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2.11 수 23:38

[430호/영화도서관]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네, <김군>

현정우 기자l승인2019.06.04l수정2019.06.04 19:0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김군>을 세 번 봤다. 지난 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본 이후 개봉 하고나서 두 번 볼 수 있었다. 영화제에서 봤을 때 제일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최영철, 최진수, 이강갑 세 인물이 극장에 앉아 김군의 사진을 보던 장면이었다. <김군>의 개봉 이후 편집 본은 거의 다른 영화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기억에 오래 남았던 장면은 달라지지 않았다.<김군>의 목적은 한 가지다. ‘김군’을 찾는 것. 지만원이 북한 특수부대원 ‘제1광수’라고 명명했던 김군의 존재를 실제로 파악하는 것. 영화의 진척도 여기서 시작되었고 <김군>의 영화제 편집본 또한 이 부분에 표점을 두어 진행되기도 했다. 어디인가에선 5‧18 다음 세대가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라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했다. 지극한 넌센스—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들의 정체가 북한 특수군이라는 지만원의 ‘과학적’ 주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이전 5‧18 영화들의 그것과는 자명히 다르다.

<김군>을 영화제에서 상영한 뒤 감독 강상우는 과연 저 넌센스를 정확히 반박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는 물음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 존재했던 ‘김군’의 모습을 데려옴으로써 반증하는 것은, 오히려 ‘김군’을 ‘광수’로 만드는 데 사용한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개봉 전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강상우 감독은 반박이 영화의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영화에서 접하게 되는 질문들의 결론은 “이 사람을 아세요?”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김예은 배우를 포함해서 조연출을 맡은 안지환 감독이 인터뷰를 요청한 분들에게 질문을 하면 그 분들이 차츰차츰 80년 광주에서의 기억을 더듬는 형식이다. 물론 기억은 생생하지 않다. 강상우 감독이 원래 의도했던 바는 단서와 기록을 공부하며 ‘김군’의 정체를 추적해나가는 다큐멘터리였다고 한다. 종국엔 ‘김군’의 정체가 밝혀지는 식으로. 그러나 제작진이 의도했던 방향과 증언의 방향이 멀어지면서 영화의 맥락을 결정짓는 일을 고민해야만 했다고 한다. <김군>이 영화 속에서 몇 번이고 결론으로 복귀하는 것은 이런 과정의 결과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군>의 개봉용 편집 본에는 많은 장면이 삭제되었지만 고광덕 씨가 등장하는 부분을 보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44광수’로 지명되었던 고광덕 씨가 직접 자신이 사진 속 시민군임을 증언하는 장면은, 영화제 편집 본에서 이후 추적의 의도가 선명해짐에 따라 지만원의 ‘북한군 개입설’이 이미 무효함을 보여주는 위치에 그친다. ‘김군’을 추적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실마리가 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처럼 (아마도 ‘김군’이 최초로 언급되는) 주옥 선생의 인터뷰가 확증적 감각 속에 제시되는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이리라.

허나 개봉 버전 <김군>은 조금 다른 정서를 지닌다. 주옥선생이 저 사람이 바로 ‘김군’이라 말하던 순간은 영화제 상영본보다 훨씬 앞으로 옮겨졌으며, ‘김군’ 수색에 있어 도움닫기로 작용했던 장면들은 한참이 지나 인터뷰이들이 만나는 장면으로 이동되었다. ‘김군’이 등장했음에도 ‘김군’을 추적하고 있는 영화. ‘지만원이의 주장을 반박한답시고 사진 속 인물을 찾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오기철 씨의 한 마디 앞에서 더 이상 <김군>은 눈을 돌리지 않는다.

증언은 더 이상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영화를 차지한 시간이다. 영화가 자료 화면을 꺼내는 방식도 달라졌는데 이전의 그것이 제시된 근거의 확신성을 위한, 일종의 담보물이었다면 현재는 말을 꺼내는 사람의 과거 모습—페퍼포그를 탄 청년들의 무리라던가— 그 자체로 기능한다. 대다수의 인터뷰이들에게 80년 광주는 과거의 일이다. 최진수 씨의 증언을 토대로 현재의 인터뷰와 과거의 청문회 자료가 엇갈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극장은 어두컴컴하다. 최진수 씨가 앉은 객석 옆으로 80년 당시 동지인 최영철 씨와 이강갑 씨가 차례로 들어온다. 과거의 기억들도 어둡다. 어두운 곳에 있다. 어떤 기억들은 일부러 어두운 곳에 있게 된다. 그 사람은 그 기억을 갖고 살아야만 하니까, 기억을 넣어둬야 할 때도 있다. <김군>의 카메라가 찍은 인물들은 그 기억들을 꺼내고 있는 중이다.

<김군>에 계속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영화가 개봉한 후 주옥 선생님은 웹진 리버스와의 인터뷰에서 “터뜨리고 나면 힘든데 나중에 가면 치유가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군>이 치유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말을 꺼내는 순간을 찍은 영화라 생각한다. ‘김군’이라는 표식으로만 연결되던 접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인의 얼굴, 인터뷰이의 현재와 과거를 얽는 식으로 연결이 되면서 연결고리를 영화 내의 공통점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런 식의 변태 속에서 <김군>의 서사는 과거—현재—미래의 연대기를 지닌, 깊이로서의 선형 구조에 가까워진다.

개봉 이후 편집 본으로만 <김군>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영화제 편집 본에는 없었던 생존 이후의 이야기가 추가된 사실 등 긍정적으로 느껴졌던 변화가 많았기 때문일 테지만, 영화의 지표가 바뀌던 순간을 어떻게 느꼈을 지가 사실은 제일 궁금한 부분이다. 새카만 바탕에 보일 듯 말 듯 한 글씨로 써진 오프닝 크레딧, 어두컴컴한 극장 안, 한밤에 도청의 문을 닫는 이강갑 씨를 찍은 마지막 장면, 이런 화면들 속에서 새벽녘 하늘을 보는 주옥 선생의 모습을 넣은 감독의 의도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 또한 있는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처럼 연신 악수를 청하던 최진수 씨에게 “내 얼굴이 기억이 나느냐.”던 최영철 씨의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현정우 기자  kubrick456@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정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동건/전은진/정윤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9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