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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기자칼럼] 피해자를 피해자화하지 말 것

현정우l승인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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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4일, 안희정 성폭행 사건 1심에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문의 요지는 피해자의 증거가 불충분하며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도 아닌 점 등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는 것이었다. 판결문에 상세히 적혀있다는 증거 평가, 피해자 측 증언의 시간대가 불일치하며 정황과 맥락 상 증거를 납득할 수 없다는 평가 결과가 그 뒷받침이었다.

판결의 결과는 사실상 정해져 있고 재판은 그것을 짜 맞추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불문율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고들 한다. 이번 1심에서의 판결 또한 그 연장선일지 모른다. 다만 해당 심에서의 최종 선고문을 통해 재판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의 공방과 행적의 모습을 종합할 수 있다. 검찰 측에서 증거 정황이 일관적이고 객관적이라 진술했음에도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고 단정했다. 현장에서 선고문을 옮긴 민주신문 기사에 따르면, 선고문이 원고가 피고에게 가식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위력의 척도는 피해자가 제압을 당한 정황이 ‘보일’ 만큼의 위력 행사 사실에 준거한다는 등의 억설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반부 절반을 채 채우지 못하는 판결문 근거부에는 유독 “최소한”이나 “적어도”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1심 판결이 있기 전 재판부는 검찰의 피고 측 증언 비공개 요청을 거절한 채 안 지사 측 7명의 증언을 모두 공개했다. 반면 피해자 측의 증언은 2차 가해 우려를 이유로 비공개 처리했다. 이 중 일부가 기사화되었다. 해당 증언은 심리 과정에서 가해진 재판부 측 심문에 대한 원고의 대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재판부는 물증의 부족함과 간접사실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하에 진술에 대한 팩트 검증을 목표로 피해자를 신문한다. 의심 지점에 원고가 당시 정황과 상태에 대한 상세한 답변을 내놓으면 “세부적인 내용에서 피해자의 증언에 모순, 불명확한 점이 다수 있고, 피고인의 증인인 ~의 증언이 상대적으로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피해자의 주장이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등 단언 및 압박을 가한다. 피해자의 증거가 모호하다는 말은 선고 이전의 언론 자료에서부터 볼 수 있는 문장이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 여겨지는 이유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때문이다.” 사라 아메드의 말이다. 재판부는 규정한 위력의 기준, 위력 행사 정황이 보이는 순간에조차도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했다는 진술을 그대로 심리 과정 내 피해자 진단에 적용했다. 수행비서의 업무 상 거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원고의 증언은 배척되었다. 재판부가 원고에게 가한 신문의 결정요지 중 골자는 성폭행을 당한 다음 날 업무수행 등 일상에 변동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직장 내 최고지위 인물의 측근으로 활동하는 상황, 무엇보다 정신적·신체적 상해에 의한 1일의 임시휴가가 적법하고 가능한 사회인가?

이번 달 11일 서울신문은 성폭행 피해자의 근황이라며 남자친구와 바다낚시를 하고 있는 사진을 올린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해당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의 모습과 진술을 후반부에 기술하며 그에 앞서 밝은 표정을 지은 채 사진을 찍은 모습을 부각했다. 피해 사실을 밝히고서 밝은 표정을 취하는 건 이상한 일인가? 피해자는 피해 사실로 인해 끝없이 고통스러워하고 충격에 빠져 있음을 입증해야만 하나? 피해자의 모습을 굳이 기사화하며 가십거리를 만드는 인식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것이 재판 심리 등 피해 사실에의 처벌에 필요한 실례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처참하고 끔찍하다. 단연 피해자의 경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소득분위와 생활실태를 비롯해 부양의무자 여부, 장애여부, 가구특성에 이르는 철저하고 세세한 조사를 거쳐야 한다. 이후에 지원을 받게 되더라도 지속적인 확인 조사가 시행되는데 이 때의 확인 조사는 지원 대상자의 소득 상태에 변동이 있는지에 따라 급여중지를 결정하는 조사이다. 지원을 받던 노인이 폐지를 줍는 사진 한 장만 동사무소에 신고 되어도 급여가 중지될 정도이다. 사법 체계, 행정 체계부터 이루어진 정부 조직은 끊임없이 복지, 입법, 재판 등-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행하는, 법적 효력을 갖는 절차-의 이유로 소수자와 해당자에게 조건을 만족시키는가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궁한다. 해당자의 입장에서는 임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의 시선에 갇힌 대상의 모습-국가가 단정한 기준과 틀에 대상이 정확하고 일관적으로 부합하는가를 시혜에 대한 궁극적 결정 요인으로 삼는 것이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관점에서 분노해야 하며 투쟁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특히 재판의 경우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입증함에 있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당시 시간과 상태로 복귀해 놓아야만 한다. 더 이상 피해자가 희생될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떠한 맥락 및 이해도 없이 팩트 검증만 지속하는 재판부의 진척 수준을 보아도 즉각적이고 급진적인 대처는 필수적이며 한 순간도 미룰 수 없이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


현정우  kubrick4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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