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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기자칼럼] 제약회사의 인질극

민소정 기자l승인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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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동원수산의 어선인 동원 628호가 아프리카 소말리아 근해에서 해적에게 피랍되었다. 소말리아 해적은 우리나라 정부에게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다. 동원호 선원들은 우리 정부가 해적에게 80만 달러를 지불하고 난 뒤에야 풀려났다. 2007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이 우리나라 원양어선인 마부노 1·2호를 납치하여 1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 2010년에는 유조선인 삼호해운 소속의 삼호드림호가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었다. 회사 측에서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950만 달러를 몸값으로 지불했다.
앞서 언급한 피랍사건에서 소말리아 해적은 인질의 목숨을 볼모로 삼아 돈을 요구했다. 한편 다국적 제약회사는 환자의 목숨을 인질로 하여 그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2015년 스위스의 제약회사 튜링은 ‘다라프림’의 미국 판권을 인수했다. 다라프림은 톡소포자충증 치료제다. 톡소포자충증은 임산부와 에이즈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튜링사는 판권을 인수한 후 다라프림의 가격을 13.5달러에서 750달러로 인상해 폭리를 취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또 있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는 ‘루테시엄옥트리오탯’의 독점 판매권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루테시엄옥트리오탯은 신경내분비계 종양 치료제다. 노바티스는 스타트업을 인수한 이후 이 약의 가격을 5배 인상했다. 네덜란드에서 루테시엄옥트리오탯은 1억2천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폭리 행위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변호를 받는다. 수요가 적은 희귀질환 치료제는 높은 가격이 개발·생산·유통의 계기가 되기 때문에 약값을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 의견은 다국적 제약회사의 만행을 변호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 제약회사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를 개발·생산·유통할 때 받는 비용 지원이나 규제 완화, 특허독점 등의 혜택을 고려해보자. 희귀질환 치료제의 개발·생산·유통을 위해 약값을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빈약해진다. 희귀질환 치료제를 위해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독점 판권을 가지고 있다면 투자금 회수를 위해 희귀질환 치료제에 과도한 가격을 상정할 필요도 없다. 제약회사가 어떠한 희귀질환 치료제의 독점 판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회사는 폭리를 취하며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판매가를 관철한다. 게다가 원하는 가격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해당 국가에서 의약품을 판매하지 않겠다며 ‘갑질’을 하기도 한다. 영국의 공공의료 서비스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와 미국 제약회사 버텍스는 ‘오캄비’ 가격에 대해 협상을 시도했으나 결렬되었다. ‘오캄비’는 희귀유전질환인 낭포성 섬유증의 치료약이다.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절반은 32세가 되기 전 사망한다. 영국에서 낭포성 섬유증 환자가 1년 동안 먹을 오캄비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1억 5700여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협상 결렬 이후 버텍스는 NHS에 오캄비 공급을 중단했으며 신약인 ‘심케비’의 시판허가 신청도 철회했다. 
폭리행위를 하는 제약회사들은 약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고 말았다. 인류가 약을 만들어 온 이유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다국적 제약회사는 환자의 생명을 인질로 삼고 약을 돈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들의 폭리 행위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갈과 다름없다.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약이란 어떤 것인지. 정체성에 대해 다시 숙고할 때가 되었다. 
 


민소정 기자  dohwa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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