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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기자칼럼] 죽은 물고기로 살 것인가

이예림l승인2018.10.29l수정2018.10.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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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독일 격언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의 흐름대로만 살아가지 않는다. 물의 흐름을 따라 추진력을 얻어 더 멀리 흘러가기도 하고, 물을 힘껏 역류해 올라가기도 한다. 살아있음이란 그런 것이다. 현재 내 주위에는 ‘죽은 물고기’들이 넘쳐난다. 죽은 물고기는 썩어서 악취를 남기는 법이다. 나는 이런 악취를 경계한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해본다. 나는 매일 학교에 가기 위해서 하천 위의 돌다리를 건너곤 했다. 돌다리를 건널 때 날씨가 추워지면 물을 따라 흘러가는 물고기 시체를 흔하게 발견했다. 나는 그런 물고기를 보며 가끔은 살아있음보다는 죽어있는 것이 훨씬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 내게 궁극적인 만족감을 주진 못한다. 살아있음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계획하고 느낄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죽은 물고기의 비유를 보며 자신의 삶을 물고기에 대입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살아있는 물고기인가? 혹시 사회의 흐름이나 누군가의 명령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죽은 물고기는 아닌가?
나는 우울증을 앓으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나를 억압하는 가정환경에 있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위축. 피아노나 기타, 미술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공부를 위해 학원을 가고 싶었어도 경제 형편으로 인해 학원에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둘째라는 이유로 오빠와 남동생에게 양보할 것과 집안일, 섬세함, 여성스러움을 강요했다. 종종 내게 “너를 낳지 말았어야 한다.”라며 삶의 의미를 깎아내리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내가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을 때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참을 반대했었다. 대학 진학을 위한 등록금이 필요해서 할머니께 말씀드리자 할머니는 내게 “여자가 무슨 대학이야.”라면서 대학 진학을 원치 않으셨다.
나는 이런 가정환경에서 참고 살았다. 사실 참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폭언과 억압 속에서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윤리교육과 진학을 꿈꾸고, 철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었다. 나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남들의 결정에 순응하는 ‘죽은 물고기’였다. 그래서 나는 발악해보기로 했다. 물의 흐름을 거슬러 힘차게 살아가는 물고기처럼 내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보기로 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신경 쓰며 하지 못했던 미술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재료를 사서 시작했다. 엄마의 강압적인 언어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고백했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라는 강한 질책이었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말을 다 듣고 괴로워하지 않고 적당히 흘려들으며 내가 결정하고자 했다. 가정에서의 억압이 심했기에 적당히 가족과의 연락을 끊어냈다. 누군가는 내게 극단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가족은 내가 원해서 곁에 있는 자들이 아니기에 끊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지금의 나는 전의 삶보다 나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낀다. 대학에 온 후, 가족과 멀어지면서 내가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의 언어폭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물고기로서의 한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그러자 내 주변에서 헤엄치는 법을 잊은, 잃은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곡가를 꿈꾸던 친구는 부모님의 소원대로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뒤에서는 나에게 귓속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막상 모두의 앞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는 친구도 있었다.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듣고 따르는 행동이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의 주장으로 인해 진정한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주객전도’가 일어난다면 이젠 배려가 아니다. 사람들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남들에게 조금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은들 한 번뿐인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나감이 더욱 중요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임을 주장하며 인간 존재의 주체적인 결단을 강조한다. 나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렇기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의 자유의지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나는 삶에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가는 적극적인 삶, 타인이 주인이 아닌 내가 주인인 삶의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예림  yearim9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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