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2.11 수 23:38

[432호/사회탑] 홍콩의 ‘우산 혁명’, 민주화의 비를 내리게 하다

학생부터 교사까지 거리에 나서 중국의 부당함을 외치다 이예림l승인2019.10.02l수정2019.10.02 13:37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香港 加油!(홍콩 힘내라!) 이 말은 이웃나라 홍콩의 송환법 공식철회 시위에 사용되는 구호이다. 약 100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에 홍콩 경찰은 시위대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시위 참여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시위대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지경이다. 시민들은 경찰의 강경대응에 반발해 화염병을 던지는 등 갈수록 홍콩의 시위는 격해지고 있다. 홍콩 반환 때 중국에게 민주주의를 약속받은 홍콩이 왜 2019년에 우리나라의 1980년대 같은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홍콩과 중국의 역사

홍콩은 본래 중국의 영토였다. 그러나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1842년 난징 조약에 따라 영국의 식민지로 홍콩을 넘겨준다. 그러다 1984년 등소평이 영국과의 협상에서 한 국가 안에 두 개의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일국양제’를 제안하고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 중국의 일방적 애국주의를 강요하는 국민교육 시도, 지도자 직선제 불허, 홍콩 일부 지역에서 중국 법을 적용하는 등 많은 일이 홍콩인의 반대 속에 이루어졌다. 홍콩이 중국인 소비자의 막대한 자본 덕에 2008년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떨어진 주식과 시장을 회복한 것은 맞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많은 위기가 생겨난 것 또한 사실이다. 중국 정부의 생각과 맞지 않는 책들은 서점에서 사라지고 중국 기업들이 홍콩의 시장을 장악했다. 심지어 홍콩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인 광둥어 대신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가 통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른바 ‘홍콩의 중국화’를 시도하는 중국 정부에게 홍콩 시민들은 반감을 느끼게 되었다.

 

◇ 시위의 원인, 송환법

지난 해 2월, 대만에서 20대 홍콩 남성 찬퉁카이가 여자친구 펀샤오밍과 여행을 갔다가 그녀를 살해 및 시신유기 후 홍콩으로 귀국한 사건이 발생했다. 대만과 홍콩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고 있지 않았기에 그를 대만으로 송환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홍콩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남성을 처벌할 수 없었다. 따라서 홍콩 정부는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서도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는 법안,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입법예고를 선포했다. 여기에는 대만, 중국, 마카오도 해당한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에 반대했다. 바로 정치적 악용의 우려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범죄자를 심판한다는 핑계로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을 데려와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이전에도 홍콩 반중 인사나 홍콩의 인권운동가들이 불이익을 받은 사건들이 있었기에 불안은 더욱 커져갔다. 2015년에 중국 공산당 비판 서적을 팔던 홍콩 서점상 5명을 중국으로 데려가 조사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6월에는 송환법 개정에 반대해 약 100만 명의 시위대가 운집하게 되었다. 이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일어난 시위 중 최대 규모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는 200만 명까지 시위대가 불어나게 되었다. 경찰은 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최루탄 등을 통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맞서 시민들은 하늘에서 날아오는 최루탄을 막기 위해 우산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홍콩 시위가 ‘우산 혁명’으로 불리게 되는 이유이다. 날이 갈수록 경찰의 폭력 행위는 심해지고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하게 된다. 이에 시민들은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 폭력 진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연행자 무조건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5대 요구안을 내걸고 시위를 진행해왔다.

 

◇ 현재 시위상황과 학생들의 움직임

9월 4일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런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송환법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시위는 1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시위 중에 이루어진 중국 정부의 탄압과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이제 홍콩 시위는 단순히 ‘송환법’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반중 시위의 성격으로 번져나갔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심해진 중국의 통제와 탄압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의의도 있다.

홍콩시위가 의미 있는 다른 이유는 ‘대학생’이 지도자가 되어 어린 학생들도 가리지 않고 시위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우산 혁명의 주역인 대학생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는 불법 시위에 참여하고 대중들을 불법시위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며 체포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풀려난 뒤 홍콩 민주 운동의 상징으로 더욱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천 명의 중등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시위를 택했다. 적극적으로 무력시위에 참여하거나, 시민들과 힘을 합쳐 손에 손을 붙잡고 60km 길이의 ‘인간 띠’를 만들기도 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움직임에 보답하기 위해 함께 거리에 나섰다. 이번 시위는 홍콩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저항운동으로, 어린 시민들도 정치에 눈을 떴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이예림  yerim9911@knue.ac.kr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동건/전은진/정윤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9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