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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호/교수의서재] 비판적 시각으로 책 속에 녹아든 사회를 바라보다

이희진 기자l승인2019.09.30l수정2019.10.0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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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이희진 기자

이번 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독어교육과 강태호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태호 교수는 학생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작품으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와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꼽았다. 작품을 통해 80년대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와 독일인이 유태인을 학살하던 사회를 바라보며, 강태호 교수는 문학이 독자적으로 자생하지 않음을 전했다.

 

◇ 학생 시절, 가장 인상 깊게 읽으셨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대학교 들어왔을 때, 그때가 85년이거든요.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전투경찰이라고 데모 진압을 목적으로 배치된 경찰들이 학교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런 제가 2학년 때인가 문익환 목사님이 강연하러 학교에 왔어요. 강연을 시작하고 몇 분 안 지나서 학생회관 옥상에서 학생 한 명이 분신해서 떨어졌어요. 그때 혹시 무슨 일 있을지 몰라서 경찰들도 앞에 있었던 상황인데 난리가 났죠. 이동수라는 분이었어요. 그런 시기에 제가 1학년 때부터 했던 동아리가 문학 동아리였어요. 주로 문학 작품 읽고 토론도 하고 창작도 하는 동아리였죠. 1학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녔다가 2학년 때 제일 처음 좋아하게 된 시인이 있어요. 그 시인이 바로 황지우라는 시인이에요. 이 시인의 작품 중에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 시가 그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거든요.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거의 출구가 없는 그런 상황을요. 그래서 제목을 보면 새들까지도 세상을 다 버린다고 하잖아요. 옛날에는 영화를 볼 때, 영화를 보기 전에 애국가를 먼저 불렀어요. 다 같이 일어나서 애국가를 부르고 나서, 앉은 다음에 영화가 시작되었거든요. 시 맨 끝을 보면 각자 자기 자리에 다시 앉잖아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다 주저앉는,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시이죠. 이런 시도 있지만, 황지우 시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희망을 보여주는 시들 중 하나가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게로’에요. 시를 보면 나무가 뿌리가 박혀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고 말하죠. 나무가 가지고 있는 힘 같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시에요. 시인들이 사회를 보는 눈 같은 것이 모두 다양할 것 아니에요. 시라는 것은 내면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고, 사회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황지우 시인은 그 당시의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물론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에요. 시 안에 녹여내는 사람이죠. 황지우 시인은 시라는 것이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저에게 처음으로 일깨워준 사람이에요.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 가서 읽었던 ‘계몽의 변증법’의 작가인 아도르노 역시도 그렇거든요.

 

◇ ‘계몽의 변증법’은 어떤 책인가요?

제가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갔었거든요. 한 7년 반 정도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어요. 독일에서는 제가 전공이 독문학이었고 작가를 선택했어요. 제가 전공한 작가도 물론 시인이었죠. 독일에서는 독일어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 하나가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이에요. 아도르노와 그의 스승인 호르크하이머가 같이 쓴 책인데,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쭉 서술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단락,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막스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인데, 이 두 사람 중 아도르노는 독일의 사회학과 교수거든요. 60년대인 그 당시에 독일에서 학생 운동이 일어나는데 그때 학생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어요. 또 비판 이론가였으면서 유태인이에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평범한 독일인들이 600만이나 되는 유태인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다 죽일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해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그것이죠. 변증법이라는 것이 발전을 의미하는데 ‘계몽의 변증법’은 그것을 거꾸로 이야기해요. 인간이 원시시대부터 점차 이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계몽되어 오는 과정을 거쳤는데 어떻게 유태인 학살이라는 야만적인 일을 계몽된 인간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거든요. 책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가지고 자연을 지배하는 과정의 역사를 이야기해요. 자연 상태의 인간 속에도 자연이 있고 바깥에도 자연이 있죠. 인간이 자연을 계속 파괴하면서, 인간의 이성으로 문명을 만들어온 역사가 있지만 반대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 내면에 있던 자연도 파괴되기 시작했다고 말해요. 쉽게 예를 들면 시골에서 살았던 경험을 더 이상 도시에서는 못하잖아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메말라진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죠.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며 역사를 이어왔는데 오히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유태인 학살도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굉장히 비관적이긴 하죠. 인간이 이성을 통해 계몽해가면 해갈 수록 오히려 거꾸로 야만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보면, 독일인이 가장 합리적인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고 600만 유태인을 죽이는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하고 협조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인간 계몽, 이성의 특성에서 찾은 것이죠. 그 안에 본질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고요.

이 책의 저자인 아도르노도 예술에 대한 글을 많이 쓰긴 했어요. 이 사람도 예술은 자율적이면서도 사회적이라는 이야기를 해요. 자율성이 있으면서도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사회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지적한다고 하죠. 그런 면에서 보면 황지우 시인과 아도르노, 두 사람이 관련이 있죠. 그리고 제가 전공한 엔체스베르거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이고요. 이 사람도 굉장히 사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제가 문학을 가르치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를 할 때도, 항상 문학이 독자적으로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요. 언제나 사회 속에서, 사회를 어쩔 수 없이 반영하면서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러한 면을 강조하고는 하죠.

 

◇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문학을 읽었으면 하나요?

무슨 책이든 상관은 없지만 혼자 읽고 마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와 같이 읽거나, 혼자 읽었어도 친구에게 책을 추천한 다음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요. 제 생각에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 책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게 더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저 친구는 내가 읽고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토론에 대한 노하우를 늘릴 수도 있고요. 사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수업은 억지로 찬반 의견을 나눠서 토론시키는 그런 방식이잖아요. 대학에서도 수업이 토론식으로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거든요. 수업 시간에 안되면 친구들끼리 독서 모임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읽어보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책을 친구에게 권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한 식으로 확장해나가며 활발하게 문학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희진 기자  huijin@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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