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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교수의 서재] 매체의 변화가 바꾸지 못한 추억

양인영l승인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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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면서 매체 또한 변화하였다. 종이책은 점점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전자책이 채우고 있다. 기술교육과 김지민 교수는 매체의 변화가 가져온 소설의 변화와,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종이책의 추억을 말한다.

 

◇ 교수님이 학창시절에 인상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인가요?

저는 책을 읽으면 다 요약을 해야 해서, 웬만하면 책을 읽기 싫어해요. 그런데 무협지나 판타지는 요약을 안 해도 술술 읽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많이 읽어요. ‘군림천하’는 작가님이 굉장히 오래 쓰고 있는 무협지예요. 이 책을 작가님이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가 제가 고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였는데, 아직도 안 끝났어요, 예전에 제가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공이 형이었거든요. 대학교시절 때는 거의 동갑까지 갔다가, 이제는 한참 어려졌죠. 제가 나이 먹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책이 30권이 넘어가니까. 제가 끝나는 걸 좀 싫어해서 이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토리를 대강 이야기하면, 무협 세상이에요. 중국 대륙 안에서 각 지방마다 무공을 잘 하는 소림사나, 무당파나, 화산파 같은 문파들이 있어요. 그런 문파들이 퍼져 있는 가운데, 이 책은 한 문파에서 ‘전 중원을 다 무공으로 꺾어서 유명해지겠다’라는 꿈을 가지면서 시작해요. 어찌 보면 유치한 시작이지만 읽다보면 좀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읽다보면 주인공이랑 같은 꿈을 꾸게 돼요. 이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아요. 시작은 주인공이 과거에는 빛이 났으나 지금은 다 쓰러져 가는 문파에서 이 불가능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 거죠. 여기서 문파는 태권도장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혈연으로 이어진 건 아니지만 다 각각 사연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이 합숙하면서 무공도 익히는 거예요. (주인공이) 그 영세한 데에서도 문파를 잘 꾸려나가요. 옆에 있는 다른 굉장한 문파와 싸우면서 죽을 위기를 겪다가 점점 강해지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독자는 같이 희열을 느끼는 거죠. 보통 이런 책에선 1권부터 주인공이 강해요. 그런데 이 책은 주인공이 6권, 7권까지는 약하다가 강해져요. 그러면 그 순간에 주인공이 기뻐하는 것과 동시에 독자도 같이 기뻐하게 돼요. 지금은 이 주인공이 중원에 이름을 떨치는 상황에서 과거의 매듭들을 풀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리고 저는 또 ‘마시멜로 이야기’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어요. 힘들 때 항상 이게 탈출구가 되었죠. 그 지옥 같은 생활에서. 이 책은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홀린 듯이 사게 되더라고요. 책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리면 자기 계발서 같기도 한데, 기본적으로 소설의 틀을 가지고 가요. 자기계발서적은 보통 성공한 사람이 자기 이야기만 자랑하듯이 하는 거고, 사실 그대로 따라한다고 그게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 책은 소설 형태로 교훈을 준다는 게 좀 좋았어요. 그리고 저는 그 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실험을 해서 하고 싶은 말은 ‘현재 힘든 걸 참고 좀 아껴둔 사람이 마지막에 잘 된다’잖아요. 전 성격상 다람쥐같이 많이 모아 두거든요, 집에 가면 학용품이 아직도 있고, 돈 있으면 저금해놓고, 엄마한테 맡기고, 한 번도 못 찾고 했어요. 저는 시험에 나오는 모으는 사람이었거든요. 결국 그 마시멜로도 못 먹고 썩을 거예요. 한 개 참으면 두 개 주는데, 두 개도 안 먹고 놔두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제 성격을 좀 싫어했어요.
공부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는데, 이 책으로 힘든 게 나중에 보상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학부 때도 읽고, 대학원 때 힘들 때도 열심히 읽었어요. 그땐 스스로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때 ‘마시멜로를 모으는 과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던 것 같아요.

 

◇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요즘은 종이책을 잘 안 읽는 것 같아요. 플랫폼이 바뀌었어요. 군림천하의 작가님도 인터넷으로 옮겨 갔어요. 전자책이 한 화에 100원짜리고 종이책 한 권을 자르면 3200원, 32회 분량으로 쪼개져요. 그런데 그러면 긴 호흡의 책이 안 나와요. 그래서 그 100원 안에서도 책 한 권처럼 호흡이 들어가는 거죠. 그렇게 변화하는 걸 보고 있어요. 일반적인 책들은 인터넷으로 넘어가도 한 권 단위로 팔지, 잘라서 팔지 않잖아요. 장르소설이나 만화 쪽이 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진중한 분위기의 글이 주로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지고, (책을 읽는) 목적도 변했어요. 100원 딱 내서 딱 그 순간만 즐거우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용도 굉장히 가벼워지고, 긴 호흡의 이야기도 싫어해서 단타 식으로 가야 해요. 군림천하는 굉장히 긴 호흡의 이야기를 30권 내내 하는데. 물론 팬들은 보죠. 하지만 요즘 신규 독자가 유입될까 싶으면 조금 아닌 것 같아요. 긴 호흡으로 쓰던 사람들은 이런 가벼운 글을 못 쓰는 거죠. 옛날 그 세대 그 시절에 작가 하셨던 분들 중에 살아남아 작가 하시는 분이 몇 명 안 돼요. 다 100원짜리 안에 딱딱 끊어서 잘 쓰는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죠.
이렇게 한 권의 책을 다 나누다보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 작가분도 그걸 못 견뎌하는 분들 중에 하나였어요. 100원으로 자르면, 100원이 아깝다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열심히 썼는데, 독자는 100원이 아깝다고 하니까 굉장히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저도 안타까워하고 있어요. 그래도 그건 그 나름의 재미가 있기는 해요. 스스로도 긴 호흡의 무거운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책을 찾아보긴 하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돈 내고 읽는 거 보면 다 그런 흥미 위주로 읽더라고요. 나조차도 좀 변했구나, 생각이 들어요.

 

◇ 저도 장르 소설을 좋아해서, 전민희 작가님 책을 많이 봤어요.

전민희 작가 좋아해요. 이분은 굉장히 섬세하게 쓰거든요. 여성 작가랑 남성 작가랑 좀 차이가 있는데, 남성 작가는 액션신을 잘 쓰고 여성 작가는 여성 작가 특유의 주변 묘사나 섬세한 인간관계, 연애 관계를 잘 써줘요. 캐릭터를 존중하는 느낌도 굉장히 많이 들고. 이분은 이야기를 잘 지어내요.
‘세월의 돌’은 고3 끝나고는 돈이 없을 때니까 빌려서 봤어요. 이 책은 너무 슬퍼요. 굉장히 슬퍼서 보다가 마지막에 울었어요. 이 책의 마지막이랑, 전민희 작가의 룬의 아이들에서 마지막에 고백하면서 손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굉장히 슬펐어요.제가 세월의 돌을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읽었는데 고등학교 때 한 번 읽고, 학부 때 한 번 읽었어요. 학부 때는 한참 공부 안 해서 학점이 0점대고 그럴 때였어요. 그때 시험 보러 가야되는 데 시험 보러 안 가고 이걸 읽었어요. 책장에 책이 꽂혀있는 걸 보면 그런 생각들이 다 나요. 옛날 노래 들었을 때 그때 있었던 일이 생각나듯이. 게임도 영화도 그렇거든요. 옛날 게임은 지금은 절대 안하지만, 그래도 보면 옛날 생각들이 나요. 책도 그래요. 책이 또 읽어야만 책이 아니잖아요. 꽂아놓고 한번 스쳐볼 때, 책에 관련된 기억들이 다 나요. 이걸 읽었을 때 내가 가졌던 추억들이.


양인영  071255@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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