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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영화도서관] 3월의 극장가 : <캡틴 마블>부터 <강변 호텔>까지

현정우 기자l승인2019.04.22l수정2019.05.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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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왠지 모르게 기대가 많이 되는 달이었다. 작년부터 꾸준히 궁금해왔던 영화들이 대거 개봉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아사코>와 <라스트 미션>, <강변 호텔>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는데, <아사코>를 제외하고는 영화제나 기타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한 영화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 영화들을 드디어 본다니, 하면서도 이제야 볼 수 있구나 싶었던 한 달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상영 기회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봉이란 일이 상영관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상영 회차가 확보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시간이 될 때에 맞춰 볼 수 있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다. 다행히 <아사코>와 <강변 호텔>은 극장에서 볼 수 있었지만 <라스트 미션>은 그러지 못했다. 사실 <아틱> 등 3월을 목표로 개봉한 다른 영화들도 비교적 빨리 내려간 편인 것 같다.
다행히 <캡틴 마블>은 한 달이 넘게 상영을 하였기에 볼 수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개봉할 즈음에는 오히려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도 반응이었지만 다른 마블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많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캡틴 마블>은 난민 문제를 이야기의 핵심에 놓으려는 노력을 어필하며, 주인공을 영웅화하는 데 필요한 요소도 다르게 접근한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듯 빌런을 특정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비롯해서 MCU 전반에 깔린 표면적 정치 행위와는 다른 결을 가짐을 보여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과장된 몸짓들과 농담의 우스움을 억지로라도 쥐어 짜내어 관객의 친근함을 유도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히어로들이 서로를 대상으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여기서 받는 방식이 히어로를 만드는 식이다. 우스움은 철저히 마인드의 일부로써, 무겁게 들어갈 필요도 없이 개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선점한 대상,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경제적 무기다. 히어로들이 서로 (종종 폭력적인) 농담을 내뱉는 모습은 스스로를 관객에게 대변하기 위한 믿음일 수도 있고, “친구”라는 등장 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캡틴 마블>에도 농담은 등장한다. 다만 여기에서의 우스움은 어벤저스들이 서로에게 하는 것과는 다를 뿐이다. 몇 번의 농담이 보증하는 관계로써 친구는 오래 가지 못하지만 오래 가야만 할 것 같은 얇은 피막에 가깝다. 그럼에도 <캡틴 마블> 속 난민 설정의 만족스러움은 단순한 설정의 등장에만 있지 않았다. 여태까지 외부적 침공에 가깝게 그려온 MCU의 적대적 요소를 스스로 수정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캡틴 마블>은 흥미로운 성취였다. 자신의 과거와 맞서 싸우는 캡틴 마블의 발자취와는 개별적으로 영화 속 스크럴들의 노력이 존재해왔다는 사실이 덧붙여진다. 아마도 처음 빌런이라고 여겨진 인물이 알고 보니 핵심 빌런이 아니었다는 요소는 MCU의 기정 클리셰이기도 한데, <캡틴 마블>에서는 이것이 최대한 약하게 느껴진다. 스토리가 뒤집어진다는 사실보다 스크럴과 닉 퓨리, 캡틴 마블 사이에 이어지는 대화, 대화를 만드는 기술이 아마 조금 더 동등한 위치에서 배제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캡틴 마블이 하는 일은 자기와 맞먹는 힘을 가진 빌런과 격투를 하는 것이 아니며, 지워진 자신의 자아를 마주하고, 절대 권력을 가진 제국의 폭정에서 벗어나게끔 “외계” 민족들을 피난시켜주는 것이다. 핵심보다는 결말에 가까웠던 이 부분이 (MCU 영화임에도) 영화를 종종 생각나게끔 해 준다.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보고 나서 슬픈 영화들도 있는 법이다. <강변 호텔>은 3월 극장가의 끝자락에서 본 몹시 충격적인 영화다. <강변 호텔>을 보기 전부터 스포일러를 접하면 안 된다는 말은 들어 왔으나 어떤 스포일러일지는 그다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정확히 의도한 반대 방향으로 감상이 잡힌 것 같다.
여태까지 홍상수의 영화를 보아 온 관객이라면 <강변 호텔>을 보았을 때 이상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들고찍기로 찍은 장면들이 영화의 거의 전체에 해당하며, 다른 홍상수 영화들에서 보이는 감정들이 여기서는 일종의 활기로 대비된다. 어떤 대화가 있고 그 대화가 꼭 반드시 이어져야만 한다면, 그 대화가 어떤 원인을 갖기에 어떤 특징을 갖는다는 것을 꼭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홍상수를 볼 때 한 영화 속의 대화들이 유효한 시간은 한 영화가 지속되는 시간이나 다름없다는 점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강변 호텔>에서는 말이 안 될 것만 같은 장면들이 자꾸 말이 된다. 좀 누우라는 언니의 말에 상희는 정말로 같이 누워버리고, 두 아들들에게 시인 고영환은 귀여운 인형을 선물한다. 갑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도 하고, 남의 차에서 장갑을 훔치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또 다 말이 된다. 그 부분을 담은 장면이 딱 끊기고 그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그 말도 안 될 것 같던 대화가 잔상처럼 어른거린다. 저런 행동도 서로 서슴없을 만큼 저 치들은 친숙하구나, 싶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적도 없다.
그러다 결말에 와서는 누구나 당황하게 만든다. 가만히 멈춘 카메라가 고영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니까 이 영화가 한 사람의 영화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자의식으로만 빽빽한 영화.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자꾸만 서로 말을 주고받던 사람들의 눈길이 잊히지가 않았다. 왜 그(런) 눈길들이 차마 지속되지는 못하는 걸까 싶었다.
항상 홍상수는 새 영화가 제일 좋다. 이번 홍상수의 영화는 내레이션이 많다.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 영화의 제목부터 만든 기간까지 영화의 정보를 읊는 기주봉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영환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어느 시점까지 고영환의 목소리로 고영환의 생각을 표현한다. 영환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닿기까지 계속해서 목적지 없는 목소리가 화면 위에 덧입혀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똑같은 말들인데 도착지가 생긴 말들이 반복된다. 한 번 반복되는데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생각해 보면 <강변 호텔>이 건너는 지점은 반복될 말 자체가 아니라 말이 반복된다는 사실, 사실이 수식에서 어디에 존재하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연산은 괄호가 없어도 먼저 계산된다. 일종의 순서에 관한 문제다.
홍상수의 영화에 형식이란 말을 덧붙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영화가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 <강변 호텔>을 보다가 흠칫한 순간이 있었다. 호텔 방에서 나온 영환이 한 동안 카메라 건너를 멍하니 보다가 서둘러 약속에 늦지 않을까 계단을 내려간다. 카메라는 계단 왼쪽 복도의 영환을 잡다가 가운데로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가는 영환을 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영환 맞은편에 서 있던 상희를 바라본다. 상희는 창밖을 보고 있어서 영환을 모른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서 그렇다면 영환은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상희를 보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길게 이어져있는 한 방향 복도였기에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모습이 동시에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을 뿐더러 영환의 시선이 상희가 있는 곳을 향했다고 해서 상희를 본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다고 해서 꼭 그게 어떤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다. 영환과 영환의 두 아들이 차단용 거울 하나를 두고서야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강변 호텔>은 그 지점에서 한 번 더 슬픈 영화가 되려는 것만 같다.


현정우 기자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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