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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영화도서관] 모두 고마워요! (1)

현정우 기자l승인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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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는 정말 많은 기회로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한 학기를 휴학한 상태로 보내니 영화제에 가 볼 기회도 많아졌고, 동시에 올해 나온 영화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혼자 공부할 기회,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지면서 영화제가 어떻게 돌아가며, 영화 유통망과 실제 현장에 대해 어깨 너머로나마 전해들을 기회도 있었습니다. 이전과 다른 환경에서 지내며 일상의 일부로 여겼던 반년이었습니다. 복학을 하고 나서는 자연스레 영화를 볼 기회도 줄었습니다. 수업을 비롯한 빡빡한 일정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랬지만 수도권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먼저 보냈던 한 학기를 떠올리며, 이곳저곳 극장을 전전하던 반년 동안 생각만 해왔던 문제를 직접 겪을 수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곳 이 면적에 비례해 적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수도권만큼 교통망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를 한층 심화시켜 주었습니다. 특히 독립 배급사를 통해 유통되는, 멀티플렉스에서 제대로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한 채 독립영화관을 중심으로 개봉하는 영화들의 경우는 정말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만 합니다. 남은 두 번의 영화도서관은 올해 보았던 영화들 중 기억할 만한 영화들을 짚어보는 기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2년 가까이 코너를 유지해오면서 변화를 겪으려 노력했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견을 전문적으로 보이는 용어로 정리하려고 애썼습니다. 공부가 모자란 상태에서 말을 더 얹기는 힘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옛날 영화를 이야기 하기보다 개봉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공개된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쉽고 간결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긴 글은 읽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요. 앞선 연구들에 저 혼자만의 생 각을, 분리되지 않도록 겹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습니다. 연말 결산 시즌이 다가옴에 다른 영화 팬들 역시 한 편이라도 올해의 영화를 뽑곤 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2014년부터 <사사로운 영화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매 해 영화 관계자들의 ‘개인적인’ 리스트를 취합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해의 영화를 결산하는 데에 흥미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리스트를 보면서 궁금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리스트의 상당수는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이었고, 처음 접해보는 영화/감독도 많았습니다. 영화제를 가 보지 못하도록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이 사람들은 어디서 이 영화들을 다 보는 걸까 싶었습니다. 나중에 서야 개봉을 준비 중인 신작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입되고 상영 기회를 얻는지 알았지만, 그럼에도 특정 영화는 접근하는 데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 해에 복원된 옛 영화와 특별전, 회고전에서만 상영된 영화의 경우도 그렇고요. 비슷한 방식으로 관객과 전문가들 사이의 거리가 유지될 것입니다. 자본의 측면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계를 작동시키는 정치의 측면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의 범위부터 좁은 질서 속 권위의 영향력까지 전문가의 존재는 타칭 비-전문가들 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합니다. 리스트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로 제작은 언제, 개봉은 언제, 공개는 언제를 기점으로 영화를 선정하는 것인지 기준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장 에서의 마케팅, 포스터, 트레일러로 접하지 못한 영화가 리스트에 선정되어 있다면 그 영화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는 걸까, 나는 이 영화를 재미 없게 보았는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가, 무엇을 믿어도 좋은 걸까요? 텔레비전이 영상 유통업의 새로운 기로를 개척했음 역시 자명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사료된다면 개봉 대신 IPTV 등 스트리밍 서비스로 직행됩니다. 그러나 때로 어떤 영화들은 텔레비전, 십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도 가능했던 역할을 극장에서 수행합니다. <피의 연대기>와 <어른이 되면>은 그런 논점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영화들이었습니다. KT&G 상상마당의 제작지원을 받아 디지털 후반작업을 끝마친 <피의 연대기>는 같은 회사의 배급사를 거쳐 개봉되었습니다. 만약 <피의 연대기>가 5부작으로 편성 가능한 TV 다큐멘터리였다면, 영화의 주 논점인 생리에 대한 사회문화적 여성혐오, 총여학생회, 여성 후보의 유세 운동, 한 가지 담 이 포함한 이슈들을 개별로 확장시킬 배급망이 유지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유튜브 계정에 게시했던 두 자매의 영상들을 편집한 <어른이 되면>은 본디 ‘온라인 자유상영’이라는 공개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이외에 장혜영 감독이 제시 했던 방식은 공동체 상영과 영화제를 통한 상영 이었습니다. 이 서비스는 배급사 시네마달의 개봉 제안을 받은 뒤, 배급 준비를 위한 1개월간의 자유 상영 이후 일 년 간 자유 상영 중단 및 공동체 상영 상시 진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물론 모두 장혜영 감독의 의도에 준한 선택이었지만 <어른이 되면>은 유튜브 채널을 통한 온라인 배급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인터넷 뉴스 등을 이용한 홍보가 이루어졌음에도 배급사의, 혹은 극장이라는 지정학적 역할은 영화를 인식하는 데 있어 여전한 헤게모니를 통제하는 듯 보였습니다. 한 해에 나온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 니다. 주로 영화감독과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GV 자리에 남아있을 일이 많아지면서 영화를 제작한 인력의 이야기를 들을 일도 잦아져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받은 인상과 무대에 선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많이 닮아 보였습니다. <어른이 되면>을 보면서 다큐멘터리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더 이상 다큐멘터리는 기록 영화 라는 의미로 간단히 정의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느끼는 감각이 영화마다 다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큐 멘터리 영화를 볼 때 우리가 공감하는 건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이슈라고 생각되곤 했습니다. 이런 영화는 무엇 무엇을 다룬 것이라고 한 문장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있는 영화들, 배우들이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영화들은 직접 주제를 꺼내오려는 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공동정범>을,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을, <굿바이 마이 러브 NK>를 보고서도 다큐멘터리는 자기 자신이 다루는 이슈에 결정되는 것이라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을까요. ‘OKULO’ 와 이혁상, 김일란 감독이 했던 대담의 초반에도 언급되지만, 눈물 흘리는 이충연 위원장의 그림 자를 찍은 다음 갑자기 땅 밑으로 추락하는 카메라는 <공동정범>이 압축해야만 했던 부분을 신속히 드러냅니다.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의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화면은 자연스레 두 화면으로 분리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분리된 화면은 보는 이로서 내내 떠올려 온 상상의 네트가 확실하게 있음을 믿게 합니다. 페라라의 신작 <프랑스에서>나 블레이크 윌리 엄스의 <프로토타입>처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은 맥락이 배제된 이미지들이 조합하여 만드는 표면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철저히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걸지도 모릅니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이 점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접근법입니 다. 찍은 푸티지를 편집한 표면 위에 찍은 이의 내레이션을 까는 형식, 혹은 푸티지를 편집하기만 한 결과물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식, 영화 감상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최소화해 제공합니다. 정재훈이나 장윤미 같은 작가들이 이 분야의 참조할 만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작년 정재훈의 <도돌이 언덕에 난기류>가 우리에게 주었던 인상은 조금 더 간략하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장윤미의 <공사의 희로애락>에서 변주됩니다. <공사의 희로애락>에는 끊임없이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는 영상이 나옵니다. 구미와 서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감독의 여정에 맞춰서 영화도 창밖의 공간과 운전대를 잡는 피로함으로 영화의 숨통을 메웁니다. ‘나’의 집과 부친의 일터 사이를 잇는 기로는, 종국에 이르러서는 영화가 찍으려는 족적,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느리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를 처음 좋아했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좋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고민했었습니다. 흔히들 문학을 학습할 때 기-승-전-결이라는 얼개를 곱씹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문학을 여러 장르로 나눠 개별적인 암기 방법을 요구합니다. 특히 소설에서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말로 반복하는데, 여기서의 ‘절정’이 보편적인 감상 방식의 원리를 지배해온 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소름이 돋아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알지 못했던 것이 밝혀지거나 여태까지 영화가 유지해 온 것 에 균열, 충돌, 붕괴를 일으키는 작용이 같은 표면에서 일어날 때 쉽게 소름이 돋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종국에 일으킴으로써 대미를 장식 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 강한 감흥을 받았습니다. 장윤미의 2017년작 <콘크리트의 불안>도 비슷한 정서적 반응을 유도했던 영화였습니다. 러닝타임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네의 모습과 무너지는 재개발 단지 건물은 몹시 대조적입니다. 그 화면들이 모두 똑같은 눈에서 보인다는 환상도 덧붙여서 말이지요. 후일 <공사의 희로애락>을 한 번 더 봐야 하나 싶었던 이유가 어쩌면 <콘크리트의 불안>의 감정적 기호들을 염두에 깊이 두 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현정우 기자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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