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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영화도서관] 말의 뒷모습,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현정우 기자l승인2018.10.15l수정2018.10.1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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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청구기호를 처음 알았다.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책이 꽂힌 순서, 장서 업무의 절차 등을 간략하게나마 터득할 수 있었는데, 반납 도서를 서가에 꽂는 등 기본적인 일을 도맡았기에 자연스레 청구기호의 원리도 체득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카운터부터 보존서고, 창고까지 업무 범위가 넓혀졌다. 직접적으로 대출, 반납을 관리하고 일반인의 이용이 통제된 곳의 자료를 관리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담당자 분들의 업무 현장과 닿을 일도 많아졌다. 도서관 업무가 어떤 절차와 대화를 통해 처리되는지도 보는 일이 많았다. 아주 사소한 결정이더라도 도서관 조직을 이루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 대화가 필수로 작용하는 행사(회의부터 견학, 프로그램 등)를 반드시 거쳤다.

뉴욕 시에 있는 공립도서관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보면서 영화를 보기 전에 보았던 모습들이 확실해졌다. 이 영화는 도서관을 유지하는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양식에 맞춰 그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서관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은 수없이 많다. 자료를 찾기 위해 데스크를 이용하는 사람들부터 유명 명사 초청 강연, 논문 발표회, 지역주민 모임, 방과 후 학교와 소프트웨어 교육 특별활동,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도서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로 영화를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 이 모습들 가운데에서 일관성을 뽑는 일은 관객이 느끼는 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지루함 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 속 프로그램이 열리는 공간, 어떤 사람에게는 경험이 영화의 줄기를 잡는 일일 테다.

내게 영화의 줄기는 쉴 새 없는 대화였다. 보아왔던 실제 업무 현장이 전적으로 대화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이 말을 하지 않는 부분조차 말의 영향력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대화가 유의미하게 느껴졌음이 컸다.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교수자는 지시와 질문을 제시하며 학습자도 대답과 수행을 실천한다. 지역주민 모임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의견과 경험담, 다른 곳에서 본 책의 내용을 인용하며 모임의 의미를 진전시킨다. 어느 곳에서나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은 대화를 통해 연결되는 일종의 맥락이었다. 그 중 가장 자주 보였던 장면은 시로부터 예산을 유치하기 위해 회의를 갖고 논의를 개진시키는 도서관 운영진의 모습이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로, 이들은 뉴욕 시 시민들의 1/3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도서관에서 저소득층의 인터넷 서비스를 지원해 디지털 정보 접근성을 높여야 함을 논의한다. 이를 실무화하기 위해 인터넷 서비스의 지원 기준, 와이파이와 핫스팟 등 어떤 형태로 네트워크를 제공할지, 도서관 등록부에 어떻게 연결시킬지 등의 주제로 논의를 개진시킨다. 영화의 진전 과정에 상관없이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가 그들을 보는 틀은 변하지 않는다.

대화에는 세 가지 면이 있는데, 말하는 면, 그에 반해 말하는 면, 그 두 면을 모두 보는 면이 있다 생각한다. 기존 영화이론에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찍고, 그 반대편에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찍고, 대화 상황을 알려주고 싶으면 둘 다 나오도록 찍으면 되는 식이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가 스스로 택한 양식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은 그걸 보이지 않게 만드는 데에 기인하는 듯 보였다. 무대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 -그러나 그 사람이 직접 발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공간의 주체가 폐쇄적일 정도로 스스로의 중심을 확장시킨다. 여기엔 미끄러진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데, 카메라가 무대 위의 사람들 중 하나에 몰입할 때 시 낭송회, 일반인 강연, 수화 지도 프로그램 등 무대의 역할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이 그렇다.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바로 다음 컷에서 어디론가 치워질 때의 당혹감 또한 그렇다. 말의 발원지를 알 수 있게끔 말이 들려오고서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한동안 보이는데, 이의 응답을 찍기 위해 화면은 의도적으로 -한번 노출시켰던- 말하는 사람을 표면 안의 구석, 또는 다른 표면에 가려진 어딘가에 배치시킨다. 말하는 사람의 어깨 너머로 듣는 이의 옆모습과 얼굴을 찍는 숏들 속에서 말의 발원지는 종적을 감춘 채 그림자로, 그것도 빛에 비춰진 얼굴들의 그림자로 감춰져 버린다. 분명히 위치를 갖고 있지만 보이지 않아서 그 위치를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종이의 한 부분이 튀어 나와 있을 때 다른 부분은 들어와 있다고 말해지듯 표면은 없어지기보다 채워지기를 반복하는 것만 같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말보다 말이 나올 수 있는 지대, 대화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만 같다.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 행사에서 영화는 대표적으로 세 개의 범주를 구성하는데, 연사, 자료화면, 관객이 그것이다. 무대에 올라온 연사가 자료화면에 대해 말을 하면 관객이 듣는 것이 장면의 핵심이다. 관객이 박수치는 장면은 없다. 흥에 들뜬 말이던 진심을 다한 말이던 관객의 역할은 듣는 데에 있다는 사실이 다른 두 범주와 같이 병렬된다. 실재하는 대화를 최대한 반복적으로 채우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다.


현정우 기자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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