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5.23 목 11:49

[428호/기획] 형법 269조- 낙태죄의 끝, 그리고 시작

민소정 기자, 이현주 기자l승인2019.05.07l수정2019.05.07 23:0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지금까지 낙태는 주로 ‘개인의 선택 대 생명존중’이라는 대립 구도의 형태로 논의되었다. 이러한 대립구도 안에서 여성이 처한 사회적 상황은 지워지고 낙태는 온전히 개인의 도덕성에 따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낙태가 온전히 여성 개인의 선택으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피임 방법을 거부하는 배우자의 성관계 요구나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미혼모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및 지원 대책의 미비와 같은 사회적인 압박이 여성에게 낙태를 종용한다. 여성이 가진 재생산권은 종교계의 생명존중 요구와 정부의 인구정책에 따라 통제되어왔다. 재생산권은 임신‧출산에 있어서 여성의 선택을 존중받을 권리 및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권리, 성적 관계에 있어서 평등할 권리를 포함한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으로 낙태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재생산권을 돌려받기 위해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 낙태죄 위헌…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

지난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와 관련한 형법인 형법 제 269조 제1항(자기낙태죄)과 제 270조 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단순 위헌이 3명, 헌법불합치가 4명, 합헌이 2명이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 상 위헌선언으로 즉각적으로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켰을 때 생길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법의 효력을 인정한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결정에 따라 낙태죄는 2020년 12월 31일까지를 유예기간으로 두고 법이 개정될 때까지에 한해 그 효력이 유지된다. 

형법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헌법재판소는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의 근거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들었다.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라며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다”라며 낙태죄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판단한다. 과잉금지원칙이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자기낙태죄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2012년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라며 합헌 판결을 내렸던 것과 비교된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하 모낙폐)’에서는 “4월 11일은 대한민국 형법에서 낙태죄가 존치된 지 66년 만에, 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판결 7년 만에 역사적인 진전을 이루어 낸 날”이라며 이번 판결에 대한 환영 의사를 내비쳤다. 이와 함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을 완전히 재검토하고 성과 재생산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라고 촉구했다. 앞으로 있을 낙태죄 개정에 대한 주요 쟁점으로는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한 자기결정권 허용 수준별 시기 구분 및 허용 사유 ▲자기결정권 행사가 어려운 경우에 대한 보완 ▲의사의 진료 거부 권리 ▲건강보험 적용 등이 있다. 

◇ 위헌 판결까지 걸어온 길

우리나라에서 낙태죄는 1953년부터 존재했지만 높은 낙태율과 처벌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문화된 법으로 여겨졌다. 또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였으나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법률의 가동 여부가 변화하였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정부의 출산억제정책 하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다. 1990년대 인구와 관련한 주요 문제는 성비불균형이었다. 출산억제정책과 낙태의 암묵적 허용, 남아선호사상이 맞물려 여아선별낙태가 이루어진 까닭이었다.
저출산 시대가 도래하자 정부는 2016년 낙태죄 처벌 강화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분류한 8개 항목에서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를 포함시켰다.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사에 대한 자격정지 기간은 기존 1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겠다는 방침이었다. 이에 많은 여성단체와 개인이 반발하여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페미니즘 단체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 10번출구’ 등은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본따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주최하였다(교원대신문 295호 참고). 폴란드의 ‘검은 시위’는 낙태 규제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있었던 집회를 말한다. 시위 참가자들은 여성 생식권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집회에 참여했다. 많은 반발로 결국 정부는 낙태죄 처벌 강화 계획을 철회하였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움직임은 2016년 이후로도 계속됐다. BWAVE 팀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19차례에 걸쳐 임신중단 합법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개최했다. 2017년에는 여성 단체들이 모여 모낙폐를 발족했다. 모낙폐는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표어를 걸고 ‘2017검은시위’를 주최했다. 또 모낙폐는 2018년 269명이 모여 흰색 피켓을 들고 숫자 269를 만든 후 붉은 천으로 숫자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낙태죄를 의미하는 형법 제269조를 삭제하자는 뜻이다. 페미당당에서는 자연유산 유도제인 ‘미프진(미페프리스톤)’을 복용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주최 측은 미프진의 존재를 알리고 국내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2017년에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23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이 청원에 참여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3월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며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지금까지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 개인과 집단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이 모든 움직임이 모여 ‘낙태죄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사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 임신 중절과 성교육

청소년들에게도 임신중절은 현실이다. 2010년 대한산부인회지에 발표된 ‘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행태 조사’에 따르면 임신 경험 여학생 중 79.6%가 임신중절수술을 경험했다. 약 80%의 청소년들이 임신 후 출산이 아닌 낙태, 즉 임신중절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그들에게 임신중절수술은 선택이 아닌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출산을 하더라도 당장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갖춘 청소년은 드물다. 게다가 미혼 출산일 경우 사회는 비난 섞인 반응을 보내며 미혼모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고 출산한 청소년은 의지할 곳을 찾기 어렵다. 학생일 경우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하다. 청소년기 출산은 선택하기엔 두렵고 어려운 방법이다. 이에 청소년들은 임신중절을 선택하게 된다. 많은 산부인과에서 청소년에게 낙태 시술을 해주며 그들이 청소년임을, 그리고 낙태죄를 이유삼아 높은 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낙태 시술을 받는 청소년들은 위축된 상태로 수술과 회복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 어려우며 위험한 수술도 감수하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지금껏 누구도 임신중절을 말해주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현실임에도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임신중절수술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성교육에서 낙태는 태아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 다뤄지거나 그 위험성이 강조되어왔다. 보건 교과서에서는 인공 임신 중절을 ‘태아를 인위적으로 자궁의 태반에서 때어내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 정의하며 그 위험과 후유증을 주로 다루고 ‘등교를 기피하거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낙태의 문제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성교육 자료로 사용되곤 했던 <소리 없는 비명>이라는 다큐멘터리는 임신중절수술로 태아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연출했으나 이는 영상 조작에 의한 것이며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학계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며 낙태의 끔찍함을 익혀왔다. 청소년기는 임신중절이 사회적, 신체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시기이므로 신중한 고민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예방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며 낙태를 생명을 빼앗는, 하지 말아야할 행위로만 서술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교육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정이 난 지금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성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충북청소년성문화센터 김남희 센터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성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Q. 지금까지 임신중절에 대한 성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동안 성교육은 순결, 정조에 대한 교육이었다. 초창기 성교육은 낙태 동영상을 보여줬었다. 태아를 가위로 잘라서 강제로 끌어내는 행위를 보여준 것은 잘못된 교육이었다. 공포감을 심어줘서 “너희가 몸 잘못 놀리면 이런 꼴을 당하는 거야. 이러면 너희는 살인자야.”라는 메시지가 떠오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제는 성문화가 바뀌었다. 성관계는 성적자기결정권에 의해,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에 청소년 개인의 성적인 문제를 관여할 자격은 없다.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책임감 교육이다. 성관계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이제까지는 여학생, 여성들이 진 것이다. 아이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냐. 교육이 바뀐다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올바른 피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결혼 전에 청소년이 성관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금의 성 문화를 만들어 놓은 것은 성인들이다. 컴퓨터만 켜도 너무 많은 음란물이 떠돌고 누구든지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세상에 청소년들에게 “들어가서 보지 말아라”, “너희들은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앞으로 성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첫째로는 철저한 피임교육, 둘째는 책임감 교육을 하는 것이다. 피임은 남녀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낙태도 피임도 여성의 몫이고 여성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에 잘못됐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바로잡아야 한다. 피임을 교육하는 것이 아이들의 방만한 성관계를 방조한다고 관리자들이 생각하신다. 방만한 성관계를 적극 강요하는 게 아니고 알고 대처하라는 것이다. 하지말라고 청소년들이 안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피임 교육이 되지 않는다면 피해를 입는 미혼 여성들만 많이 생기는 것이다. 
피임교육은 철저히 돼야하는 거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남성이 주도하면 마초 성향을 가진 최고의 남자고, 이에 아주 조신한 태도로 순응하는 게 여성의 역할이 아니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말할 수 있고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놔야 한다. 앞으로는 교육 방향이 그렇게 가야 할 것이다.”

충북청소년성문화센터장은 피임 교육과 성적자기결정권을 강조했다.  철저한 피임과 확실한 성적자기결정권 행사를 통해 계획적인 임신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된다면 그 이후엔 어떻게 해야할지도 알려줘야하지 않을까. 
이제 낙태죄는 폐지됐다. 이야기할 수 없어 음성화됐던 낙태를 이제는 보편적 논의로 끌어올릴 때이다. 이미 청소년 임신중절수술은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를 꺼내어 이야기하고 정확한 정보를 서로 공유할 때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해진다. 청소년이 낙태를 선택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누구와 상담해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낙태 후엔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지 성교육은 알려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낙태 결정 후 남성의 경우 ‘수술 전날 여자친구가 매우 불안한 상태이니 함께 있어주거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준다.’거나 낙태 후 ‘세균감염을 막기 위해서 수술 후 4주일간은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정보. 그리고 여성은 낙태 시 ‘의사에게 수술의 방법이나 과정을 묻는다’거나 낙태 후 ‘원치 않은 임신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홀가분함과 함께 격한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오기도 한다. 그동안 혼자서 너무 어려운 문제를 결정해야 했고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을 격려해주고 위로해준다. 자책하지 않는다.’는 대처법을 알려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주의 성교육 자료집 참조) 위 센터장의 말처럼 성교육을 통한 지식 전달이 그것을 하라고 추천하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낙태에 관한 이야기는 인공임신 중절을 선택하며 불안한 상태인 청소년에겐 자신의 건강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지식이, 사회적으론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이해를 도와 낙인 찍는 문화를 변화시키는 지식이 될 수 있다. 청소년들이 더이상 혼자 고민하지 않도록 성교육은 낙태를 막연한 공포심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다시 써야 할 때이다.

 


민소정 기자, 이현주 기자  dohwa98@gmail.com, kyo6157@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지연/김보임/허주리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9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