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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사무사]선생님이라는 이름

편집장l승인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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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매년 5월이면 교실마다 울려 퍼지는 노래다. 노래를 부르며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지만, 가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의문이 든다. 왜 고마워야 하는가? 우리는 식당의 요리사가 식사를 만들어주었다고, 또는 의사가 장염을 치료해주었다고 해서 노래를 부르며 가슴에 꽃을 달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교사의 임금노동은 유독 ‘고마운 것’, ‘보답해야 할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직업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이는 교육에 대한, 나아가 미래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오늘 망하지 않을 것이고, 어린이가 미래의 사회를 책임지고 계승해 나갈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에서 교육의 필요성이 태어나고, 교육자를 향한 사회의 기대 역시 생겨난다. 교사를 단순한 직업인이 아닌 사회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더 고마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다. 스승의 날은 이제 교사가 스트레스 받는 날이 되었고, 소위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고들 한다. 누군가는 그 원인이 김영란법이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문제의 본질은 전혀 다른 데 있다. 교사의 노동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 그리고 교사 집단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바닥났다는 것. 전자가 사회의 책임이라면, 후자의 원인은 분명 교사 집단에게 있다. 스쿨미투(교내 성폭력 고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 올해 스승의 날을 맞아 진행한 편지쓰기 캠페인의 이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쌤 집에 데려다준다고 차 태워준 건 고마운데, 거기서 제 허벅지를 만진 건 하나도 안 고마워요.”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다방 나가는 여자들 같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학생들이 보내온 편지는 일부 나쁜 교사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학교 문화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런 학교에서 신뢰와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교사 집단이 신뢰와 ‘감사함’을 되찾는 가장 시급한 그리고 유일한 방법은 스쿨미투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 일탈 교사를 처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커졌을 리도 없다. 마침(?) 최근 문제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10일, 같은 과 학생들과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한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남학생들이 정학 2주의 징계를 받았다. 올해 교육실습을 가지 못해 졸업이 1년 늦춰지지만, 임용시험을 보고 교단에 서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이다. 경인교대 체육교육과 남학생들 역시 ‘단톡방’에서 성희롱과 비하 발언을 한 것이 고발되었으며, 광주교대에서는 음악교육과 남학생이 화장실에서 같은 과 동기를 상대로 불법촬영을 저지른 사실이 적발되었다.

여러 곳의 학교에서 비슷한 범죄가 비슷한 시기에 발각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서울교대 총장이 담화문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들 모두의 문제’도 아니다. 병을 고치고 싶다면 환부를 파악하는 것이 첫 순서다. 문제를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히 지목해야만 해결도 가능하다. 즉, 이것은 제도의 문제다. 동료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을 저지르고도 고작 2주 정학당한 뒤 무사히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문제다. 또 이것은 문화의 문제다. 여성의 신체를 재화화하고 대상화하며 낄낄거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문화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것은 성차별의 문제다. 모든 학교의 사례에서, 가해학생의 말과 행동은 명백히 여성혐오에 기초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두고 성을 말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 학교는 어떨까. 아직까지 아무런 뉴스도 터지지 않았으니 깨끗하다고 믿어도 될까.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확신하기는 어렵다. 작년 10월 L교수 파면 촉구 운동 당시 학생들이 주장한 것은 전수조사 실시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L교수를 파면한 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했다는 듯, 다른 요구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약속한 총장–학생대표자 간 협의체 역시 결국 구성되지 않았다. 성폭력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잠잠한 캠퍼스는, 어쩌면 제2 제3의 L교수가 탄생하기 최적의 환경일 수 있다.

 

교사는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직업이다.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라는 학생들의 말을 가벼이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우리 학교는 스스로를 “국내 유일 종합교원양성대학으로서 (...) 아주 특별한 대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 자부심을 지키고 싶다면 지금 반성하고 자정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교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라. 교육과정에 성평등과 인권 감수성 교육을 필수 과정으로 추가하라.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승의 은혜’를 부끄러움 없이 듣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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