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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호/칼럼] 보여주는 사회와 가리는 사회, 그 속의 나

구민정 기자l승인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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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패션의 키워드를 말하라 하면 ‘하의실종 패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올해 초부터 걸 그룹 아이돌 스타들이 시상식을 비롯한 공식행사에서 짧은 하의를 입어 마치 입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최근엔 10~20대의 많은 여성들이 이 패션을 따라 하고 있다. 하의 실종 패션이 유행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노출을 함으로써 ‘다리가 날씬하고 길어 보인다’는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하의 실종 패션은 스커트를 짧게 입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하의를 안 입은 듯한 ‘착시’ 효과를 노린다. 자신의 다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몸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예쁜 다리, 더 나아가 예쁜 몸을 칭송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몸은 소비와 쾌락의 장이다. 사회는 개인의 정체성을 몸에 투영하여 몸을 재단하고 변형시키도록 유도한다. 노출은 남이 나를 평가하도록 허락한다. 내 다리가 얼마나 가늘고 긴지, 내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지 남과 비교하게 한다. 노출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남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관심을 받은 만큼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외모만으로 평가 받는 것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행위다. 몸매를 드러내면서 남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사회 또는 미디어가 만든 이상적인 몸매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한다. 항상 불평하며 먹는 것을 줄인다. 다이어트는 이제 일상을 넘어 종교화 되었고 거식증은 옵션이다. 또한 성형수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며 이제 성형은 숨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점점 고등학교 또는 중학교 때부터 하는 통과의례가 되어가고 있다. 내면은 소홀히 하고 외면 가꾸고 드러내는 데만 치중하는 풍조는 몸의 상품화로 인한 영향이다.
 이에 비해 가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문화가 있다. 바로 이슬람 문화이다. 이슬람권의 여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일 것이다. 무슬림 여성은 왜 ‘히잡’을 쓰는 것일까? ‘히잡’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여성들이 강한 햇볕과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한 보호책이었다. 그러나 점점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여 서구화 운동을 계기로 이를 거부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 부흥 운동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히잡이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한다. ‘히잡’을 억압의 기제가 아닌 주체성을 상징하는 기제로 인식을 전환한 것이다. 특히 착용자 중 엘리트 여성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들은 히잡이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은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이 되겠다며 히잡으로 얼굴 또는 몸을 가린다.  ‘보여주는 사람’은 남에게 자신을 평가받고 상품화되는 사람을 뜻한다. 반대로 ‘보는 사람’은 히잡을 씀으로써 자신을 가리고 외모로 평가받지 않고 온전한 ‘나’일 수 있게 된다.
 보여주는 사회와 가리는 사회의 우열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가리는 사회가 무조건 좋다는 것도 아니다. 가리는 것을 강요받으면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고 그것으로 억압받는 사회가 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발적으로 가리는 ‘의도’가 우리가 생각할 만한 점이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되 여성과 남성의 몸과 얼굴이 상품화가 되고 타자에게 평가 받는 사회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외모를 가꾸는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인생의 주와 객이 바뀐 일이다. 우리는 남에게 드러내기만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나 생각해 보라. 전시용 코를 만들고 전시용 몸매를 만든다. 전시용 명품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고 전시용 애인을 사귄다.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일까. 비단 패션이나 소소한 선택 뿐 아니라 직업이나 배우자 선택 같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도 남을 의식하고 소위 ‘있어 보이게’ 하려고 애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패션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패션을 추구하는 게 어떨까. 더 나아가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남에게 평가받기 위해 살기보다 나를 위해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겨울에 짧은 치마를 입은 당신의 용기를 인정하지만 강요된 유행을 따르기보다 나는 따뜻한 바지를 입겠다.


구민정 기자  guminjung@blue.k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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