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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호/컬쳐노트] 그레고르를 사랑할 수 있나요?

이희진 기자l승인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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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중한 가족, 친구, 연인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자리는 사실, 비슷한 다른 사람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자리일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뒤이어 소개할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그레고르는 의류 회사의 외판사원이다. 그레고르는 가족의 빚을 갚고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그레고르의 몸이 커다란 벌레로 변한다. 이제 그레고르는 일을 할 수 없을 뿐더러 가족의 보살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를 적대시하고, 어머니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며, 누이동생만이 그를 직접 보살핀다. 하지만 그 보살핌은 점점 홀대와 적대로 변한다. 믿었던 누이동생마저도 그레고르를 적대시한다. “내보내야 해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지요?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진작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테지요. 그랬더라면 오빠는 없더라도 계속 살아가며 명예롭게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이 동물은 우리를 박해하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분명 집을 독차지하여 우리로 하여금 골목길에서 밤을 지새우게 하려는 거예요.” 그레고르는 식구들을 회상하며 자신이 없어져 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 안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레고르는 돈을 벌어오지 못할 때, 가족들을 책임지지 못하고 보살핌 받아야 할 때 버려졌다. 가족들이 그레고르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모습’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가족들에게 돈을 벌어오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위해야 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진다. 밥을 가져다줘야 하고, 방 청소를 해줘야 하고, 흉측한 몰골로 민폐만 끼치며 보살핌 받아야 하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있어서 ‘그레고르’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는 내보내야 하는 괴물로 보일 뿐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 친구, 연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을까? 그저 멋진 사람이기 때문에, 웃긴 사람이라서 같이 있으면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공부를 잘해서 시험 기간에 유용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그레고르의 가족이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위하는 모습만을 사랑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떠한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서는 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이 기대와 어긋났을 때 실망하게 된다.

나는 선생님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로, 같은 잘못을 한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크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선생님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안타까워 그러셨던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평소 나의 ‘모범적인 모습’만을 사랑하셨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 뒤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더이상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선생님이 실망하시며 내 손을 놓으실 것 같았다.

실망은 바라는 일이 뜻한 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가족은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바랐고, 나는 항상 모범적인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다. 결국엔 가족도, 선생님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괴물일 뿐인 그레고르는 그가 없어져야 한다는 누이동생의 생각에 동의하며 죽음을 맞이했고, 나는 모범적인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스스로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모두에게 남은 것은 그레고르와 내가 지닌 ‘어떠한 모습’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실망을 무기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우리가 바라는 ‘어떠한 모습’을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둘러보자. 우리의 곁에 아직 ‘어떠한 모습’인, 아직 변신하지 않은 또 다른 그레고르가 존재하지는 않는지. 진정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결점마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희진 기자  huijin@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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