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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호/사무사] 모욕의 역사를 끝내라

편집장l승인2018.11.26l수정2018.11.2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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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욕의 역사다. 지난 22일,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자해로 협박한 래퍼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21일, 8세 여아를 화장실에 데려가 성추행한 초등학교 돌봄 강사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20일, 가출한 아내와 장인을 살해하려고 시도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17일, 게스트하우스에서 술에 취해 잠든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14일, 전 여자친구를 옷걸이로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8일과 19일, 직속 부하 간부를 레즈비언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성폭행한 두 명의 해군 간부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11일, 여자화장실에서 상습적으로 타인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전부 최근 한 달 사이에 내려진 선고다. 범위를 더 넓게 잡으면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아질 것이다. 열거한 판결들을 남성 모델을 불법촬영한 여성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판결과 대비하면, 무시할 수 없는 선명한 불균형이 드러난다. 이 판결이 내려진 날은 8월 14일.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무죄를 선고받은 날이기도 하다.
 피해자가 여성일 때, 법은 한없이 온정적이고 너그러워진다. 현재 여성혐오 사이트 ‘일베’ 이용자들은 “여친 인증”이라는 제목의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며 “얼굴 공개만 안 하면 처벌 안 된다”, “어차피 안 지우고 있어도 선고유예다” 같은 말을 주고받고 있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은 가해자에게 든든한 방패가 되고, 가해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비단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SNS에는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가 이슈가 되고 있다.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대응을 고발하는 이 해시태그는 “그게 무슨 성폭력이에요. 성추행도 안 되겠다”, “그 사람이 ㅇㅇ씨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와 같은 2차가해도 다수 고발하고 있었다. 지난 19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불법촬영물을 등한시하다가 이제 실태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불법촬영물 근절을 위해 싸우는 단체 ‘디지털성범죄아웃’은 3년 전인 2015년 10월부터 활동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동안의 불법촬영 범죄는 경찰이 사실상 방조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다. 그리고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매일 아주 분명하게 한 가지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하고 있다. 우리에게 여성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여성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존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여성에게 해를 가하는 자들을 용서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국가에서, 동료 시민들에게서,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모욕이 가해지고, 여성은 점점 모욕에 익숙해진다.
 피해를 고발해도 내 탓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것이라는 무력감, 가해자는 버젓이 거리를 활보할 것이라는 무력감을 이 땅의 여성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당한다. 혼자 밤거리를 걸을 수 없는 두려움, 공중화장실을 가느니 집으로 달려가는 것을 택하는 두려움을 학습당한다.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성들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라고 소리쳤지만, 돌아온 것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다”라는 검경의 결론과 “남자 여자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라는 조롱뿐이었다. 그리고 3년 후, 이수역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두 명의 여성이 네 명의 남성에게 집단 린치 당했고, 이번에도 피해자를 돕는 이는 없었다. 한쪽의 피해가 분명한데도 언론은 신속하게 이를 ‘성대결’ 사건으로 몰아갔다. 피해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느니 험한 말을 했다느니 하는, 남성이 비슷한 범죄의 피해자였을 때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주장이 제기되었고,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대명제조차 잊은 자들이 2차 가해를 퍼부었다. 이 모든 사실은 또다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페미니스트 여성은 언제든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사회는 그것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권장할 것이다.
 머리가 짧고, 화장을 자주 하지 않으며, 페미니스트 여성인 내게 이 메시지는 실제적인 위협이다. 이 글을 내 이름을 걸고 신문에 실음으로써 신체적·언어적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지고 있으며, 아마 신문이 발행되어 나올 때까지 계속 두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이제 더는 두렵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더는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여성의 존엄을 위협하는 사회에서 더는 무력하고 싶지 않다. 더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존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삶을 원한다. 언제든 혐오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원초적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밤길을 걷고 아무 화장실이나 편하게 쓸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맞아도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수백 년 동안 모욕당하고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들불처럼 번지는 여성들의 분노가 이를 증명한다. 이들의 분노를 단순히 억지를 쓰거나 반대 성을 ‘혐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재하는 불공평을 못 본 척할 수 있는 것 역시 권력이다.
 한번 분노하기 시작했다면 그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더 이상 무력한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원래 가졌어야 했을 삶을 되찾기 위해 외치고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생존의 문제를 넘어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삶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싸울 것이다. 여성의 힘과 연대로 세상은 변한다. 인구의 절반을 모욕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시대는, 지금 여기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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