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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사무사] 가짜 ‘토닥토닥’의 시대

편집장l승인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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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면접에서 불합격하셨습니다.” 문자를 받은 청년이 상심한 표정을 짓자, 그 뒤에 앉아있던 가수 아이유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몸도 마음도, ㅇㅇㅇ이 토닥토닥 해드릴게요.” 한 진통제 광고의 내용이다. 광고는 ‘어깨가 무거운’ 가장, ‘저녁이 없는’ 직장인, ‘7포 세대’ 취준생(취업준비생)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토닥토닥’을 선물한다.

‘토닥토닥’으로 대표되는 위로의 정서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다. 수많은 광고들이 “잘했어, 수고했어”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고, 서점가는 이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야’ 같은 말을 하는 심리학 서적과 감성 에세이가 장악했다. 각종 sns에는 스누피, 곰돌이 푸, 보노보노 같은 보송하고 귀여운 캐릭터가 다정하게 위로를 건네는 이미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세상 모두가 어깨를 토닥여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 같은 분위기다.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위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끝없는 경쟁의 세계로 내던져지고, 계속해서 성취와 발전을 강요당한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의자 뺏기 싸움에 몰두하지만 그 의자가 충분히 안락하고 튼튼한지, 아니 의자라는 게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지조차 확실치 않다. 잠깐이라도 속도를 늦추면 부족하고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비정한 세상에서, “다 괜찮습니다. 토닥토닥”이라는 메시지는 얼마나 달콤하고 눈물겨운가.

‘힐링’되는 책을 사서 읽고, ‘나를 아끼자’고 광고하는 피로회복제를 사먹고, 값싸고 예쁜 물건을 사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비를 하는 것을 우리는 위로라고 부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문이 든다. 다정하게 토닥이는 손길은 누구의 것인가? 그 손길이 향하는 대상은 정말 우리인가?

 

진통제 광고 속 그 청년에게로 돌아가 보자. 방금 면접에 떨어졌으니 무척 마음이 아프고 아마 속도 좀 쓰리겠지만, 따뜻한 위로와 진통제의 효과로 곧 괜찮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는 여전히 취준생이다. 회사에 대한 원망, 더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책, 이미 취업하고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 미래의 불안과 현재의 스트레스를 무겁게 머리에 이고 그는 다음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곧 다시 머리가 아파올 것이고 다시 진통제를 먹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ㅇㅇㅇ이 토닥토닥 해줄 테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토닥토닥의 세계에는 주어가 없다. 위로하는 이들은 청년에게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는 왜 직장을 얻지 못하는가? 왜 가장은 어깨가 무겁고 직장인에게는 저녁이 사라졌으며 취준생은 일곱 가지를 포기해야 했는가? 이들은 이 질문에는 침묵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 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우리가 파는 진통제를 사라고, 그러면 괜찮아진다고 말할 뿐이다. 청년이 괜찮아지는 사이 진짜 아픈 곳, 정말 잘못한 사람들은 다정한 위로 뒤에 숨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둔갑한다.

토닥토닥의 세계에는 변화가 없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고 위로하는 이들은 절대 내일은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일은 (운이 좋아서)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오늘만큼 고생하겠지만) 소소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토닥토닥 위로를 받으며 행복하게 잠든 뒤, 일어나 내일도 힘을 내서 오늘처럼 살라고 말한다. 불평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위로는 지금 이 세계의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하며, 사람들이 이를 계속해서 떠받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위로와 ‘힐링’이 대부분 소비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 권의 책, 기분을 전환해주는 주말의 쇼핑, ‘너는 먹을 때 제일 예뻐’라는 분홍색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카페.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위로를 얻고, 기업은 이를 이용해 비슷비슷한 ‘힐링’ 상품을 찍어내 돈을 번다. “힘내요, 잘 될 거예요”라는 CM송으로 피로회복제를 광고하는 제약회사의 회장 아들이 주차 단속에 걸리자 담당 직원의 노트북을 던져 박살낸 사건을 생각하면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일을 했다는 이유로 멀쩡한 노트북을 잃은 그 직원은 아마 평소 그 광고의 주요 타깃이었을 것이다.

토닥토닥의 세계는 비정한 세계의 도피처가 아니라 그 연장선이다. 전자는 위로라는 도구를 이용해 후자의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치환하고 사람들이 더 큰 문제에 시선을 돌리는 것을 막는다. 개복 수술이 필요한 이에게 진통제를 권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지독하게 소시민적인 기만이다.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진짜 위로가, 진짜 ‘힐링’이 필요하다. 진짜 ‘힐링’, 즉 치유는 환부를 드러내고 칼을 들이미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픔을 치유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토닥이던 그 손을 들어, 고통의 진짜 원인을 똑바로 가리키자.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고,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빨간 머리 앤의 입을 빌려 독자들을 다독이는 ‘힐링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속의 앤은 시종일관 명랑하고 긍정적이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진짜 앤, 원작의 앤은 사실 위로와는 영 거리가 먼 아이다. 길버트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홍당무라고 놀렸을 때, 앤은 누군가 자신을 토닥여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들고 있던 석판으로 길버트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멋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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