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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보수 가치’의 배신자 박근혜?

김진우l승인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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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한국 사람들 사이에
서는‘복지 국가’가 주요한 화두이다. 극우 세력과 고전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일부 정통우파 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치적 세력들이 이구동성으로 복지국가의 확
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상당수의 정통우파 세력조차도 상류층과 중상
층을 배제한‘선별적 복지’는 용인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표적 정통우파 인사로 꼽히는 박근혜의 방향 전환을 놓고 논란
이 일고 있다. 과거 규제 완화나 감세 등 친시장적·친기업적 기조를 주장하다가
최근 들어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복지국가의 확대를 지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
것을 조갑제와 전여옥 같은 일부 우파 인사들이‘보수 가치의 배신’으로 규정짓고
박근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장의 자유와 기업 및 개인의 경제 활동에 대해 일정 부분 통제
를 가하고 국가가 사회복지와 사회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은 보수주의의 가치에 어
긋나는 일인가? 이것에 대해 뭐라고 답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선 보수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가 않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은 각각의 경우에 따라, 나라에 따라 실제 정책 구현에서 상당한
이념적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 이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시장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져 왔다.
그들은 기본적으로는 자유 시장이 가져다 주는 생산 능력과 상업 활동의 비약적인
증대를 통한 경제적 성장에 놀라워하며 자유 시장을 수용해 왔으면서도, 한편으
로는 자유 시장과 기업 및 개인의 경제 활동을 일정 부분 통제하려 했다. 또한 보
수주의자들은 역동적이고 초국가적인 자유 시장 경제가 자국의 고유한 문화적 전
통과 봉건적 사회 질서를 해체시킬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부르주아 계급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정치적,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자유주의 사상의 확대를 경계했다.
산업 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시작되자 서구의 기득권 세
력은 체제에 대한 위협을 느끼게 된다. 점차 그들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에게도
일정 부분 분배를 하지 않으면 체제에 대한 반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
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가운데 비스마르크의 집권 하에 있던 독일제국에서 세
계 최초로 노동자에 대한 사회 보험과 노후 연금 제도가 도입되기에 이른다. 비스
마르크는 물론 융커(Juncker: 귀족, 지주)출신의 철저한 보수주의자이며, 노동 운
동, 농민 운동,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했던 것은 물론 자유주의도 억누르려고 했다.
미국의 경우 지주 명문가인 루스벨트 가문 출신의 대통령이 미국의 사회경제사
에 있어 큰 진보를 이루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1900년대에 재임했던 시어도어 루
스벨트 대통령은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을 제정하여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
을 해체시키고 당시의 노동운동에 대응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일정 부분 보장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등 경제 정의에 관한 일정한 진전을 이루어냈다.
서구에서는 전통적인 귀족 및 지주 계급이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을 일정 부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부르주아들이 분배 확대에 대한 민중의 요구를 정면으로
받아치는 것과는 달리, 융커들은 일정 부분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고 좌파적 정책
중 체제 유지에 쓸모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일부 실현한다. 물론 상황이 자본가에
게 유리하다 싶을 땐 그들에 편에 붙어 노골적인 친기업적·친시장적 정책을 펴
는 것을 지원하거나 적어도 용인한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보수 우파 세력이 자유 시장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은 과
거에도 많았지만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위세를 떨치던 자유 시장
철학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 한계를 드러내자 유럽의 보수 우파 정당들은 친시
장적 정책을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대놓고 금융거
래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독일의 메르켈 총리 역시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
당의 친기업적·친시장적 주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독일 자유민주당은 고전적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당인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사회정치적 풍토에서 점
차 외면받고 지금은 당의 존립 기반조차 위태로운 상태다. 박근혜의 방향 전환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상황 변화에 따른 우파의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새누리당은 친이명박과 친박근혜 세력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
의 국정 운영 실패로 인해 친박근혜계가 점차 당내에서 주도권을 잡아가는 형국이
다. 친박근혜계는 일정한 수준의 복지 확대를 추구하고자 하며, 근본적으로 복지
에 부정적인 친이명박계 정치가와 관료 및 뉴라이트 등의 우파세력 주류와 대립
하고 있다. 이명박은 전형적인 부르주아라고 볼 수 있고, 박근혜는 전형적인 융커
라고 볼 수 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부르주아를‘기회주의 보수’로, 융커를‘모
태 보수’로 일컫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융커 세력은 박근혜계뿐이 아니며, 남경필 같은 새누리당 내부의
소장파들과 상당수의 민주통합당 구성원들까지도 포함한다. 민주통합당 내부에는
정세균, 강봉균, 김진표 등 호남지역의 명망가 출신들이 많다. 실제로 FTA를 비롯
한 경제 정책에 있어 상당수의 호남지역 출신 의원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 왔
다. 민주통합당은 호남지역 융커들의 정당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부르주아
이명박계는 몰락의 길로 들어섰고 그 자리를 이제 박근혜계와 민주통합당이 얼마
나 나눠먹을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결국, 금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통해 한국의 집권 세력은 부르주아 세력에서 융커 세력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따라서, 박근혜는 보수의 배신자이기는 커녕 체제 수호를 바라는 절대 기득권층
일 뿐이다. 다만 그 방식이 이명박과는 좀 다를 뿐이다. 오히려 더욱 영리하고 교묘
한 방식일 수 있다. 시민들은‘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로 둘러싸인 그녀의 허상을
걷어내고 그녀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몇 년 전까지 금과옥조처럼 지키던 자유
시장의 원칙 따위는 상황 변화에 따라, 정치적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버려질 수 있
는 것이다.


김진우  knu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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