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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독자의 시선] 앗! 여자 목숨, 신발보다 싸다

하주현(환경교육·15)l승인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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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과 편파수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불편한 용기’ 시위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여자 목숨, 신발보다 싸다’라는, 이처럼 한국 여자가 처한 현실을 통렬하게 표현하는 문구가 또 있을까. 지난 5월부터 여성들은 불법촬영 근절과 관련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어오고 있다. 그렇게 태풍이 예보된 지난달 6일, 혜화역에선 다섯 번째 시위가 열렸다. 매 시위 때마다 다음 시위는 없길 바란다고 했지만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지난 세월동안 여자들의 몸이 전시되고 남성의 ‘딸감’으로 쓰여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을 때에도 잠잠했던 세상은 남성 직원이 회장에게 따귀를 맞는 영상과 닭을 석궁으로 쏘아 죽이는 영상이 올라오자 난리가 났다. 많은 이들이 양진호 회장의 행동은 인권을 유린한 엽기 행각이며 더없이 폭력적이라고 분노했다. ‘양진호 완전 또라이네요. 위디스크 잘 이용했는데 다른 데로 갈아탑니다’라고 하는 남초 사이트의 댓글은 그동안 ‘야동 팔이’ 수입이 80%인 웹하드를 잘 이용하고 있다가 남성 직원을 상대로 가해진 폭력이 드러나자 문제를 느끼는 선택적 공감능력을 보여준다. 위디스크에서 일했던 전 직원은 회사의 장점으로 ‘불법 리벤지 포르노, 일본 AV 등을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웹하드 카르텔은 위디스크, 파일노리 등 파일공유 사이트인 ▲웹하드 업체와 불법영상을 골라내는 ▲필터링 업체 그리고 피해자의 요청을 받고 피해영상을 삭제해주는 ▲디지털장의사(피해자불법촬영물삭제 업체) 사이의 유착관계를 말한다. 웹하드 업체는 필터링 회사를 함께 운영하며 자신들이 피해영상을 삭제하는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정부의 검열을 피해가고, 디지털장의사까지 함께 운영하며 본인들이 유통시킨 피해촬영물의 피해자가 찾아오면 돈을 받고 영상을 삭제해주고 있었다. 이중 웹툰 ‘송곳’의 실제 주인공인 김경욱은 양진호가 세운 모회사인 ‘뮤레카’라는 필터링 업체의 이사로 영입됐고 언론사와 법조계, 정치권에 뻗어 있는 인맥과 진보진영 활동 경험을 활용해 웹하드 업체의 불법성을 보호해 왔다. 한 고발인은 “김경욱이 뮤레카의 법무이사로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법적분쟁까지 처리했다”고 증언했다. 양진호는 자신이 책임지고 물러나니 직원에 대한 비방은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언론 역시 유착 업체끼리의 관계보다 양진호 개인의 행동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바쁘다. 디지털 성폭력으로 시장을 형성한 웹하드 카르텔의 여성착취 문제보다 가해 집단 내에서 발생한 위계에 의한 폭행사건이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는 현실이다.
길은 멀어 보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150여 개의 음란물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했다는 기사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인이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며, 마음대로 포르노도 못 보는 독재국가가 어디에 있냐며 열변을 토했다. 야동은 봐야한다고 불법촬영물 말고 여자도 촬영에 동의한 거라면 봐도 되는 거 아니냐고도 한다. 현행법상 불법촬영물뿐만 아니라 일반 음란물 유포도 불법이라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의 자위권을 위해 영상 속 여자들이 어떤 처우를 당하는지, 그들의 건강과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는 알 바 아니라는 잔인한 주장이다. 그들은 그 촬영에의 동의가 정말 동의일 수 있다고 믿는다. 혹은 동의가 아니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소위 ‘성진국’으로 통하는 일본에서는 방대한 양의 성인물이 생산된다. 한국과 달리 합의하에 촬영되고 유통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합의’라는 단어에도 함정은 있다. 몇 제작사에선 여성을 섭외해 세미 누드 영상물 혹은 사진집인 ‘그라비아’ 촬영을 하자고 속인 뒤 성인물 촬영에 대한 계약서를 쓰게 한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이 계약의 무효를 주장하면 제작사는 위약금으로 압박을 가하고 협박을 해 촬영에 응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미성년자에게 아이돌로 데뷔시켜주겠다며 접근해 촬영하도록 하고 거부하면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성인물 촬영에 동의를 했더라도 촬영 전 협의한 내용과는 달리 촬영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00지옥’이라고 불리는 영상에선 여성이 촬영내용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촬영하는 동안 여러 남성들에게 지속적으로 강간, 폭력, 물고문을 당했다. 2리터의 알코올을 억지로 먹인 다음 토하고 기절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도 있다. 드문 경우도 아니거니와 이례적인 경우라고 항변해봐야 ‘야동’ 산업은 여자를 죽이면서 굴러간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기울어진 지금 ‘야동’은 없고 ‘성착취 영상’만 있으며 남성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엽기적인 플롯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야동은 여성혐오적이고 성착취적이다. 남성이 여성을 착취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는 공기가 남아 있는 한 ‘문제없는 야동’은 남성의 욕구만 챙기는 이들의 환상일 뿐이다.
이번 양진호에게 쏟아진 큰 관심과 분노는 웹하드 카르텔 수사는 양진호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어선 안 된다. 웹하드, 위디스크, 파일노리, 뮤레카 등 양진호가 소유하고 있는 사업 전체의 불법행위를 수사하고 그에 조력한 임원진도 구속조치 해야 한다. 웹하드 업체의 직원 역시 자신들의 손끝에서 수많은 여성이 고통받아왔다는 것에 먼저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한다. 더욱이 불법영상을 올리고 다운받아 본 한국남성들은 자신의 행동이 문제적이었음을 반성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해야 한다. 음란 사이트 접속 차단에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답을 찾을 것이다’라며 DNS 우회 기능을 제공하는 앱을 100만 넘게 다운로드 하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말이다.
망각은 병든 사회의 징후라고 했다. 병든 한국 사회에선 여성조차도 여성의 죽음을 망각하기 쉽다. 찢긴 심신을 끌고 살아보려다 죽어 없어진 여자들을 기억하며 나는 앞으로도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말할 것이다.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에게 들려오는 협박과 조롱은 두렵지 않다. 여자를 성인물로 보고 비하하는 모습이 지천인데 이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없다. 그 길에 이미 많은 여성들이 함께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박완서 작가의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에 나온 구절을 길게 인용하며 마친다. “옛날 옛적, 사람 밑에 종이라는 족속이 따로 있었을 적에도 주인을 잘 만나 사람대접 받는 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 명의 종 중 아홉 명이 주인과 겸상을 해서 밥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학문을 익혔다고 해도 단 한 명의 종이 다만 종이라는 이름으로 박해받는 게 정당한 사회에선 그 아홉 명의 종이 단지 특혜를 받고 있을 뿐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고는 못할 것이다. 특혜란 정당한 권리가 아니기에 그걸 베푼 쪽에서 언제 빼앗아가도 말을 못하게 돼 있다. 팔자가 좋은 여자도 팔자 사나운 여자의 고통에 동참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하주현(환경교육·15)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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