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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시론] Pedagogical thinking 해 보기

정광순 초등교육과 교수l승인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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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책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읽은 한 구절이다. 글을 쓰려면(혹은 일을 하려면) 내가 보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나는 깊게 보는 사람인지, 멀리 보는 사람인지, 넓게 보는 사람인지, 오래 보는 사람인지……. 적어도 지금 내가 쓰려는 것, 하려는 것을 깊게 봐야 하는지, 멀리 봐야 하는지, 넓게 봐야 하는지, 오래 봐야 하는지……. 나의 해석이 내가 하는 글(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나의 방식 혹은 나의 시각이나 관점을 알아차리면서 내가 쓸 글감(일감)의 대상이나 현상 등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쓰거나 일을 한다. 
사람이, 특히 교사가 이 모든 방식에 두루 통달하면 좋겠지만,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보라면, 나는 ‘오래’ 보기(오래 볼 줄 아는 사람 되기)를 추천하고 싶다. 교사로서 하는 교육이라는 것이 보듬고 사랑하는 상태가 그 끝이었으면 좋겠기에 그렇다.  
나는 89학년도부터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 교원대학교, 이 공간에서 4년을 사는 그 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 함께 한 일들, 겪은 일들, 심지어 이 곳의 공기와 바람과 날씨와 풍광들 모두 나를 교사 되게 도와주었지만, 거기서 못 배운 오래 보기를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살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공부하는 페다고지에서도 먼저 ‘그냥 보기just seeing’부터 연마하라고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고 한 것도 아니지만 나도 그렇게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는 게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학교에서 교사로 사는 삶도 공사다망했다. 할 일도 많고 개입해야 할 일도 많았다. 그래서 늘 바빴다. 늘, 매 순간, 크고 작은 급한 일들이 지나치고 싶어 하는 나를 기어이 잡아 세우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사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보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 갔다.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간산처럼 내 시야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일이 내 일상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물론 그러다가도 내 레이더에 걸리는 것들이 있었고, 나는 내 몸에 벤 매뉴얼대로 그것들을 처리하곤 했다. 이런 방식이 점점 나의 습관이, 나의 태도가 되어, 내가 인식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내가 몸으로 표정으로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내 몸에 스며들어 앉았다. 언제쯤부터는 내 교실의 아이들도 잘 보지 않았다. 
그 날도 내 몸은 소진 직전이었고, 그래서 마음도 정신도 없는 상태로 멍을 때리며 교실 한 코너에 있는 내 책상에 앉았다. 아이들이 구슬을 치며 노는 모습이 그냥 보였다. ‘수업 시작 종을 쳐 본들 저 구슬치기를 멈추게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수업을 하는 줄 알고, “앉아라, 수업하자” 한마디 하면서 수업을 하곤 했는데……. 나는 그 때야 알았다. 실은 아이들이 구슬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 순간에 나는 아이들을 ‘보았다’. ‘멈추지 않으니 구슬치기로 수업을 할 수 밖에…….’ 그냥 보기만 해도 보이는데 나는 언제부터인가 보면서도 보지 않았고, 보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냥 보아야 보인다. 그냥 보기만 해도 조금은 보인다. 자세히 보면 더 잘 보인다. 이렇게 나는 아이들을 ‘보기’ 시작하면서 교실에서 하는 우리의 수업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보며 생활하고, 보고 지도하고, 보고 교육하면서 아이들을 내 안중에 넣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보면서 조금은 더 오래 보게 되었다. 
교사가 깊게 보고, 멀리 보고, 넓게 보아야 하는 일들이 적지는 않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오래 보기’가 으뜸인 것 같다. 나는 이 ‘오래 보기’를 자연 상태로 배우느라 정말 오래 걸렸다. 오래 오래~ 시간을 들여서 어렵게 어렵게~ 배웠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공자에게 자공이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풍족한 식량, 충분한 병력, 백성의 신뢰가 있어야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무릇 교육을 하는데도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자공이 “셋 다 있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되묻자, 공자가 “셋 중에 버려야 한다면, 병력을, 둘 중에 버려야 한다면 식량이다”고 답했다고 한다. 공자는 결국 정치에서 백성의 신뢰란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교육 하(려)는 사람’도 이랬으면 좋다. 학생이 학교에서 배움을 대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학교가 그런 곳이면 좋겠다. 공부를 어려워만하고 그래서 싫어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더라도 공부가 쉬울 수 있다는, 재미있을 수 있다는,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좋아하게 될 거라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우리를 더 잘 보듬는다는 애정한다는 것을 신뢰하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지, 그래서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자주 자주 보고, 오래 오래 보면, 알 수 있고, 그렇게 알게 된 것을 할 때라야, 가능할 것만 같다. 


정광순 초등교육과 교수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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