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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독자의시선] 고생해봤니?

박형규(기술교육·15)l승인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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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전 집에서 가족들과 여느 때와 같이 티브이를 즐기고 있었다. 티브이를 보며 잠을 깨는 게 우리 집에선 일종의 주말 의식(?) 같은 것으로 여겨질 만큼 거의 매주 주말 아침 우리 집에선 바보상자 예배(?)가 거행되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여느 다른 주말 아침과 같이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티브이로부터 아침의 기운을 받고 있었다. 그 날은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 생활하는 사람들을 한 개그맨이 같이 동거하며 그들의 일상을 담은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 방송에서 다루는 자연으로 돌아가 생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도시 생활 속 병을 얻거나 하던 사업이 망하는 등의 도시 생활에서 아픔을 얻고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문명과 떨어진 그들은 무척이나 불편한 생활을 한다. 자급자족의 생존 생활. 바보상자 속 그들은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에게 필수적인 활동을 한다. 물을 얻기 위해 빗물 혹은 이슬을 모으기도 한다. 때론 꿀을 얻기 위해 기르는 일벌들을 방해하는 말벌을 잡기 위해 달려가기도 하고 죽은 고라니를 발견하여 식용을 위해 손질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담아 도시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이다. 그런 프로그램으로 바보상자에게 예배 중 홀연히 아버지가 내게 질문을 건네셨다.

 

“형규, 넌 고생해본 적 없지?”

 

바보상자 관람 중 아버지의 질문을 받은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당신의 말마따나 나는 고생해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됐다.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물이 나오고 냉장고를 열면 음식이 있고 바보상자 속 그들에 비교하자면 겉보기에 매우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됐다. 평소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고민은 했어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해본 적은 한두 번 될까 말까였으며 먹는 것에 대해 행복한 고민은 있었어도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랬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고생해본 적이 없는 것만 같았다.

그 후 그 상황 속 그 질문을 몇 번이고 몇 십번이고 곱씹어 보았다. 그 고민은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정말 고생 없이 귀하게 자란 마치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은 유리창 밖의 풍경에 지나지 않았었나? 나는 정말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랐었나? 나도 그래도 나름 고생하며 살아온 거 같은데…….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같은 단어라도 그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구나. 누군가 겪어온 기존의 경험은 한 사람의 사전을 만든다. 누군가의 사전이란 그 사람만의 유일한 길을 밟으며 살아온 인생을 담기에 한 인간의 사전 속 단어는 비슷할 수는 있어도 유일한 그만의 것이라는 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집’이라는 특정 단어를 떠올릴 때 어느 누구는 굴뚝이나 정원이 달린 주택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콘크리트의 커다란 아파트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경험이 다르듯 저마다 보는 곳과 보이는 곳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아버지는 농촌 출신이시다. 6,70년대 7남매로 태어났다. 국민학생일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의 농사일을 거드는 게 당연한 일과였다고 했다. 국민학교를 가기 위해선 아침 6시에 일어나 학교까지 1시간은 걸어갔다고 했다. 9명의 일가족이 세 칸 방에 모두 모여 잠을 잤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앉을 수 있는 교자상이 없어서 위의 형, 누나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 밥을 먹곤 했다고 했다.

나는 혼자 쓰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식탁에 차려진 아침을 먹고 365일 따뜻한 물로 돌리면 따뜻한 물이 콸콸, 차가운 물로 돌리면 차가운 물이 콸콸. 걸어서 10분이면 학교에 도착했고 학교가 끝나면 농사일 같은 육체적 노동은 당연히 없었다.

다른 생활을 겪어온 아버지로선 내 나이대의 당신의 삶과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내가 고생이란 것을 겪어 본 적 없이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삶을 살아간다고 보이는 게, 당신의 눈에는 당연한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어릴 땐 피아노, 태권도, 미술 학원을 다녔다. 나이가 들어 고학년이 되자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은 필수가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원을 5, 6씩 다니는 친구도 분명 있었다. 학교에선 성적이라는 숫자가 나의 학업수준뿐만 아니라 나의 끈기나 집중력을 판단하는 아니 아예 성품까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내 사전에 고생은 결국 수치화된 나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높여보기 위한 발악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수치를 통해 결정되는 대학, 직업 그리고 연봉. 숫자, 숫자 그리고 또 숫자.

 

당연 한 세대 전 아버지 시대에선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고생이었다. 하지만 이제의 우리네는 그 본질적인 먹음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이전세대와는 다른 고민을 겪고 있다. 애초에 아버지의 사전 속 고생과 나의 사전 속 고생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아버지가 묻는다면 그땐 시원하게 대답하고 싶다.

 

“맞아요! 아버지가 말하는 고생을 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래도 제 나름의 고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같이 한 번 공유해볼까요?”


박형규(기술교육·15)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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