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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호/청람원]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이상희(과학영재교육전공)l승인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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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어느 날!!! 5년이 넘은 교직생활에서 자꾸 초심을 잃고 수업에 재미를 잃어가는 나를 붙잡기 위해 또 다른 도전을 준비했었다. 열정적이었던 대학시절이 그립기도 했고, 대학때 배운 밑천이 다 떨어진 느낌이랄까? 아무튼 새로운 밑천을 구하기 위해 대학원의 문을 살짝 엿보기로 했다.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교원대에 원서를 쓰고, 합격하면 멀리 떨어진 친구와 자주 못 보던 그 동안의 세월을 보상하듯, 대학처럼 청춘을 불살라보자고 다짐했다. 물론 시험 당일은 대천으로 여행갈 일정까지 잡아놓고, 대학원 공부 반, 여행 계획 반 공부를 하는데 처음부터 일정이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같이 시험 보기로 한 친구 학교 교장선생님이 파견 동의서에 싸인을 해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시험은 나 혼자만 보고, 친구는 충청도 여행으로 학교를 방문했고, 바로 우린 서해안으로 떠나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별 기대 안하고 있던 도중 덜커덕 합격통지를 받았고, 나이 들어 2년이나 또 객지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바로 대학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선뜻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그러나 주위의 축하와 격려 반응에 용기를 얻어, ‘좋아 인생 별거 있어? 도전해 보는 거야!‘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2010년 나의 서른은 그렇게 낯선 충청도에서 시작되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단촐한 6명의 동기들과 수업을 받으며, 한 학기에 고작 3과목만 들으면 되는 대학원은 정말 시간이 많이 남아 돌겠구나라는 생각에 인근 청주로 취미활동삼아 홈패션이나 DIY을 배워볼까 하는 계획을 세울 때쯤 지도교수 선정이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지도교수님을 겨우 전공과 이름석자만 가지고 결정하고, 연구실에 인사를 하고 들어가니 본격적인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나의 취미활동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대학원은 연구를 하러 오는 곳이지 취미활동 하러 오는 곳은 아니었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시작된 프로젝트들과 수업의 과제들이 나를 압박해왔다. 정신없이 그렇게 달려가고 있을때, 선배들이 그럴수록 놀기도 잘 해야 한다고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각종 혜택에 지원하고, 행사에 참여하는 등 바쁘지만 즐길 줄 아는 그런 생활을 해야한다는 가르침을 준 것이다.
 대학원에서 지원해주는 해외연수 프로그램과 해외 봉사활동에 지원하고, 둘 다 선정되어 어떤 걸 선택할지 행복한 고민도 해봤고, 사도교육원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했으며, 원총에서 준비한 특강과 행사도 참여했다. 시험이 끝난 후에 음악관 뒤에서 삼겹살 파티도 했고, 가끔 너무 힘들면 대청호에 가서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다 인근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먹고 쿨하게 다시 연구실로 돌아오기도 하고, 주말엔 김밥 싸들고, 인근 산으로 소풍도 갔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싶을 때, 청주KBS에서 하는 공개음악프로그램에 방청을 가서 두 시간동안 소리 지르고, 놀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미친듯이 공부하고, 일했으며, 놀았다. 절대 이곳에 안 왔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을 하고 이젠 돌아갈 날이 얼마 안남은 시점에서 지나간 세월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곳 대학원 생활이 힘든 것은 온전한 나와 마주할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온전히 혼자 덩그란히 앉아 벽만 보고 앉아있을 시간이 교직생활하면서 얼마나 있었는가? 쉬는 시간 10분마저 내 것이 아닌 바쁜 일상에 쫓기다 하루 종일 나와 마주할 시간이 주어지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이고, 알아야 할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무게에 질려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안개 낀 후문 길을 운전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으로 항상 교원대에 들어왔었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서 내 앞에 있는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두려워하며 들어왔던 그 길이 요즘엔 다르게 보인다. 아마 학년이 오르면서 마법이 차츰 풀리고 있나보다. 아직 ‘논문’이라는 큰 산이 남아 있지만, 언젠가 수업시간에 했던 비유처럼... ‘논문은 임신과 같다!’ 시간이 돼서 나올 때가 되면 나올 것이다.
 요즘은 논문 걱정보다 교원대에 와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인 내 주위의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남은 생활을 더 알차게 보낼까로 고민중이다. 이번 학기엔 논문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다른 수업은 일체 듣지 않는 동기들과의 친목도모를 위해 그래서 일주일에 꼭 한 번은 같이 식사하는 날을 정해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도 하고, 밥먹는다는 핑계로 인근에서 바람도 쐬러가고 하고 있다. 그래도 만나면 이야기의 반 이상의 논문 이야기인 어쩔 수 없는 논문학기의 대학원생이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즐거운 시간이다.
 떠날 때가 돼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사계절을 만나봐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 알게 되듯이 교원대는 4학기는 다녀봐야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 4학기 중에는 정말 힘들고 지친 학기도 있지만, 뒤돌아보면 다 뼈가 되고 살이되는 값진 학기들이라는 것이 그 길을 지나온 한 사람으로서의 소감이다. 아마 현장에 다시 복귀하면 안개낀 후문을 운전하며 연구실로 가던 나를 그리워 할 것이다.


이상희(과학영재교육전공)  knu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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