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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호/시론] 소확행

유선아 화학교육과 교수l승인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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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다. 그런데, 요근래에 “소확행” 이라는 말을 그가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 속뜻은 “인생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너무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고 열정을 강요당하면서 살기 보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사는게 좋다” 정도란다. “소확행”과 비슷한 맥락에서 “워라벨 (일과 라이프의 균형을 맞춘다)”, 욜로 (인생 한 번 뿐이니 너무 고생만 하지 말고 오늘을 즐겨라) 등등이 계속 유행이더니 최근에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라는 책도 몇 주 이상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종합하자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가 요근래의 라이프 트렌드이면서 유명 대학의 마켓팅 연구가 밝힌 소비 트랜드라고 한다. 

하루키에게 솔직히 좀 속았단 기분이 들었다. 하루키가 야구를 보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날로 몽블랑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서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기 시작했다를 보고, 그래 인생 별 거 있나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하고 지하철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영어 학원에 유학 준비를 위한 등록을 하고 몽블랑 볼펜 (만년필은 너무 비싸서)을 기념 삼아 샀다거나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하루 10시간 이상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마라톤을 취미로 삼아 체력을 기른다는 것에 감동받아 그래 나도 하루에 10시간은 연구를 해야지 마라톤은 못할망정 나가서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대학원생 시절이 갑자기 억울한 것도 같았다. 마치 하루키가 자신은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숲 속의 방에서 음악을 듣고 빵을 먹으면서 내게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아이가 깨지 않을까 걱정하며 논문을 쓰라고 강요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하루키의 팬인 나는 그가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에 아침에 일어나면 무엇보다 커피 한잔을 뽑아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던 하루키가 알고 보면 갓 구운 식빵이며 브람스의 실내악이며 산뜻한 속옷 이야기를 운운하며 정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고 열정을 강요당하면서 살지 말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라고 이야기 했을까, 그런 뜻으로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결론은 이렇다. 유행하는 속뜻은 2010년 무렵의 대만에서 형성된 것이고 요근래에 한국에서 국내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마켓팅 트렌드로 포장되어 대유행하는 것일 뿐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생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너무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고 열정을 강요당하면서 살기 보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사는게 좋다” 라고 이야기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그가 그의 책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가 랑겔한스섬의 오후란 그의 세 번째 수필집에서 속옷 사는 취미, 깨끗한 속옷이 쌓여 있는 서랍을 이야기 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한 것도 맞고, 그의 다른 수필들에서 조금 쉬어가도 되지 않을까, 문학은 무겁지만 가끔은 즐겁게 살고 싶다라고 이야기 하며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작곡가인 브람스에 대해서도, 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결코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를 향해 꿈을 추구하지 말고 현재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왜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불확실한 미래인데 무리한 목표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왜 우리는 어느 순간 열정이 누군가에게 강요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안해하고 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 있어 하고 위안을 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주 작게라도, 아닐까.  
하루키의 팬으로서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여 이야기를 다시 만들면 대충 이렇다.
거의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5-6시간 이상은 소설을 쓰고 소설의 줄거리가 나오면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글을 쓰는 그의 취미는 중고 재즈판과 깨끗한 속옷들을 사서 모으는 것이다. 인터뷰나 강연 요청을 피해 외국에서 집필하는 도중 가끔은 섬 같은 곳으로 휴가를 가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그의 소확행은 날마다 미친 듯이 열심히 소설을 쓰는 그가 가끔 즐기는 작은 행복이랄까.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무주의 탐미주의에 물들어 있는 소설가라는 비판 이후에 옴진리교 테러 사건의 경험자와 희생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쓴 하루키. 그 경험의 고찰이 반영된 소설 1Q84와 기사단장죽이기까지 그의 소설은 새로 나오는 소설이 그 전의 소설의 경지를 스스로 깬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는 최근에는 “역사를 다시 쓰면 스스로가 다친다” 라는 말을 해서 일본의 우익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일부 팬들은 따놓은 당상인 노벨 문학상을 스스로 걷어찬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상실의 시대”라고 알려진 노르웨이 숲이라는 소설만 전세계적으로 400만부를 넘게 팔았다는 일흔의 소설가. 나는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렇듯 거기에 만족하고 비슷한 줄거리의 책을 계속 내며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미친 듯이 글을 써서 스스로의 경지를 깨는 소설을 쓰는 그 열정을 사랑한다. 어쩌면 그가 얘기하는 그 작은 확실한 행복은 미친 듯이 꿈을 추구하고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끔 찾아올 수 있는 작은 휴식 같은 것은 아닐까. 


유선아 화학교육과 교수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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