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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영화도서관] 모두 고마워요! (2)

현정우 기자l승인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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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영화가 유지해 온 수면에 균열을, 붕괴와 파장을 일으키는 완력에 의한 것이라 여겨져서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실존하는 감각의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도 문제고, 무엇보다도 그 근원이 오로지 저 자신이라 한정할 수 없다는 점 또한 그러했습니다.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면서부터 제가 느끼는 감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 명백했으니까요. 그래서였는지 올해 <24 프레임>을 만났던 건 무척이나 소중했던 경험이었습니다.

2년 전에 타계한 감독이 마지막으로 남겼던 프로젝트를 보는 건 의미 깊은 일일 테입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프로젝트의 많은 부분은 당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관객으로써의 저로써는 이야기를 만들고 저의 이야기도 말하게끔 하는 곳이라 여겨져 왔습니다. 골수 씨네필들이 극장을 고집하는 이유와도 비슷할 지도 모릅니다. 극장의 역할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극장이 산업 구조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여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24 프레임>은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직접 자기 영화를 보다가 졸아도 된다고 했을 만큼 그저 움직이는 정물들의 집합일 뿐이었습니다.

한 번 움직이고 나니 그 다음에는 움직여도 크게 감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리가 들리고, 눈발이 흩날리고, 한 두 개의 요소가 모여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모습은 계속해서 그 과정을 반복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옛날 회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첫 프레임 속, 정지한 화면에서 어느새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하는 강아지의 모양은 잔잔한 수면 위에서 공기 방울이 터지는 풍경을 알아챌 떄의 느낌이었습니다. 정지한 상태에서 움직임을 가짐으로써 화면 자체를 흩뜨리는 대상의 태도가 제가 영화를 좋아해왔던 이유와도 맞닿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여전한 수면이듯이, <24 프레임>은 내내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복기시켰습니다.

올 한 해 꼭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건이 흐르고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너무나 많은 것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4.16 연대 미디어위원회의 작품들이 여럿 공개되었습니다. 지난 해, 박종필 감독이 곁을 떠나고 나서야 마지막 작품이었던 <잠수사>를 보았습니다. 역시 이미 곁을 떠나 버린 고 김관홍 잠수사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두워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듯,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일 것입니다. 김응수 감독의 두 편의 세월호 영화였던 <오, 사랑>과 <초현실>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늦기 전에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말을 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쉽사리 도전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제 와서야 급하게 두 영화를 보고 얘기할 기회를 가진 것에 스스로가 서운해졌습니다.

두 영화 모두 지속적으로 거리를 흩트리고 있었습니다. <오, 사랑>과 <초현실>의 공통점,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영화적 설정이라던가, 그 시간 안에 개인의 경험을 무한히 확장하고 함축하는 방식의 반복이 끊임없이 감각을 재생산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초현실>의 주된 사건, 대학교에 ‘영혼 입학’한 아들 김건우 군의 MT에 따라간 아버지 김광배 씨의 얼굴에 다가가는 방식은 가까움과 멈을 보는 이의 시각을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강연을 듣는 학생들의 얼굴과 김광배 씨의 얼굴을 똑같은 초점 하에서 잡던 카메라는, 사건과 관련이 없는 숏들을 넣어가면서 김광배 씨의 얼굴에만 초점을 잡습니다. 그럼에도 -김응수 감독이 직접 제작한- 자막이 지속적으로 주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오, 사랑>을 보면서 왜 저 장면을 저렇게 멀리서 찍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가까이 위치한 거울에 왜곡되어 보이는 주인공의 모습과, 멀리서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같이 담긴 장면은 수면으로써의 영화-장치를 지극히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김응수 감독의 신작을 보면서 든 논의는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우경>부터 김응수 감독의 신작은 영화제 등 상영의 방식을 제외한 IPTV와 스트리밍의 형태로 공개되었습니다. 이 풍경을 보고 넷플릭스에서 선공개된 영화들이 떠올랐습니다. 작년의 <옥자>부터 시작해서 <서던 리치:소멸의 땅>이나 <카우보이의 노래>, <로마>등 기성 감독의 영화들도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고 있으며, <힐 하우스의 유령>등 온갖 테마의 드라마들이 넷플릭스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 사랑>과 <초현실>에 대해 제대로 다룬 매체는 ‘영상’비평지 오큘로를 제외하곤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2018년의 영화제를 돌아보니 아카이빙이 중요한 테마가 아니었나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곧 개최될 서울독립영화제의 특별전과 DMZ다큐영화제의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 상영, 작년 타계한 마츠모토 토시오의 작품을 상영하는 순회전뿐만 아니라 하라 카즈오, 그리고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마련했던 아카이브전까지 많은 영화제에서 아카이브를 테마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의 순기능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마르지예 메쉬키니와 줄리 대쉬, 바바라 해머를 한 주에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음은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이는 <바람의 저편>의 넷플릭스 공개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놀랍게도 <바람의 저편>은 -적어도 한국- 영화평론계에 눈에 띌 만한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오손 웰즈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도, 몇 번의 촬영 중단과 기획과 복원을 거쳤음이 여태까지 많은 글을 통해 드러났음에도 한 번의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이라 생각했음에도 수긍이 되었던 이유는 <옥자>의 개봉 당시 맞닥뜨렸던 문제점이 생각나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흥행에 실패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15시 17분 파리행 열차> 또한 IPTV를 비롯한 2차 매체로 직행했습니다. 2차 매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B급 영화라는 단어의 쓰임새가 떠오릅니다. 시간이 지나고 동시상영극장이 없어졌음에도 B급 영화라는 단어는 남아서 이젠 다른 영화를 수식하기에 앞서지고 있습니다. ‘A급을 가장한 B급 영화’ 등 각자의 감상을 표현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2차 매체는 수식에 쓰이지 않습니다. B급 영화와 2차 매체 모두 영화를 배급하는 방식에서 등장한 말입니다. 2차 매체라는 말은 영화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지만 B급 영화라는 말은 영화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습니다. B급 영화가 필요한 매체가 사라졌기에 그렇다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야 교내 도서관에 <15시 17분 파리행 열차> 블루레이가 소장되어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 말고도 많은 영화들이 2차 매체로 직행했습니다. <흔적 없는 삶>, <리벤지> 등 여성 감독의 영화도 있었고, <T2 : 트레인스포팅>이나 <디서비디언스>처럼 알 수 없는 판단에 의한 영화들도 있었습니다. 주된 이유는 극장 사용료를 부담하면서도 배급과정에서 쓰인 돈을 환급할 수 있을 만큼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웠기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차 매체로 직행한 영화들에 관해서도 타 영화들처럼 논의를 진행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여겨집니다.

이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싶은 한 해입니다. 오래 전의 텔레비전을 넘어서,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유튜브, 이외의 무수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영화를 즐기는 데에 일상적인 도구입니다. 좀 더 싸고 편한 기회로 영화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갖는 지층은 협소합니다. 매체의 특성이라고 한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영화 산업의 주도권이 복합적인 산업을 포괄하는 주체로 넘어감에 따라 우리가 영화를 얻는 곳도 더더욱 많아짐이 느껴졌습니다. 개인의 감상을 표현할 공간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사적인 기능 이상을 하지 못합니다.

올 한 해 극장에서 공개된 영화들에서 다양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영화들에게서 죽음의 기운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홍상수의 신작, <공사의 희로애락>, 심지어 올해 최대 흥행작인 <신과 함께 : 인과 연>도 저승을 주 무대로 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무어라 말을 얹을지 모르겠습니다. <쓰리 빌보드>나 <디트로이트>,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거쳐 오면서는 할리우드에서 현장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메타픽션을 이용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기도 하고, 어떤 영화들은 얼굴을 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굿타임>처럼 누군가의 얼굴이 영화가 주력하는 테마가 된 경우도 있고, <얼굴들, 장소들>처럼 하나의 작업 하에 게시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해를 결산할 때 잊지 못할 경험이 있는 건 좋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얼굴들, 장소들>을 보던 극장 안을 잊기가 힘듭니다. 컨테이너에 그려진 여성 운전수들의 얼굴이 드러날 때의 극장 안의 풍경을 잊기 힘듭니다. 극장을 나오는 길에 여기저기서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아직 기억납니다.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온 끝에 등장한 문구를 외치며 글을 끝내고 싶습니다. 모두 고마워요!

 

추신) 다음 열 편의 영화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아녜스 바르다 <얼굴들, 장소들>, 조쉬 사프디, 베니 사프디 <굿타임>, 스티븐 스필버그 <더 포스트>, 김일란, 이혁상, <공동정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4 프레임>, 하라 카즈오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블루>, 김응수 <오, 사랑>, 장윤미 <콘크리트의 불안>, 홍상수 <풀잎들>.

아직 못 본 영화가 많아서 뽑는 데에 고민이 들었습니다. 지난해가 끝날 때쯤에 개봉했던 <유령 이야기>도 보지 못했고,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를 비롯해서 위에서 언급한 2차 매체로 직행한 영화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미지 북>이 개봉했다면 보았을 텐데 보지 못했습니다. <겟아웃>의 제작사인 블럼하우스 프로덕션에서 제작된 <할로윈>의 속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사령혼 : 죽은 넋>, <아사코 I&II>, 그리고 <바람의 저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현정우 기자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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