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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교수의 서재]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예림 기자l승인2019.04.22l수정2019.05.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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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교수의 서재에서는 윤리교육과 김주휘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주휘 교수님은 대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꼽았다. 매 순간 삶에 충실한 주인공 니나의 모습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젊음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Q. 교수님께서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을 소개해 주세요.

우리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력고사만 잘 보면 돼서 책을 읽을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같은 세계문학을 많이들 읽었어요. 그중에서 오늘 추천할 책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라는 책이에요.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 유명해요. 번역가 전혜린은 서울 법대를 다니다가, 문학이 더 좋아서 법대를 그만두고 195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가요. 한국에 돌아와서 성균관대 교수도 되고 그랬는데, 이혼을 하고 31세에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했어요. 사후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에세이가 나왔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어요. 뮌헨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적었는데 그게 우리한테는 굉장한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그녀는 일종의 자유, 지성에 대한 열망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어요.
그 사람이 번역한 이 책의 주인공 니나는 당시에는 문화충격에 해당하는 굉장히 독립적인 여성상이에요. 그때는 30년 전이란 말이에요. 우리 딸이 대학교 1학년이니까 지금 대학생들의 엄마가 학교 다니던 시절이에요. 그때는 대한민국 사회가 아직도 유교적이었어요. 거리에 갓 쓰고 지팡이 짚고 도포 자락 입은 할아버지들이 다니시고, 그런 할아버지들이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들에게 삿대질하시던 때였어요. 명절이면 한복 입고 친척 집에 인사하러 가는 옛 문화가 남아있었고, 많은 이야기가 누이나 여동생이 남동생이나 오빠를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일하는 내용이었어요. 남아 선호, 남녀차별이 심하던 시대였고, 그런 만큼 여학생들에게 전혜린 그리고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려지는 굉장히 독립적인 여성상이 일종의 모델, 동경의 대상으로 큰 영향을 미쳤어요.
나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고, 굉장히 좋아했었던 책이에요. 주인공이 독립적인 여성이다, 이것 때문에만 의미 있는 책이 아니고, 제목이 말해주듯이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다루고 있어서 지금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 같아요. 저는 우리 딸에게도 읽으라고 이 책을 사줬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소개해줘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Q. 책의 내용과 교수님께 끼친 영향을 소개해 주세요.

연애 이야기예요. 당시에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니나를 보고 독립성과 지성을 한눈에 알아본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가 등장해요. 남성이 여성을 계속 지켜보면서 있었던 일과 이 여성에 대한 사랑을 모은 수기 같은 소설이에요. 나는 이 책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보면서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는, 우리가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어떤 운명에 맞닥뜨리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아버지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고, 갑자기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서 군부 독재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죠. 이 여성의 경우에는 나치가 득세를 하게 된 상황이었어요. 아무튼, 운명이 가져다주는 예상치 못한 불가피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신세 한탄을 하고 나의 운명을 탓할 수도 있죠. 내가 왜 이 시대에 태어났지, 왜 어쩌다 너 같은 애를 만났지 이렇게. 하지만 주인공 니나는 운명 앞에서 그걸 받아들이고 거기서 내가 해야 할 일, 의무에 굉장히 충실해요. 삶이 나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주더라도 회피하거나 운명 앞에서 한탄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상황에서 자기가 해야 할 바를 꿋꿋이 해나가요. 이를테면 아버지 사업이 실패해서 공부를 그만두고 잠깐 휴학을 하게 되었는데, 먼 시골에 냄새를 풀풀 풍기며 죽어가는 할머니 옆에서 가게를 돌보는 일을 하는데 그 일도 기꺼이 수행해요. 그리고 폐병을 앓는 신학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은 니나에게 많은 걸 의존해요. 니나는 내가 아니면 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도움을 줘요. 자기가 폐병에 전염될 수도 있는데도 기꺼이 그 역할을 해요.
그리고 나치가 들어섰을 때 반 나치활동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해요. 심지어 나치가 패하고 나서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집에 부상당한 나치 장병이 들어와요. 그런데 이 사람을 죽지 않게 치료를 하고 숨겨줘요.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한 거죠. 모든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할 바를 굳건하게 수행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 안에는 굉장히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별로 깊이 돌아보지 않고 관례적으로만 살잖아요. 예를 들면 교사는 사회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직업이니까, 사람들이 선호하니까 해야겠다, 그렇게 살아가기 쉬운데 니나는 굉장히 의식적으로 삶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최대한 발전시키려고 해요. 다른 사람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려면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있는 대담한 용기가 필요한데 주인공은 그런 대담함과 용기를 지녔더라고요.
그게 저에게도 영향을 줬어요. 저는 외교학과를 다녔는데 학과 친구들은 고시도 보고 대기업에 취직하기도 하고 기자가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는 갑자기 별로 비전 없어 보이는 철학과로 가서 공부했어요. 그 결정을 내릴 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랐지만 나는 아무런 일말의 주저도 없었어요. 아마 그럴 수 있었던 건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아서인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인생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너무 확고했어요. 그런 건 주인공 니나에게 배운 거고, 실제로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나는 한탄하거나 그렇게 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또 이 책은 내가 다이어리 쓰는 것에도 영향을 주었어요. 내가 일기를 실제로 쓰는 건 아니고 일지를 많이 썼어요. 내가 그날 뭐했는지 오전, 오후, 저녁을 나눠서 기록하고 싶었어요. 대학생 때에도 요일별 표를 만들어서 월요일에 뭘 하고 화요일에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하곤 했어요.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돌아보면 반성도 되고, 소중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죠. 어쨌든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는데 이것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책의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우리 애한테도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안 하더라도 몇 시간 했는지를 가지고 혼내지 않을 테니 어쨌든 쓰라고 했어요. 그걸 써 놓으면 자기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돌이켜볼 수 있으니까 저절로 반성이 되고 능동적으로 미래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이것들이 바로 고등학교 때 읽은 이 책이 나에게 준 아주 큰 영향인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한마디만 더 하자면 이 책은 지금 학생들이 보기에는 구닥다리 책일 수도 있어요. 70년대, 80년대 군부독재의 부당함을 알던 젊은이들은 고민을 했어요. 사회정의를 위해 내 몸을 바칠 것인가, 입신양명의 길을 택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거쳐 가고, 그 과정에서 이를테면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 이런 고민들을 해야 했던 세대였어요. 그런데 90년대 이후로 사회가 굉장히 많이 바뀌고, 요즘 대학생들은 어떤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서로 나누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특히나 앞으로 살날이 많은 젊을 때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초등학생들 꿈이 건물주, 대기업 취직하기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되었어요. 살아남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직업을 가지는 것은 live 하려고 하는 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good life를 지향하죠. 그냥 사는 것과 좋은 삶은 다른 거거든요. 우리는 좋은 삶을 살려고 사는 거지 안 그러면 동물들하고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좋은 삶, 내가 지향하는 건 무엇인가 생각을 하고 그걸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건데 지금은 수단과 목적이 완전히 전도된 것 같아요. 이게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고 사회 자체가 생존을 힘들게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한데,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리 그게 힘들지라도 죽느냐 사느냐 다른 선택의 여지없이 쫓기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는 교사가 아니라 다른 직업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거니까요. 먹고살기 위해서조차도 왜 굳이 교사가 되고 싶은 건지,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과 오면 교사가 되기 쉽다더라” 그래서 하고자 하는 건지, 내가 정말로 살고 싶은 건 어떤 건지 생각을 해보면 좋겠어요. 이미 다 살아버리고 나서 고민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살날이 많을 때 심각하게 생각을 해보면 좋으니까요. 이 책은 루이제 린저가 생각하는 삶에 충실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어요. 꼭 거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삶에 충실하다는 건 무엇일까 한 번쯤은 고민해 보는 게 중요해요. 혹시 우리학교 학생들이 아직 안 읽어봤다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이예림 기자  yearim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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