 탕........ 탕 탕 탕

 

한눈팔 겨를도 없어 국군은 학도병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많이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총소리가 들렸다. 화약 냄새가 내 코를 깊게 찔렀다. 총을 쏘며 국군들은 외치고 있었다.

 

“뒤져 개새끼들아” “뒤져 빨갱이 새끼들아” “뻘건 것들은 다 죽여 버려”

 

아아!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쌀쌀한 초저녁 난 ‘코다리’로 말라가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드르륵.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에 히로뽕 한 대라도 더 맞는게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 봉지, 두 봉지, 세 봉지 몇 봉지 남지 않은 가루가 눈에 밟혔다.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밀가루 공장에 다니는 누나의 월급으로 사면 그만이었다.

 

‘주사기를 든 순간에는 내가 감정의 조절자이며, 내가 신이다. 내가 이승만이며, 내가 김일성이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왼 팔뚝을 치며 정맥을 찾으려 했다. 너무 많은 주사구멍으로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오른 팔뚝을 툭툭 쳐 푸른 정맥을 찾았다. 정맥이 불룩 솟았다.

 

ㅡ푹 ㅡㅡ주욱

 

성수가 내게 들어왔다. 몸에 활기가 돋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드르륵 다시 한 번 서랍을 열었다. 돈 몇 원을 챙겨 범전동 미군기지 앞 사창가로 향할 생각이었다. 몇 번이고 오입을 할 생각에 저절로 발기가 되었다. 문을 열기 전 유리창에 비친 메마른 코다리 한 마리가 보였다. 씨익 웃음을 짓고 문을 열어 범전동 사창가로 향했다.

 

입에선 웃음이 번지고, 눈에선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3. 생태와 한쪽 지느러미가 잘린 생태 (창녀와 상이군인)

 

어느 날처럼 평범한 하루였다. 5명의 악마를 맞이했다. 다른 날보다 아래가 평소보다 조금 더 아리다는 것을 빼고는 지루할 정도로 평범했다.

 

드르륵, 누런 색 악마가 들어왔다. 아니다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황태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자세히 바라보았다. 왼쪽 팔이 없었다. 몇 년 전 전쟁으로 잃은 팔이거니 짐작했다. 주인 없이 덜렁거리는 왼 소매가 외로워 보였다.

 

이상하게도 사내는 방에 들어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메말랐다. 사내의 빈 소매 사이로 보이는 갈비뼈는 앙상하게 메말라있었다. 사내는 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오입 할 돈은 없고 이야기나 같이 해주세요.”

 

마침 무료하던 찰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동생 놈의 히로뽕 값으로 나갈 돈, 벌어서 무엇하나는 생각도 한 몫 했다. 난 시큰둥한 척 하며 대답했다.

 

“알았소. 재미없기만 하면 바로 쫓아낼 거니 각오하이소.”

 

사내는 쉰 목소리로 힘겹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서울에서 왔어요. 서울 가보신적 있으신가요? 매일매일 커다란 장이 열리죠. 왜놈들이 나라를 점령할 때 전 남산 중턱에 살았어요.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이면 매미가 울고 가을이면 단풍이 지고 겨울이면 눈꽃이 펴요. 계절을 즐긴다는 것 얼마나 즐거운지 아시나요?”

 

예전 대구 고향에 살 때가 기억이 났다. 봄이면 뒷동산에서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구워먹고 여름이면 집 앞 개울에서 멱을 감았다. 가을엔 밤송이를 까 생밤을 까먹고 겨울엔 가족들과 방에 모여 고구마를 호호 불어먹었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이 행복한 기억은 내 입에서 쉽사리 튀어 나오지 못하였다. 목구멍에 커다란 송편 하나가 걸린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범해지는 내가 이런 ‘평범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죄처럼 느껴졌다.

 

‘난 행복할 자격조차 없는 년인가’

 

눈물이 났다. 신기했다. 아무리 악마들에게 범해져도 아랫도리가 찢어질 듯 아파도 참을 수 있던 눈물이 쉼 없이 나왔다. 사내는 한 팔로 나를 안아주었다. 그 어떤 온돌보다 따듯했다. 사내도 함께 우는 듯 했다.

 

우리는 서로를 동정했다. 병신은 창녀를 동정했다. 창녀는 병신은 동정했다. 아마 남들이 볼 때는 어느 곳에나 있는 평범한 하층민들이 지랄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세상에는 지금 우리 둘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안기는 동안 동정이라는 감정은 사랑으로 변해가는 듯 했다.

 

사내는 그 뒤로도 삼사 일에 한 번씩 완월동 사창가로 찾아왔다. 사내는 돈을 가지고 오지 못하였고 그래도 난 웃는 모습으로 그를 받아들였다. 거무튀튀한 배경의 완월동 여관은 우리 둘이 있을 때만은 밝은 시내의 카페 같았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 안에 있는 송편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릴 때 서리를 하고 도망치다 똥통에 빠진 이야기, 광복 때 도망치는 왜놈들에게 썩은 홍시를 던진 이야기, 학창시절 학교에 나온 귀신 이야기 등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내가 오지 않을 때에는 난 그와 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악마들과의 대결을 버텨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꺼내지 않았으며 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우리들만의 금기사항이었다. 우리는 겨울의 메마른 갈대들과 같았다.(아 그렇다고 황태 따위와 나를 비교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문맥에 따른 ‘메마름’의 차이는 알 것이라 생각한다.) 성냥불 하나로도 화르륵 불타오를 준비가 우리는 되어 있었다. ‘전쟁’이란 우리에게 성냥불과 같은 존재였다. 꺼내봤자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선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했다고 보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그만큼 ‘전쟁’은 우리에게 절망적이었으며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사내와도 실없는 장난을 슬슬 쳐갈 때 사내는 내게 물었다.

 

“시내 한 번 나가보지 않을래요?”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기분 좋게 대답했다.

 

“좋아요.”

 

사내는 해맑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몇 년 만에 웃어서 그런지 근육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근육이 아렸다.

 

우리는 보름달이 뜨던 날 시내로 나갔다. 보름달은 밝고 컸다. 사내와 함께 카페로 갔다. 우리는 커피를 시켰다. 한 모금 마시고 너무 써 기침을 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크게 소리 내며 웃었다. 아직까지 웃음이 어색했지만 조금은 나아진 듯 했다.

 

그리고 사내는 내게 글 하나를 읽어주었다.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였다.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희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오. 나는 진정 네가 좋다.’-1935 이상이 최정희에게

 

편지를 다 읽은 뒤 사내는 말하였다.

 

“당신에게 이 편지를 꼭 읽어주고 싶었어요. 전 당신이 좋아요. 당신 그 ‘자체’가 좋아요. 하지만 당신과 있으면 왜인지 모르게 슬퍼요. 네, ‘동정’의 감정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언제인가부터는 ‘동정’은 ‘동질감’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번져나간 것 같아요. 사랑해요. 정말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 이였다. 사랑받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 것을. 난 그 행운을 전쟁 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눈물로 가득 찬 눈을 떠 앞을 바라보니 사내도 함께 울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지만 입에서는 웃음이 지어졌다. 웃음을 거부하던 근육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웃음을 받아주었다. 우리는 입을 맞췄다.

 

보름달이 크게 뜨던 날 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저고리를 풀었다. ‘자발적’으로 치마를 벗어던졌다. 행복했다. 그리고 이 행복이 영원하길 바랐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4. 갓 마른 황태 (창녀의 동생)

 

누워서 담배를 피며 난 말라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코다리’였지만 언제든 ‘황태’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나 또한 있는 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 체념했다.

 

난 나 스스로를 포기했다.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는 내게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난 그 이치를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매일매일 범전동 사창가에 가 오입을 하고 히로뽕을 맞았다. 집의 돈은 달마다 누이가 벌어와 부족할 일은 없었다. 밀가루 공장에서 뭐 그리 많이 벌어오나 궁금증은 들었으나 깊게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귀찮았다. 그저 히로뽕 값과 오입 값만 있으면 괜찮았다.

 

오늘은 한 번 멀리 있는 사창가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문뜩 들었다. 범전동 사창가에 있는 계집들이 질리기도 했으며 완월동 계집 중 하나가 곱고 맛이 좋다는 소문은 부산 전역에 널리 퍼져있는 사실 중 하나였다.

 

히로뽕 한 대를 맞은 뒤 문을 열고 나갔다. 곧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혹시 몰라 우산을 하나 챙겼다.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성욕을 참으며 완월동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길을 가다 소나기가 쏟아져 우산을 펼쳤다. 우산이 다 헤져있었다. 구멍으로 빗방울이 들어와 내 얼굴을 때렸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월동 가는 길은 빈민가를 거쳐 가지 않으면 가지 못했다. 역한 내가 났다. 똥물이 넘쳐 주위에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굶주려 판잣집 안에 무기력한 눈으로 누워있었다. 인간의 세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다시 한 번 이 말을 생각하며 코를 막고 완월동으로 향했다. 할 수만 있다면 눈조차 막고 싶었다. 코를 막아도 냄새는 내 코를 후벼 팠으며 귀에서는 한 가족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완월동에 다 와갈 즈음 옆에 있는 밀가루 공장이 보였다. 누이라는 작자가 일하는 공장이었다. 언젠가 누나가 한 말이 문뜩 생각났다.

 

“히로뽕을 쳐 맞든가 사창가에 가 계집 오입질을 하든 동 말든 동 내 알 바 아이다. 내 일하는 완월동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마라. 니 같은 상놈이 지랄하는 거 꼴도 뵈기 싫다.”

 

물론 내가 완월동에 가지 않고 범전동에 간 것은 완월동이 우리 집과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고 범전동에 정을 준 계집 한 명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누나가 왜 그렇게 과격하게 이야기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월동은 예상 외로 컸다. 미군들이 오입질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범전동보다 불빛이 휘황찬란했다. 계집들의 얼굴도 훨씬 뛰어났다. 난 소문의 계집을 만나러 금성관으로 향했다. 금성관에 들어가니 여관주인 한 명이 1층에 있었다. 그 계집을 만나려면 대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3층에 올라가 앉아있기로 정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계집들의 신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3층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 연거푸 3대를 피웠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집에서 챙겨온 히로뽕과 구깃구깃해진 13원이 보였다. 아까 맞은 히로뽕의 약발이 다 된 듯 해 주사기에 히로뽕 가루를 넣었다. 기대하던 계집을 만날 생각에 히로뽕 한 대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두 대를 연거푸 팔뚝에 더 넣었다.

 

미칠 것 같았다. 항문으로는 변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발기가 된 정도도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드르륵, 때 마침 그 계집의 방에서 허연색 미군이 나왔다. 바지 지퍼를 잠그며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온 것이다.

 

흥분한 채로 난 미군의 어깨를 치는 것도 알지 못하고 달려갔다. 뒤에서 미군이 욕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방에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을 지닌 창녀 한 명이 있었다.

 

분명 지금 시간이면 밀가루 공장에 있어야 하는 창녀 한 명이 있었다.

 

내게 완월동 사창가에 오지 말라며 상소리를 하던 창녀 한 명이 있었다.

 

내 히로뽕 값, 오입질 값을 대주던 창녀 한 명이 있었다.

 

 

내 누이가 있었다.

 

아아!! 난 완전히 말랐다. 난 코다리에서 황태가 되었다.

 

앞에 있는 석침(돌로 만든 베개)이 눈에 보였다. 집어 든 뒤 방금 나간 미군을 따라 나섰다.

 

5. 코다리 (창녀)

 

내 앞에는 황태 한 마리가 있었다. 양 팔에는 주사자국으로 멍이 가득했다. 아래는 발기가 되어있었다. 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 안에 송편이 낀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고통스러웠다.

 

황태 한 마리는 내 앞에 있는 석침을 집어 든 뒤 밖으로 뛰쳐나갔다. 몇 초 뒤 퍽 소리가 들리며 미군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까 나를 범한 허연 악마였다. 고개를 밖으로 꺼내 난 그저 바라보았다. 미군도 처음에는 저항하는 듯 하더니 이내 숨이 멎은 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럼에도 황태는 돌로 계속 머리를 찧고 있었다. 피가 층 전체로 번졌다.

 

몇 분 뒤 내 동생은 내게로 다가왔다. 석침은 죽은 미군 옆에 놓여있었다. 다가오자마자 발로 내 배를 걷어찼다. 그런 뒤 동생은 내 몸 전체를 때렸다.

 

그럼에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회개’하는 느낌이 들었다.

 

더렵혀진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난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가장 큰 오르가슴을 느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편하게 잠들었다.

 

6. 황태 (창녀의 동생)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쓰레기 같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제 남은 것은 쓰레기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바다에 몸을 던졌다.

 

몸을 던지며 잠시 생각했다.

 

‘날 이렇게 만든 게 무엇일까’

 

답은 ‘전쟁’이었다.

 

7. 코다리 (창녀)

 

몇 일 뒤 눈을 떠보니 병원에 누워있었다. 동생은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했다. 아직 시체는 찾지 못하였다고 했다. 병원비로 전 재산을 사용했다. 아직 복장에 통증이 있었지만 돈이 부족해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았다. 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단지 동생이 ‘황태’인 것을 빼고는, 황태는 황태답게 죽었다는 것 빼고는

 

조사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가 서랍에 있는 히로뽕을 맞았다.

 

복장에 통증이 사라졌다. 몸을 움직이고 싶어 미칠 듯 했다.

 

벽면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황태로 말라가는 ‘코다리’ 한 마리가 보였다.

 

8. 한쪽 지느러미가 잘린 생태 (상이군인)

 

완월동 사창가에는 큰 살인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미군이 죽어 꽤 크게 소문이 났었다. 그 뒤로 그 여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다른 창녀만 나를 반길 뿐 이였다. 여관 주인에게 부탁해 여자의 자택 주소를 알아내었다.

 

여자의 집은 너무나도 허름했다. 곧 쓰러져만 갈 것 같은 지붕과 마당에는 쓰레기가 널부러져 있었다. 변소에는 구더기들이 부화해 날 파리 떼가 설쳤다.

 

신발을 벗고 방문을 열어보았다.

 

악취가 났다. 요강이 넘쳐 방 안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안에는 충혈 된 눈, 메마른 얼굴, 주사로 멍든 양팔을 지닌 여성 한 명이 있었다. 눈에는 힘이 없었다. 그저 거울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은 그저 거울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거울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여자를 들쳐 업은 뒤 대문을 열고 병원으로 향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을 때려잡자는 선전구호가 외쳐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배고픈 아이가 왕왕 울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하늘이 누렇게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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