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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교육] 나도 그곳에 있었다

이현주 기자l승인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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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예술계에서, 일상에서 일어난 갖가지의 성범죄들이 ‘미투’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퍼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 운동은 학교 안의 성범죄까지 조명했고 그것 또한 나는 보았다. 피해 사례를 읽고 듣고 슬퍼했으나 나는 타자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경각심도 없었다. 나는 그저 타자로서 그들의 연대를 응원했었다.

평소와 같이 SNS를 하던 중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이름을 단 ‘미투/반인권 언행 공론화’ 계정의 글이 공유된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놀라 그 계정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올라온 여러 제보 글들을 읽었다. 선생님들의 이름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성씨만으로 누군지 모두 알 것 같았다. 제보들은 나도 보고 겪었던 일들이 다수였다. 잊어가고 있었으나 불과 몇 년 전 학교의 풍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제보된 이야기들이 벌어졌던 곳에 내가 있었다. 반 아이들 앞에서 담임이 엄마 이야기로 모욕을 주어도, 교무실에서 외모 품평을 들어도 가만히 있던 그때의 내가 있었다. 그날 야자 시간은 내내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쓰며 보냈다. 그러나 보내지는 못했다. 이 편지로 그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반에서 매일같이 학생으로 선생님을 마주해야 하는 나는 난처해지기만 할 게 뻔했기에. 두려웠다. 학교와 같이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상하관계가 명확한 집단에서 아랫사람으로 여겨지는 학생이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다. 나는 말 할 곳도 딱히 없어 그저 묻어뒀다.

반면 모교의 ‘미투/반인권 언행 공론화 계정’에는 많은 사람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보며 아픔과 위로, 공감 그리고 깨달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특히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미투 운동에는 힘이 있다는 게 깊이 다가왔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고백은 또 다른 사람에게 위안과 용기를 낼 힘을 준다. 특히 학교에서는 더 그러할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임에도 학교를 바꾸거나 그만두지 않는 한 같은 공동체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며 교사는 성적과 입시라는 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시된다고 볼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고, 어른들은 학생의 이야기를 가벼이 여기곤 한다. 혼자서는 힘들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한다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연대와 공감을 친구들, 선배들과 나눌 수 있다면 진실의 목소리엔 더 큰 힘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가 나오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스쿨미투를 학교의 이미지 손상, 대입의 걸림돌로 보아 같은 재학생끼리도 미투 운동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결국 약자가 또 다른 약자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처벌이 아닌, 피해자의 아픔이 아닌 권위와 일시적인 안정을 먼저 생각하며 침묵을 권유하는 것은 잔인하다. 피해 사실의 공론화가 피해자의 삶에, 일상에 개입하여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소망을 빈다면, 스쿨미투를 통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해 사실이 무마되지 않고 적절한 처벌과 대응이 있는, 학교가 아닌 그 안의 학생을 먼저 생각해 학생 그들이 결정권과 발언권을 더 얻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이현주 기자  kyo6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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