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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호/컬처노트] 향기로운 세상을 맡아봅니다

김현정 기자l승인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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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손 씻으셨어요?” 악수를 하던 박 사장의 와이프가 흠칫, 불편한 안색으로 묻는다. 김 기사의 눈동자는 데굴데굴 위를 향한다. 지난 9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의 상을 거머쥔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기우의 가족은 반지하에서 백수로 살아간다. 기우는 친구의 부탁으로 박 사장 집에 과외를 가게 된다. 입학하지도 않은 대학의 입학증을 들고, ‘케빈 쌤’으로 말끔히 신분세탁을 한다. 이후 기우의 가족은 박 사장 부부를 속여 미술 선생님, 운전기사, 가사도우미로 줄줄이 이 집에 들어온다. 박 사장 가족이 집을 비운 어느 날, 쫓겨났던 가사도우미가 방문하며 영화의 분위기는 전환된다. ‘기생충’은 ‘계급’, ‘양극화’라는 보편적이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담아낸다. 이 주제를 마주하면 자본주의 사회에 불편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선명한 주제도 있지만 흐릿하면서 은근히 불편함을 주는 요소도 있다. 바로 굳어가는 기택(김 기사)의 표정이다. 평소 기택은 생글생글한 얼굴로 박 사장과 사모님을 모신다. 하지만.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냄새가. 지하철 타는 분들 특유의 냄새가 있거든.” 테이블 아래에서 박 사장의 말을 듣는 기택은 웃지 않는다. 인내하는 듯 어둡다. 장을 본 후 차를 타고 가던 박 사장의 와이프가 코를 막고 창문을 연다. 기택의 얼굴은 굳는다. 경직된 얼굴로 자신의 옷 냄새를 맡는다. 아수라장이 된 생일파티에서 박 사장이 열쇠를 줍다가 코를 틀어막을 때, 기택은 결국 박 사장을 칼로 찌른다.

냄새. 그리고 냄새나는 기택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의 표정을 어둡게 만든다. 이 시선과 행동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자들의 비도덕적인 모습이라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라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그런 모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할 법한 사람들만의 행동이 아니라, 현실적인 우리의 시선이고 편견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비난하지 못한다. 우리는 냄새를 만든다. 보이지 않는 냄새를 만들고, 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린다. 냄새에 가려진 사람을 먼저 보지 않는다. 지난 7일, 숙명여대 법학과에 합격한 A씨가 등록을 포기했다. 그녀는 트렌스젠더이다. A씨가 입학 의사를 밝히자, 숙명여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녀의 입학을 반대하는 채팅방이 만들어졌다. 서울 지역 6개의 여대를 포함한 23개의 여성단체는 “본인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가부장제 속 여자의 실제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여자들의 공간을 자신의 성별 증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익명의 학생들은 ‘순헌황귀비 뒷목 잡고 쓰러져···명신여학교에 내시 입학’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올렸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A씨가 입학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냄새를 만들었다. ‘지난해까지 남자로 살아왔으면서 소수자인 여성 행세를 하는 사람’.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사람’으로 A씨의 냄새를 만들었다. 그 냄새를 혐오하고 비난했다. 그들만 그랬을까. A씨를 바라보는 사회는 어땠을까. 어느 봄날에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었다. “너는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 그분들을 존중하고 그분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너가 지하철을 탔는데, 너 옆자리에 그분들이 앉는다면 어떨 것 같아?” 나는 순간 멈칫했다. “같이 타고 가는 거지.” 평소 여러 인터뷰나 영화를 통해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편견없이 바라본다고 생각했는데, 찰나의 순간 나는 멈칫했다. 희미한 냄새를 만들고 그 냄새에, 나는 주저했다. A씨의 선택을 응원하는 사회적 움직임도 있지만 잠시의 멈춤도 존재했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한다.

냄새를 만들고 그 냄새에 휩싸여 나의 시선에 눈이 멀었다면, 돌아오라. 냄새를 걷어내고 사람을 보라. 반지하 냄새가 나는 기우의 가족에게 얼굴을 찌푸리기 전에, 우리는 기우 가족의 삶을 봐야 한다. 그 현실에, 처절함에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연대해야 한다.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한 A씨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냄새에 주저하기 전에 그녀를 봐야 한다. 신체와 마음이 달라 속으로 수도 없이 눈물을 흘렸을, 어쩌면 보편적인 사회적 소수자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았을, 그럼에도 당당하게 도전했을, 그녀를.

사람에게 먼저 공감하고 연대하는, 향기로운 세상을 꿈꿔본다. 그 향기로운 세상 속에, 더 이상의 눈물이 없기를 기도한다.


김현정 기자  20192011@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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