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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사무사] 예민한 예의

김지연 기자l승인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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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의 공기가 부쩍 차가워졌다. 이맘때면 관용어로 학생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교베리아’. 교원대와 시베리아를 합성한 단어로 겨울의 교원대가 그만큼 춥다는 뜻이다. 겨울에 교베리아가 있다면 여름에는 ‘교프리카’가 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교원대와 아프리카의 합성어다. 덥거나 추운 지역을 아프리카와 시베리아로 부르는 것은 우리 학교 밖에서도 널리 쓰이는 비유다. 시베리아는 겨울철 기온이 영하 40도를 밑도는 혹한지로 유명한 도시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우선 아프리카는 도시가 아니라 대륙이다. 아프리카의 면적은 약 3천만 제곱킬로미터로, 미국, 중국, 인도, 서유럽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훨씬 넓다. 고작 10만 제곱킬로미터인 남한에서도 강원도와 제주도의 날씨가 다른데, 그 거대한 땅에서 기후가 동일할 리 없다. 아프리카에서는 지역에 따라 지중해성 기후, 사막 기후, 온대 습윤 기후, 열대 기후 등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며 생각보다 덥지 않은 곳도 존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케이프타운의 연중 최고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지 않는다. 단순히 덥다는 의미로 아프리카를 들먹이는 것은 일본과 방글라데시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날씨를 한꺼번에 아시아 날씨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난여름, 날씨가 아프리카 같다던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친구는 나를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예민해? 그냥 더워서 덥다고 한 건데 꼭 그렇게 일일이 걸고넘어져야 해? 가족 중에 아프리카 사람이라도 있어?

물론 나의 가족 중에는 아프리카 사람이 없다. 사실 아프리카에 가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갑자기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면서까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말이 무례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단정 짓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무례라고 부른다.

이 말이 무례한 이유는 단순히 아프리카가 넓고 기후가 다양해서가 아니다. 그 말은 은연중에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인의 지극히 얄팍하고 비하적인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기에 무례하다. 거칠게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아프리카는 ‘덥고 후지고 흑인들이 사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더운 곳, 또는 낙후된 곳을 일컬을 때 아프리카는 번번이 호명된다. 60여 개의 나라, 11억 인구의 삶과 문화는 알지도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리고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그렇게 사용될수록 그 왜곡된 이미지는 정설이 되어 간다.

 

무례는 악의가 아닌 무지에서 온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도 우리는 무례할 수 있다. 술게임 중 동성의 두 사람이 동시에 실수했을 때 “게이샷”이나 “레즈샷”을 외쳤다면 우리는 동성애자에게 무례하다. 사람의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거나 불쑥 화가 나는 것을 안면인식장애나 분노조절장애라고 표현했다면 우리는 실제로 그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무례하다. tv에 나오는 혼혈아를 보며 “혼혈은 다 예쁜 것 같아”라고 말했다면 우리는 혼혈아에게 무례하다. 우리의 말이 이들에 대한 납작한 허상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확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에게는 별 생각이 없었다 해도 그 말은 이미 상대에게 어떤 편견을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당사자에게 그 편견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가벼운 말, 별것 아닌 말은 없다. 모든 말은 어떤 식으로든 세계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이 거듭되면 지형이 된다. 사소한 농담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산맥을 세우고 물길을 만든다. 우리의 언어로 빚어진 세계를 무례하고 무신경한 곳, 편견으로 가득한 곳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더 예민해져야 한다. 말하는 이가 예민하고 불편할수록 그의 말은 더 다정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김지연 기자  r13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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