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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시론] 소리 없는 말과 거짓말

박재정 초등교육과 교수l승인2019.05.20l수정2019.06.0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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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내가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초등학교에 아들이 입학한다는 것이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달여가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들은 초등학생으로서 달라진 생활을 적잖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40분의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또래에 비해 다소 느린 의사소통능력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아들의 좌충우돌 학교적응기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2학년을 마치며 전학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지만,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때라 ‘나머지 공부’를 도맡아 했다. ‘나머지 공부’, 요즘으로 치면 보충학습 쯤으로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를 못한다는 ‘낙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1) 그러다 보니 나머지 공부를 하는 날에는 어머니께 학교에서 놀다가 늦었다고 거짓 핑계를 대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빈정대듯이 ‘야, 니 어제 혼 안났나?’ 라고 묻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질문의 이유는 이러했다. 전날 하교 중에 동네 어귀에서 품앗이로 밭일을 하는 어른들과 친구들이 마주쳤고, 거기에서 학교 얘기를 하다가 내가 나머지 공부 때문에 늦는다는 사실을 전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그 자리에 계시던 나의 어머니도 그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내가 심하게 혼이 났을 것이라 확신에 찬 기대에서 물었던 것이다. ‘어 혼났어’ 라며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었지만 사실 나의 어머니는 그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후로도 나머지 공부에 대해 어떠한 말씀도 없으셨지만 그 일은 어린 나에게 아주 충격적인 일이었고, ‘다른 사람들 속에서 어머니는 얼마나 창피하고 힘드셨을지, 어떻게 하면 나머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고심 끝에 평소 친하지도 않던 동네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결심할 만큼, 나에게 나머지 공부로부터의 탈피는 절박했다. 다른 친구들의 입방아를 피하기 위해 나는 해가 질 때를 기다려 친구를 찾아갔지만 차마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기회만 엿보다 그냥 돌아왔다. 다음날 어렵게 내 사정을 얘기하자 친구는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 했고, 이후 매일 저녁 친구와의 산수 공부가 시작되었다. 금상첨화라 해야 할까, 한 학년 위의 친구 누나까지 거들어주며 나의 나머지 공부는 3학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끝이 났다. 어떤 이는 나의 성장 일화에 일찍 철이 들었다고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말’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이후로도 나의 어머니는 내게 공부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저 묵묵히, 소리 없는 말로 나를 믿고 지지하며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체육시간이 ‘아나 공 수업2)’으로 이루어져 남학생들은 비가와도 축구였다. 그 때마다 나의 ‘포지션’은 늘 골대 옆이었다. 언뜻 골키퍼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골키퍼의 위치는 골대 옆 보다는 앞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나는 ‘볼 보이’였다. 축구공이 밖으로 나가면 주워 와서 골키퍼에게 전해 주는 역할이었다. 작은 체격과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이던 내가 자청했던 포지션이다. 4학년이 되어서도 그 포지션은 바뀌지 않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달라졌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의 어느 금요일, 그날은 청소를 하느라 친구들보다 늦게 하교를 하던 중이었다. 운동장에서는 5학년과 6학년의 학년대항 축구시합 준비가 한창이었다. 5학년과 6학년 담임선생님은 젊은 남선생님들로 1주일에 한 번씩은 꼭 축구시합을 하곤 했다.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게 운동장 가장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야 너, 이리 와서 축구 좀 해’ 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봤을 때는 벌써 몇 번이나 나를 부른 후였다. 경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6학년 형들은 나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신경질적인 재촉을 했다. 가방을 벗고 동네 형에 이끌려 오른쪽 수비수 위치에 엉거주춤 자리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패스, 패스, 빨리 차!’라는 함성과 내 앞으로 공이 오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던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다. ‘야, 뭐해!’ 다급히 외치는 형들의 말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공을 찼다. 공이 발에 제대로 맞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빗맞았다. 아주 한참 빗맞았다. 그런데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이스 패스’라는 외침이 들렸다. 빗맞은 공이 6학년 담임선생님께로 연결되었고 선생님은 드리블 후 멋지게 골을 성공시켰다. 형들과의 세리머니 후 선생님은 내 옆으로 오셔서 ‘야, 축구 잘하는데!’라고 말씀하시며 어깨를 툭 치셨고, 그 옆의 형들도 ‘야, 임마 좋았어!’ 라고 거들었다. 처음으로 들어본 칭찬의 말이었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그것도 내가 늘 자신 없어 하던 운동을 잘 한다는 말을 듣다니. 그 말은 3학년 때 나머지 공부가 어머니께 들통 나며 달라져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했던 그러한 울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로 나는 5학년과 6학년의 축구시합이 있는 날이면 운동장 주위를 서성였지만 빈자리는 쉽게 나지 않았고, 어쩌다 한번 들어가게 되어도 이전과 같은 어시스트 기회가 다시 생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일 이후로 나는 거짓말처럼 축구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5학년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학교대표는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도 이어졌다. 대학교 때는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선수로 활동도 했는데 그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거짓말 같은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돌아보니 나도 내년이면 반세기를 살게 된다. 건강하게 내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주위 많은 분들의 희생과 배려 덕분임을 새삼 느낀다. 특히 어려운 시절 힘이 되어준 말 한마디는 잊을 수가 없다. 돌아가시기 전 어느 날, 어머니는 내가 나머지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이 미어졌지만 아들을 위해 참았고, 6학년이 되어 웅변대회 학년대표라 연습 때문에 늦는다는 아들 때문에 너무 행복했다고 하셨다. 그 말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축구를 잘 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나의 5, 6학년 담임이 되셨을 때는 더 많은 거짓말로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신 선생님, 지금도 먼 이국땅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나누어주고 계신 선생님이 한없이 고맙고 보고 싶다.
오늘 아침도 아들은 ‘첫째,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 ‘둘째, 친구와 싸우지 않는다.’, ‘셋째, 친구에게 먼저 양보한다.’ 는 나와의 약속을 외치며 학교로 간다. 학교생활이 산만하고 친구와 다툼이 있다는 말에 교육학 박사인 나는 그렇게 매일 단단히 교육을 한다. 다행히도 아들 녀석은 힘들 것 같은데 싫다는 내색 없이 학교에 간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밤잠을 설쳐가며 아들을 염려하고 응원하는 아내의 소리 없는 말과 칭찬받을 일 없는 아들을 위해 거짓말을 만드시는 담임선생님 덕분에 아들이 학교를 가고 앞으로도 갈 것이라는 것을…….

 

1) 3학년 때의 마지막 시간은 늘 칠판 가득 채워진 산수 문제를 푸는 것이었는데 제대로 풀지 못하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 나머지 공부 시간이 다음날 나머지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데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선생님은 도움을 줄 생각이 없었고, 그냥 혼자 문제를 잡고 눈치껏 씨름하다 선생님의 퇴근시간이 되면 끝이 나는 반복이었다.
2) '아나 공 수업'은 체육수업시간에 공만 던져주고 아이들끼리 놀게 하는 상황을 말한다. '아나 공'은 경상도사투리로 '여기 공 있다'는 뜻이다.

박재정 초등교육과 교수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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