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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시론] 가난의 장소를 여행하기

한지은 지리교육과 교수l승인2018.10.01l수정2018.10.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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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서도 앞집 방안의 대화가 거의 들릴 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단층집들, 두 사람이 함께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슬레이트 지붕, 골목 어귀에 나와 앉아 더위를 피하며 한담을 나누시는 할머니들에 이르기까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에게 이런 경관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더욱이 이런 골목길에 예쁜 벽화라도 그려져 있다면 말 그대로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로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달동네’라는 말이 보다 익숙하지만, 슬럼이라 불리는 도시의 빈민가를 방문하는 이른바 ‘슬럼관광(slum tourism)’은 오늘날 우리나라 뿐 아니라 국제여행의 새로운 경향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관광의 대상으로 삼는 슬럼관광은 19세기 말 영국의 상류층들이 여가의 일종으로 런던의 빈민가를 찾았던 ‘슬러밍(slumming)’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슬러밍이라는 단어는 빈민가뿐 아니라 대도시의 차이나타운 등 이민자 거주 지역처럼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 호기심에 찾는 일을 의미하게 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행위의 동기가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장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을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보다 취약한 ‘타인들’에 대한 관찰을 통해 ‘우리들’의 상황을 안도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국제여행이 본격화되면서 슬럼관광은 우리 사회의 타인들이 아니라 가난한 다른 나라의 타인들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주로 제1세계의 부유한 관광객들이 제3세계의 빈곤 지역을 구경거리로 삼거나, 교육이나 자선 활동을 명목으로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예전에는 관광객은 물론이고 외지인이 돌아다니는 일조차 위험하다고 여겨진 많은 지역들이 인기 있는 관광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슬럼관광지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로 인해 건설된 흑인거주지역인 ’타운십(township)’, 빈곤·마약거래·폭력 등으로 악명 높은 브라질의 ‘파벨라(favela)’, <슬럼독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라는 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아시아 최대의 슬럼인 인도 뭄바이의 다라비(Dharavi) 등이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장소를 찾는 여행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여행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슬럼관광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관광객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마치 동물원이나 사파리 관광을 하듯이 구경거리로 삼는 ‘관음증적’ 행위이라는 직설적인 비판에서부터, 슬럼관광은 언제든 안전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일종의 ‘사회적 번지점프’에 불과하다는 묵직한 충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난의 장소들이 관광지로 변모하는 일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기반시설이나 자본이 미약한 전 세계의 많은 빈곤 지역들의 경우 관광만큼 즉각적이고 빠르게 지역을 변화시킬만한 산업은 거의 없다. 더욱이 관광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낙인효과’를 야기해 온 지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달동네와 판잣촌 등에서는 관광을 통해 지역을 재생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그러나 관광을 통한 빈곤 지역의 재생은 무엇보다 지역 주민과 공동체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가난한 장소들은 관광객 사진의 이국적인 배경이나,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바뀐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호젓한 풍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 공동체의 기억의 담긴 장소이기 때문이다. 분위기 좋은 벽화마을에서 ‘인생사진 건지는 법’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내가 찍는 사진 속에 담긴 풍경의 의미가 아닐까.


한지은 지리교육과 교수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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