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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호/컬처노트] 따뜻한 눈사람

김현정 기자l승인2019.10.22l수정2019.10.2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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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정호승 

사람들이 잠든 새벽 거리에

가슴에 칼을 품은 눈사람 하나

그친 눈을 맞으며 서 있습니다

품은 칼을 꺼내고 눈을 대고 갈면서

먼 별빛 하나 불러와 칼날에다 새기고

다시 칼을 품으며 울었습니다

용기 잃은 사람들의 길을 위하여

모든 인산의 추억을 흔들며 울었습니다

눈사람이 흘린 눈물을 보았습니까

자신의 눈물로 온몸을 녹이며

인간의 희망을 만드는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그친 눈을 맞으며 사람들을 찾아가다

가장 먼저 일어난 새벽 어느 인간에게

강간당한 눈사람을 보았습니까

사람들이 오가는 눈부신 아침 거리

웬일인지 눈사람 하나 쓰러져 있습니다

햇살에 드러난 눈사람의 칼을

사람들은 모두 다 피해서 가고

새벽 별빛 찾아 나선 어느 한 소년만이

칼을 집어 품에 넣고 걸어갑니다

 

공부에 전념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며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와 안 맞는 사람에게 치이기도 하고 때론 마음 한켠에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 소외된 건가?’, ‘나만 진로가 모호한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럴 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 당장 친구에게나 엄마에게 전화해서 위로와 용기를 받고 싶다. 요즘 서점 신간 코너에 가보면 수많은 에세이들이 눈에 띈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 『참 소중한 너라서』 등등 힘든 사회생활 속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안도감을 얻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동기를 받는다. 그렇다. 우리는 ‘슬픔’이란 존재를 위로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책이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 슬픔을 잊어가며, 안도감을 되찾으려 했다.

시 속에서 ‘칼’을 피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슬픔을 위로하고자 하는 요즘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슬픔에 빠져 그것에서 나오지 못하면 조급함을 느끼던 필자의 모습 또한 겹쳐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피해 가는 ‘칼’은 바로 ‘슬픔’을 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사람이 슬픔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 다르다. 눈사람은 그친 눈마저 맞으며 마음속에 슬픔을 품고 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피해 가는 슬픔을, 눈사람은 가만히 느낀다. 다른 이의 마음을 울리며, 온전히 함께 느낀다. 사람들은 눈사람을 피해가지만, 오로지 새벽 별빛 찾아 나선 한 소년만이 슬픔을 사랑할 줄 안다. 자신의 품에 슬픔을 안고, 소년은 묵묵히 걸어간다. 눈사람은 우리에게 묻는다. “스며드는 너의 슬픔을 직면해본 적 있니?” 그렇다. 우리는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 슬픔이 더 다가오기 전에 다른 존재에 의지해서 위로받고자 한다. 햇빛이 내리는 곳으로, 행복한 곳으로 달려가고자 하며, 달리는 속도가 나지 않을 때 우울을 경험하곤 한다. 칼과 같은 슬픔은 무섭고도 날카로워 우리는 슬픔을 고스란히 껴안아 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눈사람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를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우리는 슬픔을 안고 있는 다른 이를 외면한 적은 없는가? 최근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기 바쁜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교원대 학우들의 경우 빡빡한 수업과 과제를 수행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우 치열하게 살아간다. 또한, 동아리 활동에 푹 빠지거나 동기들, 선후배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유쾌한 청춘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시선은 그 안에서만 머물 뿐이다. 우리의 주변에서, 혹은 조금 더 먼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꽤 무관심했다. 거리에서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았을 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외치는 부당함과 슬픔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본 적이 있는가. 파업으로 인해 내가 받을 이익이나 손해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는가. 지난 14일 발생한 한 연예인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행동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그녀를 비난했다. 그녀가 갖고 있었던 의식 자체와 그 의식을 지니면서 느꼈을 슬픔과 아픔에는 공감해보지 않았다. 진심으로 느껴보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제 더이상 슬픔에 무관심하지 말자. 나의 슬픔과 타인의 슬픔을 직면하고 그것에 젖어 들어 느껴보자. 나의 눈물로 온몸을 녹이면서, 너의 마음과 함께 울리면서. 햇살 비친 칼을 품고 눈물 흘리는, 따뜻한 눈사람이 되어보자.

 


김현정 기자  20192011@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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