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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독자의 시선]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삶’

손형우(윤리교육·18)l승인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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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고향 친구와 정자에 누워있던 적이 있었다. 왜 그곳에 있었는지, 무얼 하다가 그곳에 갔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날 떠올린 생각은 죽어서야 잊힐 것 같다. 생각 없이 누워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 각 없이 말이다. 웬일인가 떠들썩하던 친구도 그 저 내 옆에 가히 누워 있었다. 그렇게 마냥 누워 있으니 비어 있던 머리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오묘하였고,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도 반가웠으며, 옆에 있는 친구와 처음 만난 때가 언제인지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참 여유롭고 마냥 편안하였다. 이렇게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보통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점점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날도 마찬 가지로 어머니 생각, 아버지 생각, 친구들, 학교 동기들 생각 등등...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 그날 정자를 간 이유는 뭔가 허무한 마음에 간 것이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허무한 마음은 모두 사람들과의 만남과 관계에서 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허무함도 결국은 사람에서 생기는 것이었고, 다시 채워지는 마음도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날 정자에 누워서 생각하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었고, 내 인생이라는 하나의 무대에서 주연, 혹은 하다못해 인상 깊은 엑스트라로 출연하던 사람들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부끄럽게도 난 울고 있었다. 너무나도 공허하던 마음에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들어왔고, 친구들의 우정도 들어왔고, 동기들과 선 배들의 사랑도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어찌어찌해도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고 사람과 살지 않을 수 없다’, 아주 당연한 사실을... 우리가 느끼는 크나큰 슬픔과 기쁨은 생각해 보면 사람에서 오는 것이었다. 나 홀로 기쁘고, 나 홀로 슬픈 것은 사람에게서 오는 기쁨과 슬픔보다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마 ‘인간(人間)’ 그 자체이지 않을까, 불교의 가르침 에서 사람과 사람은 촘촘히 그물에 매달려 있는 구슬과 같다는 연기(緣起)론이 있다. 구슬 하나의 울림은 다른 구슬의 울림으로 이어지고 모두 연(緣)으로 이어져있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연기론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속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우리는 소통할 수 있는 매개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편지는 이미 구식이 되어버렸고, 어린 시절부터 메신저, 이메일은 이미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소통과잉’의 시대에서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손편지에 마음 따뜻해지는 것은 다행히 그대로지만 말이다. 더 많은 대화와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사람은 사람과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손형우(윤리교육·18)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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