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1.13 수 21:47

[433호/파견교사기고] 교직일기 1화. 첫 출근

파견교사 기고l승인2019.10.2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3월 2일,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입학 또는 개학을 한다. 방학식과 졸업식은 제각각이지만 이 첫 '시작' 만큼은 같은 날 이루어진다. 그 날, 나 또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였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난 신입생만큼 긴장한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어디를 가던 어색한 상태로 붕 떠있었다. 도태되어 멸종되어가는 생물처럼 한없이 작아졌던 그 날이 바로 첫 출근 날이다.

내가 발령 받은 학교에서 신규는 나밖에 없었고, 나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해나갔다. 긴 방학에 적응된 몸을 끌고 나온 학생들과 교사들은 각자 나름의 적응 과정을 거치느라 정신이 없었고, 학교는 입학 첫 날부터 마치 어제도 있었던 일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그 흐름에 합류하지 못한 나는 다른 이에게 암초가 되었고, 스스로는 팽이처럼 제자리에 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고통을 나눌 입사 동기도 없이 바로 전선에 뛰어들어 한 사람 몫을 해내야 했고, 당연히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잠시 과거로 가면 2월에 참여한 '신규 교사 연수'는 고작 4박 5일이었다. 보통 6개월 정도의 긴 연수기간을 가지는 여느 기업체에 비해 ‘신규 교사 연수’는 기간이 너무 짧고 내용도 빈약하다. 속성으로 배운 학교 현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임용고시에 출제되는 내용이 거의 전공에 편중되어 있는 점을 볼 때, 교사는 참 무지한 상태로 현장에 배치된다는 느낌을 준다.(교생 실습이 있지만 그 또한 학교 현장과는 너무 다르다. 해병대 캠프 갔다 온다고 군대 갔다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허술한 학교 조직 문화에서 비롯되는 무리한 업무 배정이 신규 교사에게 흔히 일어난다. 나는 3학년 담임과 학생부 기획을 맡았고 전쟁은 시작되었다.

다시 입학식 날로 돌아오자. 교무실 책상에 내 짐을 올려놓고, 컴퓨터를 켜서 업무 메시지를 확인한다. 첫 날부터 메시지가 쏟아졌고, 몇 개 읽지도 못한 채 입학식 시간이 다가왔다. 학생부장님은 강당에 줄 세운다고 벌써 나가시고, 애들에게 물어물어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에는 미리 오신 선생님들께서 학생들 줄을 세우거나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는 어정쩡하게 선생님들 옆에 서 있었다.

새로운 학년도를 맞이하여 전체 학생들 앞에서 부장교사, 담임교사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나도 중학교 3학년 담임으로서 무대에 섰다. 1반부터 한 반씩 차례로 담임이 소개되었다. 돌이켜보면 매해 겪는 이 순간이 참으로 교사들에게 곤혹스러운 순간인 것 같다. 1반에서 조용하던 학생들이 2반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학생들이야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환호성을 유독 못 받는 교사들의 비통함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당연히 그 날 나도 조용하게 소개되었고, 괜히 민망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입학식이 끝나자 곧바로 담임 시간이 찾아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시간이 되었으니 일단 들어가고 본다. 학생들에게 뭔가 안내를 해줘야 하는데 사실 내가 안내받고 싶은 심정이 훨씬 컸다. 안타깝게도 급히 들어가느라 출석부도 제대로 못 챙기고 들어갔다.(엄밀하게 출석부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학생들 이름이라도 불러야 하는데 그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나와는 다르게 이미 2년을 학교에서 보낸 학생들은 훨씬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다를 떨던 몇 명의 학생들이 나를 보았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전히 방학동안 나누지 못한 얘기들을 지속했다. 잠시 교단에 서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학급 운영에 대해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답은 찾지 못한 상태였다. 스스로 답이 없는 상태로 거대한 학생 무리를 처음 상대하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크다. 일단 집중을 시켜야 했기에 학생들을 부르려는데, 어떻게 불러야 할까, 라는 고민부터 생긴다. "야!!" 라고 하면 좀 그런 것 같고, "학생들~"하면 씨알도 안 먹힐 것 같고, "저기요."는 좀 이상하고. 결국 어떻게 불렀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학생들이 멍청히 서있는 나를 보고 알아서 좀 조용히 해주었던 것 같다. 우선 내 소개를 한다. 이름과 나이를 얘기하고 나니 특별히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구구절절 나에 대해 말하기도 뭣하고, 고향 정도 덧붙이고, 좀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의 그 적막이 두렵게 느껴진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라 했던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피라니아’가 단체로 물어뜯으러 덤빌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초라한 인생 이야기는 결국 첫 인사에 몇 분 사용되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할 말이 없을 때 하는 말을 한다. "질문 있는 사람?" 하지만 아쉽게도 질문이 없다. 아는 것도 없고 호기심도 없으니 질문도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이 다시 나를 압박한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보통은 학급 규칙, 급훈, 기타 학교에 대한 안내사항들을 미리 인쇄하여 들고 들어간다.) 교실은 조용했지만 내 머릿속은 한없이 복잡했다. 조폭 소굴에 실수로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아무튼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고 주워 담기를 반복하다보니 자연의 이치대로 시간은 갔고,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났음을 학교 종이 알려주었다. 종소리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사실에 조금 민망함을 느꼈지만 아무튼 첫 수업은 끝났다. 학생들만 수업 시간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에게도 준비되지 못한 수업 시간은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어떻게 교사가 수업을 싫어하느냐고 비난할 지도 모르지만 직장을 좋아서 가는 사람이 극히 소수임을 기억하자) 고통은 그 후에도 몇 번 더 반복되었고, 역시나 자연의 이치대로 그 날의 모든 수업이 지나갔다. 말 그대로 지나간 것 같다. 참으로 초보스러웠고, 그 초보스러움을 학생들에게 온전히 들켰다는 사실도 마음을 힘들게 했다.

첫 날을 무사히 넘겼다는 기쁨과 부끄러움, 불만 사이의 감정이 왔다 갔다 했지만, 감상에 빠져 있기에는 내일이 너무 가까웠다. 해야 할 일들은 많았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메시지로 날아온 모든 일이 급해 보였고, 일을 처리하기에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초보는 그래서 초보다. 일의 우선순위가 정립되지 않았고, 다가올 일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말을 안 해주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 준비를 해야 했다.

교과서를 봤고, 학생들 명렬표를 보며 이름도 외웠다. 빈 교실에 들어가 정리도 조금 해본다. 이것저것 하며 혼자만 바쁜 사람처럼 정신없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퇴근을 하신다. 신규 교사 연수 때 모르는 건 선배들한테 물어보라고 했는데, 이젠 물어 볼 사람도 없다. 첫 학교의 첫 출근에 첫 야근을 혼자 하고 있으려니 서글픈 마음이 든다. 첫 출근을 축하하며 맥주라도 한 캔 하고 싶지만 조급한 마음에 차마 집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남아 있었다. 9시 정도가 되자 당직 기사님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집에 가라고 하신다. 불 꺼야 한다고. 살짝 화나 있는 완고한 당직 기사님의 기세에 눌려 생각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다음날 늦을까 7분 간격으로 알람을 몇 개씩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지구과학교육과 손현준 파견교사


파견교사 기고  knuepress@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동건/전은진/정윤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9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