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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기자칼럼] 혐오는 오락이 아니다

양인영 기자l승인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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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에서는 모든 부와 편의가 집중된 수도 ‘캐피톨’과 캐피톨에서 멀어질수록 가난한 13개의 구역이 나온다. 이 구역들은 매년 한 명의 소녀와 한 명의 소년을 ‘조공인’으로 바쳐야하며, 캐피톨의 사람들은 그렇게 모은 조공인들을 한 곳에 가두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헝거게임’을 개최한다. 헝거게임은 구역의 사람들에게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대회지만, 캐피톨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한 순간의 유흥이자 오락이다. 그리고 소설밖에도 캐피톨 사람들이 존재한다. 혐오를 오락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기안84의 ‘복학왕’은 “세상 모든 약자에 대한 혐오가 담긴 웹툰”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복학왕에서 갓 30대가 된 여성은 자신을 “늙어서 맛이 없다”고 표현하고, 주인공은 남자라서 술집에서 일할 수 없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청각장애인은 말이 어눌하고 혼자 생각할 때도 이상한 발음을 사용하며,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묘사된다. 외국인노동자 캐릭터는 까만 피부를 가지고 말끝마다 “캅!캅!”을 외치며 더러운 숙소에도 눈물 흘리며 기뻐한다.

이 편협하고 비하적인 세계는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복학왕에 하트를 누른 사람들은 백만 명이 넘는다. 최소 백만 명이 약자를 희화화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있다는 뜻이다. 백만 명의 사람이 여성은 서른 살이 되는 순간 쓸모없어진다고,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은 편하게 돈을 많이 번다고, 청각장애인은 말이 어눌하다고, 외국인 노동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도 만족한다고 믿고 있다. 작가에 의해 생산된 편견이 독자들을 거치고 확산되면서 사실로 자리 잡고 현실을 왜곡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지워진다. 개인이 가진 특성과 개성을 지워버린 채 하나의 특징만을 남기는 것은, 명백한 혐오다.

복학왕의 독자들은 이러한 혐오를 즐기고 있다. 약자를 납작한 편견 속에 밀어 넣고 희화화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고 있다. 그들에게 혐오는 오락이다. 캐피톨 사람들이 헝거게임을 즐겼던 것처럼, 약자들은 납작한 편견 속에 가두고 과장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희화화된 대상이 나였어도 사람들은 즐길 수 있었을까? 만약 기안84가 남자가 아니었다면, 비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방송에 자주 나오는 잘나가는 웹툰 작가가 아니었다면, 복학왕을 그리면서 “재미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내가 아닌 약자에게 잔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약자 혐오를 오락으로 즐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오락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만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혐오를 오락거리로 삼지 마라. 누구에게도 그러한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인영 기자  0712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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