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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호/독자의 시선] 기억을 위한 장소

한국교원대신문l승인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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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블라디보스토크는 추웠고, 이따금 빗방울 섞인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양 턱이 딱딱 부딪쳤다. 출발하던 날 받은 비닐 우비는 이미 비도 추위도 막아주지 못했다. 우리는 길가에 어색하게 몰려서서 다 같이 길 건너편의 슈퍼마켓 간판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Елен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선생이 살던 집은 이제 ‘엘레나 슈퍼마켓’이 되어 있었다. 함께 온 민족문화연구소 실장님은 선생의 삶과 업적에 대해 열띠게 설명했지만, 평범한 슈퍼마켓 간판 앞에서 제대로 집중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나는 자꾸 떠오르는 불경한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 저 슈퍼마켓에서 따뜻한 코코아를 사 마실 수 있었으면…….

이후의 일정도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우리는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을 탐방하러 여기까지 왔지만(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주관한 해외 탐방이었고, 우리는 국내 탐방 대회에서 입상한 대학생들이었다), 정작 탐방할 만한 사적은 많지 않았다. 조선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신한촌은 이제 아파트와 차고들이 모여 있는 거리가 되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세웠다는 학교들은 이제 은행이 되었거나 아니면 위치조차 정확히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기념비들뿐이었다. 생소한 키릴 문자가 새겨진 기념비 앞에서 묵념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기억하기 위해 러시아까지 찾아갔지만, 우리는 기억에 실패했다고. 이 사람들이 정말 누구였는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 우리는 아마 영영 모르게 되었다고.

미국의 저술가 리베카 솔닛은 ‘기념비 전쟁’이라는 글에서 베를린의 슈톨퍼슈타인(홀로코스트 피해자가 잡혀간 집 앞 보도에 설치한 작은 명판으로, ‘발에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장소에도 기억이 있다고,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억도 사람처럼 죽을 수 있지만, 계속 살아 있도록 만들어질 수도 있다. (…) 우리가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은 동상이나 지명이나 표현을 통해서 과거를 통제한다.”

내가 연해주에서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소에도 기억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은 장소를 차지한다. 기억은 그저 머릿속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기억은 물리적인 것, 즉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길을 걷다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쳐다보는 것, 또는 슈톨퍼슈타인처럼 그 위를 걷다가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엘레나 슈퍼마켓은 우리가 이동휘 선생의 기억, 나아가 연해주와 고려인들의 기억을 위한 장소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장소를 잃은 기억은 쉽게 휘발될 것이다.

물리적 공간을 차지한 사적 또는 기념비는, 그것이 위치한 장소(사회)가 그것을 기억하기로 결정했음을, 이제 누구도 그것을 ‘없었다’라고 말할 수 없음을 알린다. 그 단적인 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녀상이다. 소녀상은 물화(物化)된 기억 그 자체이자, 동시에 그 기억을 둘러싼 투쟁과 연대의 장이다. 시민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소녀상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겨울이 오면 직접 뜬 목도리를 둘러준다. 어떤 장소에 소녀상이 설치되었다는 것은 곧 그 장소가 전쟁성폭력 피해여성과 연대하는 곳, 일본의 역사왜곡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곳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여름, 일본은 ‘아이치 트리엔날레’ 미술제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중단하며 ‘기억하는 장소’가 되기를 거부했으나, 시민들은 그 자신이 소녀상이 ‘됨’으로써 맞섰다. SNS를 통해 퍼져나간 ‘소녀상 되기’는 기억을 위한 공간으로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행위다. 개인의 몸이 작은 기념비가, 작은 박물관이, 또는 작은 수요시위가 된다. 작은 팻말이나 촛불을 드는 행위, 작은 배지나 리본 등을 다는 행위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기억하는 장소’가 된 몸들은 서로 모이고 또 흩어지며, 연대하고 또 경합하며 점점 더 큰 공간을 점유한다. 그 공간이 충분히 커진다면 기억은 역사가 된다. 승자가 아닌 민중의 역사, 작은 이들의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이따금 가방에 노란 나비(‘위안부’ 피해자를 상징)나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그럴 때면 굳이 아는 척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나마 반가운 마음과 함께 작은 응원을 보낸다. ‘여기서 우리는 함께 장소를 만드는 중이에요. 역사를 만드는 중이에요.’


초등교육과 17 김지연 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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