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1.27 화 16:21

[422호/컬쳐노트] ‘채식주의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이예림 기자l승인2018.11.1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채식주의자’ 이 말이 갖는 무게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한강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는 제법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이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에 영어로 번역된 외국 소설에 수여되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한국 소설 최초로 수상을 하며 주목받았다. 이 책은 1부 「채식 주의자」, 2부 「몽고반점」, 3부 「나무 불꽃」 총 3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있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은 다양하다. 한강 특유의 섬뜩한 문체로 인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폭력, 차별, 욕망, 죽음, 페미니즘 등 많은 주제를 다룬 소설인 만큼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영혜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남편은 평범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릴 때는 자기보다 두세 살 어린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다니며 골목대장 노릇을 했고, 자라서는 장학금을 넉넉히 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지원했으며, 본인의 대단찮은 능력을 귀하게 여겨주는 작은 회사에서 일했다. 그런 남편은 영혜를 선택했다. 영혜는 매우 평범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그렇기에 매력도 단점도 없는 여자인 영혜를 고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인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면서 남편의 이상은 어긋나 버린다. 어느 날 영혜는 꿈을 꾼다. 어두운 숲속에서 헛간에 들어갔는데 사방이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들로 가득하고, 정신을 차려 보니 영혜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고 있었다.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꿈을 깨고 나서도 생생했다고 한다. 그녀는 꿈을 계기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 다리를 물어뜯은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이고 있어. (중략)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축 늘어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이 경험은 그녀의 채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다. 꿈을 꾼 뒤, 영혜는 냉장고 속의 샤부샤부용 쇠고기, 삼겹살, 우족, 오징어, 장어, 굴비, 냉동 만두를 비롯한 고기들과 달걀, 우유, 심지어 가죽으로 만든 구두까지 모조리 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육식을 하는 남편에게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성관계를 거부한다. 남편은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는 아내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남편의 승진이 걸려있는 중요한 부부동반 모임에서 그녀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트렌치코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나간다. 그 자리는 탕평채, 깐풍기, 참치회와 같은 고기로 만든 요리들이 나오지만, 그녀는 샐러드와 김치, 호박죽만 먹었다. 그런 영혜의 모습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영혜의 채식주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육식은 본능이에요. 채식이란 본능을 거스르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골고루, 못 먹는 것 없이 먹는 사람이 건강한 거 아니겠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원만하다는 증거죠.” 영혜는 허공을 오가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다. 남편은 무언가 조치를 할 필요를 느꼈다. 모임이 끝나고, 남편은 영혜의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아내의 채식을 알린다. 유월 둘째 일요일의 모임은 처가의 큰 행사이다. 그날 모인 가족들은 영혜의 채식주의를 나무란다. 영혜가 좋아하던 굴 무침, 쇠고기볶음과 탕수육, 닭찜, 낙지 소면 접시를 앞에 놓고, 음식을 억지로 먹이려고 했다. 영혜가 음식을 거부하자 화가 난 그녀의 아버지는 얼굴을 붙잡고 탕수육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영혜가 뱉어 버리자 아버지는 폭발한다. 핏줄이 보일 정도로 그녀의 뺨을 세게 때린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데 강제로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과 형제. 영혜를 대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의견이나 행동에 따르지 않는 약한 소수에게 다수가 행하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과 같다. 영혜에겐 그들이 가족이 아니라 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녀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 들고,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불안해하던 그녀는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영혜가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었다. 영혜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젖가슴만을 믿는다.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물구나무를 서서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무는 소설에서 비폭력의 상징이다.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태도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미쳐버린 딸을 포기한 부모, 그리고 오직 책임감만으로 영혜를 돌보는 언니. 영혜가 다수의 범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녀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허물어 졌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는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우리는 정상을 흔히 다수에 속한 것으로 정의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일반적인 것이 정상이라는 사고로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인 현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즉,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을 ‘~주의자’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이상하게 바라 보는 씁쓸한 현실을 소설로 표현했다.


이예림 기자  yearim991@n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예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지연/김보임/허주리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8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